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사체처리부 -사냥꾼 셋!-

17화 - 사냥꾼 셋! -

by 융갱


서울 신내동의 한 오피스텔에 괴물이 출몰한 날, 건물 전체에 다급한 경보음이 울렸다.

‘오작동이겠지 뭐. 자주 저러잖아?’

그러나 고요한 복도에 사람들의 비명이 울려 퍼지자 닫혀있는 문들이 도미노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관리실 직원이 밀린 관리비를 내라며 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문을 열어주지 않던 입주민이 제 발로 뛰쳐나왔다. sns에서 이름 모를 누군가와 채팅을 하던 히키코모리 청년도 1년 만에 문밖으로 나와 출구를 향해 어설프게 뛰기 시작했다.

오늘까지 마감인 기획안을 쓰다가 저장 버튼을 못 누르고 끌려나온 여자는 복도에서 머뭇거리다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져 세 번이나 등을 밟혔다. 저층의 상가 주인들은 가장 빨리 대피할 수 있었지만 생계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챙기느라, 또 못 챙긴 것들이 눈에 밟혀 가장 늦게 오피스텔을 벗어났다.

근방 직장인들의 단골식당 요리사가 화구의 불을 미처 다 끄지 못하고 대피하는 바람에 까맣게 탄 고기에서 곧 회색 연기가 피어올랐고, 오피스텔의 모든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쏟아졌다. 축축하고 무질서한 인파 속에서 검은고양이 까미는 오래 길들인 인간 집사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좋다옹’

길에서 서울의 사계절을 견디는 게 힘들어 인간 집사를 간택했지만, 집 없이 쏘다니는 즐거움도 조금씩 그리워지던 참이었다. 까미는 인간들을 피하기 위해 그들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영역 다툼을 하는 고등동물인지라 동족을 기피하지만, 갓 그루밍한 털에 불결한 손을 비비며 눈에서 꿀을 흘리는 인간은 동족보다 더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로 까미는 괴물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텅 빈 건물을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달이 뜨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계단을 몇 개나 오르락내리락 했을까?

[그르르르르]

도망가는 쥐의 등뼈를 발톱으로 움켜쥘 때 고양이들이 내는 신음과 비슷한 소리가 들려왔다. 힘든 추격 끝에 쥐나 새를 낚아챌 때 까미가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그 소리와 비슷하지만, 훨씬 더 미개하고 훨씬 더 야만적인 소리. 발톱이 뾰족한 숲의 사냥꾼들이 고통과 쾌감을 동시에 느낄 때 흘리는 소리였다.

까미는 몸의 털들이 곤두서는 걸 느끼며 멈춰 서서 주변의 기운을 살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거대하고 압도적인 사냥꾼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도망 갈까나옹?......’

보통 고양이들이라면 재빠르게 몸을 숨겼겠지만, 까미는 새끼 때부터 좀 별난 고양이었다. 검은 것은 불길하다며 늘상 쫓겨나는 외톨이. 천사와 귀신을 보는 노란 눈을 가진 고양이. 무당과 마녀들이 주는 밥을 먹고 그들의 반려가 되어주었던 검은고양이의 후손.

까미는 사냥꾼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주위를 살피며 마치 포복하듯 걷다가 앞발가락에서 냉기를 느꼈을 때, 어디선가 흘러온 붉은 핏물이 자신의 발끝을 적시고 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뭐, 어차피 온몸이 까만색이라 겉보기엔 티도 안 나겠지만.

그래도 출처를 모르는 피가 몸에 묻는 건 매우 불결하고, 그건 혓바닥으로 몸을 핥아 청결을 유지하는 고양이로서 허용하기 힘들다. 까미는 얼른 발을 들어 공기 중에 피를 찹찹 털어냈다. 그리고 발끝에 닿은 핏물을 거슬러 올라가 피의 근원지로 조금씩 가까이 다가갔다. 복도를 걷고, 계단을 더 올랐다. 나긋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갓 사냥한 참새의 몸에서 풍기는 피와 내장의 냄새가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

피의 근원지는 젊은 여자 인간이었다. 뱀이 벗은 허물처럼, 인간들이 벗어던진 인형탈처럼, 알맹이 없이 거죽만 흐물흐물 남은 인간. 지퍼가 열린 듯 벌어진 뱃가죽 밖으로 부러진 뼈가 튀어나온 채 아무렇게나 누워있는 가엾은 인간.

까미는 몰랐지만 그 불쌍한 여자는 까미를 알고 있었다. 오늘까지 마감인 기획안을 저장하기 위해 다시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갈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에게 밀려 넘어진 여자. 그녀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신발 굽에 세 번이나 등을 밟힌 후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텅 빈 오피스텔 복도에 혼자 엎드려있는 여자의 옆으로 검은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지나갔다. 꼼짝없이 괴물에게 먹히기 전, 그녀의 흐릿한 눈에 마지막으로 담긴 무해한 생물이 바로 까미였다.

‘사냥꾼 하나!’

그 여자의 옆에는 입가에 붉은 피를 묻힌 괴상한 짐승이 있었다. 터질 듯 한 종기들이 울룩불룩 솟은 고동색 피부는 얼핏 숲속 짐승의 보호색처럼 보였다. 숲속 고목의 나무껍질과 같은 짙은 갈색의 피부.


그러나 껍질의 갈라진 틈 사이로 개미가 기어 다니고 새와 다람쥐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고목의 깊은 생명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끈한 표면에 환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괴물의 피부는 숲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위적이고 이질적인 감정을 들게 했다. 모네의 부드러운 풍경화 속에 앤디 워홀의 새빨간 캠벨 수프 캔이 그려진 느낌. 오랜 진화의 시간 속에서 지구에 나타난 존재가 아닌, 갑자기 지구에 떨어진 기묘한 존재.

‘웩, 고추냉이 냄새다옹’

게다가 그 괴물에게서는 집사의 동물병원에 사신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냄새가 났다. 고추냉이 풀을 씹었을 때처럼 코가 찡해지는 매캐한 냄새. 집사가 마스크를 끼고 죽은 동물의 몸을 닦을 때 천천히 피어오르던 불길한 냄새.

어어?

‘사냥꾼 둘!’

복도 반대편에서 괴물 한 마리가 더 나타났다. 괴물은 무언가로부터 나는 듯 한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괴물의 뒤를 좇고 있는 것은 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강한 상위 레벨의 포식자였다. 순식간에 포식자의 팔꿈치에 괴물의 등뼈가 산산조각 났다.

포식자는 까미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인간이었다. 집사의 동물병원에서 빠져나와 거리를 배회할 때, 까미도 전광판에서 그를 보았다. 인간들 사이에서 ‘히어로’라 불리는 그를.

그는 발톱도 무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전형적인 힘센 인간처럼 근육이 우락부락하지도, 몸뚱이만한 바주카포를 어깨에 메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본질은 사냥꾼이 분명했다.

최고의 장비가 골고루 든 가방을 들고 사람을 죽이러 가는 스나이퍼와 맨손으로 괴물을 때려잡는 히어로의 차이는 무엇일까? 멀리서 목표물을 저격하는 스나이퍼는 손에 피를 묻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깨끗한 한 방으로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그러므로 스나이퍼의 총에 죽은 희생자는 운 좋게도 꽤나 우아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그들에게는 죽기 전 짧은 고통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으니.

그러나 히어로의 맨주먹에 당하는 괴물의 죽음은 우아하지 않았다. 괴물은 죽기 전까지 두들겨 맞고 짓밟히고 차이고 주요부위를 유린당하며 자기보다 더 강한 존재로부터 오랫동안 치욕을 느꼈다. 무기 없이 맨손으로 가하는 폭력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다. 상대를 치욕스럽게 만들고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굴복시킨다.

까미는 인간의 피에 굶주린 괴물이 혐오스러웠지만, 어떤 인간들은 고양이를 학대하고 고문하며 심지어 잡아먹기도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괴물은 고양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양이에게 있어서 괴물은 그저 어울리고 싶지 않은 불쾌한 종족일 뿐이다. 그 다른 종족이 ‘히어로’라 불리는 인간에게 무참히 당하고 있었다. 존중 없이, 화풀이 대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병이 오게 하는 폭력적인 폭력으로.

까미의 눈에는 인간을 사냥하는 괴물도, 온몸에 보랏빛 피를 묻히고 광인처럼 날뛰는 히어로도 모두 사냥꾼으로 보였다.

‘......사냥꾼 셋!’

결국 두 마리의 괴물은 완전히 바닥에 쓰러졌다.

히어로는 괴물의 앞발에서 길고 날카로운 발톱을 고드름 자르듯 뽑아냈다. 쓰러진 적의 배에서 검을 뽑아내듯이. 그 발톱으로 확인 사살하듯 괴물들의 목을 그었다. 술에 취해 칼을 갈아두지 않은 망나니의 검에 베인 사형수처럼 괴물들의 머리는 목에서 반쯤 분리되어 덜렁거렸다. 그 발톱이 인간의 뱃가죽을 지퍼 열 듯 손쉽게 가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괴물의 피부가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지 알 수 있었다.

괴물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확실히 숨이 끊긴 것 같았다. 그러나 히어로는 발을 들어 수십 번이나 더 괴물의 목을 짓이겼다. 히어로가 괴물의 머리와 목을 발꿈치로 콱콱 밟아댈 때마다 보랏빛 피가 공중으로 분수처럼 솟구쳤다. 히어로는 그 피를 온몸에 뒤집어썼지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괴물의 머리는 발톱으로 목을 그었을 때보다 점점 더 분리되며 어깨를 향해 꺾였다. 깨끗하게 잘리지 못한 채 핏줄과 근육으로 몸뚱이와 겨우 연결된 괴물의 머리는 어쩐지 더 굴욕적이고 슬퍼보였다.

‘후우’

히어로는 마치 헬스장에서 막 운동을 하고 나온 인간처럼 가볍고 긴 숨을 뱉었다. 그리고 방송국과 인플루언서의 드론 카메라가 그를 촬영할 수 없는 구석진 공간을 찾아들어갔다. 계단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그제야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가리고 있던 티타늄 가면을 벗었다.

서울의 모든 인간과 길고양이와 새들이 히어로를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히어로의 얼굴과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가면 속에 숨겨져 있던 그의 모습이 드러났을 때, 까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괴물의 보랏빛 피에 젖은 구불거리는 머리카락과 흰 피부. 쌍꺼풀 없이 부드러운 커피색 눈동자. 눈에 띄게 아름답고 처연한 이목구비지만 뚜렷한 턱선과 넓은 어깨 덕분에 남성적인 균형미마저 느껴지는 외모. 그의 모습은 악을 물리치고 인간을 구원하는 히어로라기보다는 잡지 속 모델이나 배우처럼 보였다.

‘우와, 예쁘다옹’

까미가 그의 미모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복도의 오피스텔 문들 중 하나가 벌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 엄마”

어린 남자 인간의 앳된 목소리.

“엄마, 엄마, 춤추고 나오면 살려준다아!”

대피령이 떨어진 텅 빈 오피스텔에 엄마는 나타나지 않는다. 어린 인간은 금세 울먹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어디 갔어? 후에에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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