괴물사체처리부 -포식자들-

18화 - 포식자들 -

by 융갱



검은고양이 까미는 까슬한 혓바닥으로 앞발을 자꾸 핥아댔다. 붉게 부어오른 조그만 발가락은 곧 부푼 풍선껌처럼 터져버릴 것 같았다. 히어로를 몰래 지켜보던 중 어디선가 나타난 쥐새끼만한 벌레가 까미의 앞발가락을 사정없이 문 탓이다.

체급이 어떻든 그저 벌레에 물렸을 뿐인데 성질 더러운 동족과 싸웠을 때처럼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같다. 게다가 하필 그 죽은 인간 여자의 피가 묻었던 발가락이라니, 털에 밴 역겨운 피 냄새까지!

‘어쩔 수 없지. 우아한 고등 생물은 더러운 걸 못 참는다옹’


열심히 그루밍 중인 까미가 앉아있는 스펀지 시트는 괴물사체처리부 트럭의 운전석이다. 친절하지만 꽤 멍청해 보이는 한 인간 남자가 까미를 이곳에 데려다 놓았다.

까미의 눈에도 그 남자는 인간 수컷 세계에서 서열 최하위 개체임이 분명했다. 온 세상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잔뜩 움츠러든 거북목, 아무 이유 없이 겁먹은 표정, 제 동족의 눈은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 저보다 고등 생물인 고양이와는 다정하게 눈을 마주치는 이상 행동. 무엇보다 까미의 눈에만 보이는 구릿구릿하고 찌질한 남자의 잿빛 오라가 그의 서열을 분명히 알려주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돌아올게’

그 인간 이름이 김후성이라고 했던가? 괴물사체 처리 현장은 위험하니 안전한 곳에 있으라며 트럭 안으로 옮겨준 건 뭐, 고맙긴 한데

‘멍청한 인간! 문을 잠가버리다니옹!!’

저 불쌍하고 짠하게 생긴데다 지능도 높아 보이지 않는 하등 생물이 다시 트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오피스텔 건물엔 아직 잔혹한 사냥꾼이 남아있는데.

갑자기 복도로 튀어나온 그 조그만 인간은 어떻게 됐을까? 왜 하필 사냥꾼이 있는 곳에 나타나서는, 운도 없는 아깽이 녀석.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졸리지옹?’

꾸벅,

꾸벅,

꾸벅,

꾸벅......

[고로롱]

‘코......’

결국 까미는 새벽을 알리는 참새들의 노래 소리에 잠을 깨고 말았다. 날이 밝고 있지만 까미는 여전히 트럭 안이고, 문은 단단히 잠겨 있다. 그 남자도 역시 그 죽은 여자처럼 사냥꾼에게 목숨을 잃은 걸까?

‘췟! 안 올 줄 알았다옹, 하찮은 인간’

그런데,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까미는 몰랐지만 트럭에서 잠든 시간 동안 까미의 몸은 완전히 달라져있었다. 동족과 싸운 뒤처럼, 심한 독감에 걸린 것처럼 몸살이 왔고, 기절한 듯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고통은 벌레에 물린 발가락에서부터 시작되어 온몸을 습격했고 몸의 안과 밖을 까뒤집고 비틀었다. 고통과 함께 까미의 몸을 이루고 있던 원소들이 붕괴되어 산산이 흩어졌고, 흩어진 조각들이 다시 모여 새로운 구조로 재결합했다. 마치 한 생명체가 죽었다가 환생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었다.

다행이 뿌연 하늘을 보며 아침의 새소리에 눈을 떴을 때, 밤새 시달린 생사의 고통은 완전히 가셔있었다. 까미의 몸은 매우 가벼웠고 기운이 흘러넘쳤다. 털에는 더 윤기가 흘렀고, 근육은 더 단단해졌다. 오랜 흉터가 사라졌고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생긴 고질적인 통증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까미는 평소보다 훨씬 더 활력 있고 멋져보였다.

‘여기서 어떻게 나갈까옹?’

까미는 온몸에 흘러넘치는 힘으로 트럭의 문짝을 마구 긁어댔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옹......’

까미에게 트럭 밖으로 이동하고 싶다는 강한 의도가 생긴 순간이었다. 까미의 몸이 봄날의 눈사람처럼 운전석 시트 위로 천천히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코코아 컵에 빠진 마시멜로 덩이처럼 사르르.

그동안 트럭의 하부에서는 어디선가 새어나온 검은 액체 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 액체 방울의 추락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고 금세 시멘트 바닥 위로 한가득 고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점성 있는 새까만 웅덩이에서 고양이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마법처럼 튀어나왔다.


[야옹!]


천적의 소리에 놀란 참새들이 파다닥 어디론가 날아갔다. 참새들의 사소한 날갯짓에 플라타너스 나무의 넓적한 잎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바람 불지 않는 고요한 길 위에 버려져있던 과자봉지가 이유 없이 굴러다녔다. 플라타너스 나무와 트럭과 과자봉지. 이 거리에 존재하는 것들은 5분 전과 똑같았지만 공기는 묘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윽고 트럭의 타이어 뒤에서 반들반들한 털을 휘날리며 나긋나긋 걸어 나온 생물은 바로 검은고양이 까미였다. 트럭의 문은 여전히 잠겨있었지만, 트럭 안 시트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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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성이 처음 이 기묘한 진동을 느꼈을 때, 그것은 그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희미했다. 그리고 그 진동이 발현된 지점에는 검은고양이 까미가 있었다.

지금, 같은 파동을 가졌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진동을 가진 경고음이 후성의 고막을 두드리며 때리고 있다. 강남고속터미널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후성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까미보다 훨씬 더 크고 강력한 존재가 이 진동을 발현하며 터미널 안 공기를 바꾸고 있음을.

폭풍 전야의 고요는 길지 않았다.


[어, 뭐야?]

[지진인가?]


지진이 일어난 듯 터미널 바닥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 지진경보 알림 문자가 왔는지 확인했다. 물론 친구나 가족, 직장 사람들이 보낸 메시지와 스팸 문자들만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다. 곧 바닥은 떨림을 넘어 쿵쿵거리는 소음을 내며 천장까지 흔들렸고, 장난스레 웃던 사람들까지 빠르게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포식자의 움직임을 느낀 초식동물 떼처럼 불안한 눈빛들로.

사람들은 늘 자신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매일을 살아가기 더 쉬우니까. 오늘 고속버스를 타러가면서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시급히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보라는 권유를 받을 것이다. 실제로 집 안과 집 밖, 하늘과 땅, 물과 공기 중에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대부분은 별일 없는 하루를 보낸다. 도대체 무엇이 한 사람을 이토록 강력하게 보호해주고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많은 사람들이 매일 다치거나 죽는다. 밝게 번쩍이는 전광판 속에서는 히어로가 사람들을 구하고 있지만, 그가 세상의 모든 이를 구할 수는 없다. 특히 지금처럼 한남동 고급 빌라 인근에서 명품 슬리퍼를 신은 사람들을 구하고 있을 때는.


[괴물이다!]

[괴물이다!]


추운 겨울 팔팔 끓는 연포탕 국물에 산낙지를 넣을 때 낙지가 제 다리들을 마구 비틀어댄다. 한 다리라도 길게 뻗어 냄비 밖으로 나가보려 하지만 요리사에게 곧 붙잡힌다. 그러면 또 낙지는 몸을 비비꼬고 비틀어댄다. 연포탕을 주문한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다.

‘우와! 싱싱하네’

‘빨리 꺼내 먹어야 돼. 낙지는 오래 끓이면 질겨지거든’


[괴물이야!]

[도망쳐!!]


임신한 딸을 위해 부엌에서 잉어탕을 끓이는 어머니는 뜨거운 채소 육수에 잉어를 넣자마자 냄비 뚜껑을 닫는다. 온 몸이 익는 열기에 잉어가 제 몸을 마구 펄떡이면 행여 뚜껑이 열릴까 체중을 실어 뚜껑을 더 단단히 닫는다. 그러면 숨이 다할 때까지 펄떡이는 잉어의 몸부림에 냄비가 사방으로 흔들리고 움직인다. 그럴수록 더 체중을 실어 뚜껑을 닫고 잉어와 마지막 힘 싸움을 벌인다. 잉어는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어머니는 딸의 몸보신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승리는 언제나 어머니의 것이다.


[아악!]


터미널의 유리문에 새빨간 피가 튄다. 유리문 안쪽에서 사람의 거죽이 허물을 벗듯 미끄러진다. 거죽이 쓰러진 바닥 위에 흥건한 피가 고였다가 타일의 경계선을 따라 모자이크 모양으로 번져나간다.

내장을 입속에 털어 넣고 쓸모없는 거죽은 유리문에 던져버린 후, 괴물은 다음 먹잇감을 찾는다. 우르르 도망치는 사람 떼 가운데 누군가가 바닥에 무릎을 찍으며 넘어진다.


[시발......]


흔하게 말하고 들리는 욕설이 누군가의 유언이 된다. 다행히 괴물의 발톱이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의 배를 가른 탓에 그는 큰 고통 없이 죽는다.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


손을 잡고 도망가던 젊은 연인이 터미널 바닥에 쓰러지듯 포개진다. 바닥에는 여자가, 여자의 몸 위에는 남자가 있다. 남자의 등에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꽂히자마자 그는 연인의 귓가에 왈칵 피를 토한다. 곧 그는 반듯한 이마를 차가운 바닥에 떨군다.


[어흐흑, 흐흑, 흐흐흑......]


울먹이던 여자는 축축해진 귓가에서 연인의 따뜻한 온도를 느끼며 눈을 감는다. 여자의 눈꺼풀을 덮은 속눈썹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혔다가 조용히 귓가로 흘러내린다. 곧 여자의 배에도 푹, 발톱이 꽂힌다.


[......끅]


사람이 흘린 피가 터미널의 벽과 타일을 붉게 물들일 때마다 사람 떼의 비명소리도 악을 쓰며 커져간다. 그 비명들은 이미 터미널을 벗어나 오창수 반장과 함께 조철수를 압송하던 기예안 순경의 귀에까지 닿았다.


‘응?’


기예안 순경이 희미하게 들리는 비명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터미널 유리문 안쪽으로 보이는 시뻘건 지옥. 놀란 그녀의 소리 없는 탄식에 오창수 경사와 조철수까지 뒤를 돌아보고 아수라장이 된 상황을 파악한다.


[기예안, 정신 차려!]

[네? 네......네]


혼란을 틈 타 조철수가 주차장 반대편 도로를 향해 뛰기 시작한다. 오창수 경사가 그를 뒤쫓으며 기예안 순경에게 소리친다.


[기예안, 정신 차리라고!]


심호흡을 한번 한 후, 그녀가 무전기를 꺼내 지원을 요청한다.


[비상 상황! 비상 상황!]


터미널 안쪽 사람 떼 속에는 김후성도 섞여있다. 후성은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진동의 발원지가 괴물인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사람들과 함께 괴물로부터 도망친다. 살아남기 위해서, 지켜야 할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데 그때, 인파 속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박 씨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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