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사냥되는 사람들-
19화
{ #강남고속터미널 #먹방 #소름 }
강남고속터미널을 태그한 동영상의 조회 수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목숨보다 SNS 조회 수가 더 중요했던 누군가가 괴물로부터 도망치며 실시간으로 영상을 촬영해 올린 것이다.
“괴물을 실제로 본 건 처음인데요.
확대해볼게요. 어때요, 잘 보이시나요?......와씨, 뭐야! 개징그러워!”
영상 속 괴물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어? 여러분 저쪽 출구에서도 괴물이 한 마리 더 나타났습니다. 제일 빨리 도망친 사람들이 제일 먼저 먹히고 있습니다!”
한 화면에 동시에 담긴 놈들만 대여섯 마리.
영상 속에서는 여러 마리의 괴물들이 강남고속터미널에서 사냥을 벌이고 있다. 터미널은 지하철역, 지하상가와 연결되어 있는데다 개찰구도 여러 개다.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출구를 향해 이리저리 도망쳤고 괴물들은 출구를 막아섰다. 그리고 혈색이 좋거나 잘생겼거나 살이 통통히 오른 사람을 골라 부드러운 살에 피 묻은 발톱을 푹푹 찍어댔다.
괴물들은 사람의 내장을 잘도 발라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긴다. 사람이 갓 잡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댕강댕강 잘라낸 후 먹지 않는 몸은 바다에 다시 던져버리듯이. 한 때 호령하던 바다에서 지느러미 없이 죽어가는 상어처럼, 너덜거리는 사람의 거죽들이 터미널 바닥에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있었다.
“개소름, 지금 토할 것 같고요. 괴물 새끼들이 출구를 다 막았어요.
씹새끼들, 지능이 있는 건가?”
영상의 조회 수는 점점 더 빠르게 치고 올라간다.
“화장실에 숨으면 살 수 있을까요? 여러분, 댓글로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이어지는 타닥타닥 신발 굽 소리와 숨찬 호흡,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여자 화장실 표지.
“와, 살았다!”
그러나 코너를 돌자 쓰레기통과 손걸레 밀대걸레 따위로 입구가 막혀있는 화장실이 보인다. 얼기설기 잡동사니를 겹쳐둔 틈 사이로 화장실 안쪽의 사람들이 불안한 눈총을 쏜다. 그 중 정장 차림에 머리카락을 반듯이 빗은 한 남자가 바짝 다가와 여기는 자리 없으니 나가라는 듯 렌즈를 향해 훠이훠이 손을 젓는다. 틈을 통해 보니 남자의 얼굴에 핀 검버섯도, 남자의 양복 깃에 달린 ‘사랑의 열매’ 뱃지도 더 잘 보인다.
영상의 마지막은 렌즈의 각이 급격히 흔들리더니 정지화면 위로 후드득 피가 튀는 것으로 끝났다. 아마도 이 영상을 촬영한 이는 마지막까지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SNS에 업로드 버튼을 누르고 죽었을 것이다.
운 좋게 도망친 사람들은 곧 터미널 밖으로 뛰쳐나왔다. 경찰과 군인, 특수부대원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했고 상공에는 구조헬기와 전투용 드론들이 새떼처럼 속속 나타났다.
[어때? 잘 보이나?]
[네! 잘 보입니다]
[안에 몇 마리나 있나?]
[열하나......아니, 열두 마리입니다]
[피해 규모는?]
[시신이 더미로 쌓여있어서 피해자 수를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터미널 내부는 온통 피 칠갑입니다. 이번 건은 살인사건이 아니라 대규모 학살이라 보고해야.....우웁, 죄송합니다. 우욱!]
기예안 순경은 현장을 지휘하는 장교의 뒤에 잠자코 서서 무전기 너머로 오가는 말들을 들었다. 이처럼 많은 괴물들이 동시에 나타난 건 처음 있는 일이다. cctv가 온통 거리를 감시하는 세상인데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놈들일까?
[히어로는 언제 도착하나?]
[지금 한남동 현장에서 전투 중입니다]
[아직도?]
[현재까지 열 마리 제거 완료. 반경 1km 밖으로 도주한 놈들까지 여섯 마리 남았습니다!]
경찰과 군인, 특수부대가 다 달라붙어도 히어로 없이는 괴물 한 마리도 잡기 어렵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한두 마리씩 출몰했기에 놈들을 죽여 괴물사체처리부로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괴물 수십 마리가 서울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땅굴에 숨어서 바퀴벌레처럼 번식이라도 한 걸까? 만약 터미널 안에 있는 놈들이 먹이를 찾아 밖으로 나온다면? 그리고 채 제거하지 못한 놈들이 멀리, 어쩌면 서울 밖까지 도주해 번식하기 시작한다면?
[재앙이네요]
기예안 순경의 머릿속 질문을 듣기라도 한 듯 누군가 대답한다. 그것도 꽤 익숙한 목소리로.
[어우! 뭐야?]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최연준 경위가 장승처럼 서 있다.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세요? 제가 바로 옆에 와도 몰라보시고]
[아니, 왜 왔어요?]
[순경님이 현장에 있다고 해서요]
[뭐 하러 와요? 위험하게]
늘 실실 웃고 다니는 최연준 경위가 이번엔 웃지 않고 대답한다.
[위험하니까요. 순경님한테 보호받으러 왔죠]
어처구니없는 그의 말에 기예안 순경은 헛웃음이 터졌다. 헛웃음이라도 웃고 나니 조금 더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내가 여경이라 여길 온 건가? 꼴에 남자라고?
아니면 팀장님이 가보라고 했나?’
기예안 순경은 그의 행동이 불순한 건 아닌지, 그녀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지 의도를 파악하려고보는 스스로에 놀랐다. 경찰이 된 후 생겨난 ‘인간불신’이 평소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 동료에게도 자동반사로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의 공포가 가라앉고 머릿속이 차가워졌기에 이런 생각도 할 수 있음을 곧 깨달았다. 현장을 처음 봤을 때의 패닉 상태였다면 자신을 따라 위험한 곳에 와준 최연준 경위가 백마 탄 왕자......는 아니고, 벤츠 탄 경찰 비슷한 걸로는 보였을 테니까.
차분해진 그녀는 곧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군인들과 서초경찰서에서 현장을 지휘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아무런 임무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도와야지, 사람들을. 난 경찰이니까!’
------------------------------------------------------------------------
후성은 출구를 향해 뛰었다. 그곳은 개방된 마지막 출구였다.
군인과 경찰들이 고속터미널의 출구들을 카바인 판으로 죄다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카바인’은 히어로 영화 속의 무기 소재인 상상의 금속 ‘비브라늄’에 비견될 만큼 강도가 높은 희귀금속이다. 그만큼 비싸지만 괴물을 방어하기 위한 무기를 제작할 때는 카바인을 사용해야만 한다. 놈들의 파괴력에 부서지지 않는 유일한 금속이니까.
단 하나 남은 출구 앞에서 대피하는 사람들을 유도하고 있는 건 노원경찰서 소속의 젊은 경찰들, 기예안 순경과 최연준 경위다.
[여기로! 여깁니다!]
[곧 터미널이 폭파됩니다! 저희가 엄호할 테니 이리 나오세요!]
군인과 경찰들이 내린 결론은 강남고속터미널을 폭파해 괴물들을 한 번에 제거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재 유용 가능한 인력을 모두 동원해도 히어로 없이 열두 마리의 괴물을 모두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만약 사냥 중에 괴물 몇 마리라도 놓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할 것이 뻔했다.
고속터미널 인근은 서울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목소리 큰 계층이 거주하는 강남구와 서초구 땅인데다, 교통의 중심지인 만큼 유동 인구가 넘쳐난다. 고속터미널 밖으로 도주한 괴물들에게는 상다리 휘어지는 잔칫상이 펼쳐진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 만약 이곳에서 인간이 무차별 사냥당하는 참사가 벌어지면 그렇지 않아도 목소리 큰 사람들이 더 시끄럽게 목청을 울리겠지.
‘그럼 터미널 안에 있는 사람들은요......?’
‘대를 위해 소는 희생해야지’
터미널 안에 있는 사람들을 살리자고 수많은 시민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다는 것이 지휘관의 결단이었다. 기예안 순경과 최연준 경위는 무고한 시민들을 괴물과 함께 공중분해하겠다는 작전에 충격을 받았지만 달리 좋은 수도 없었다. 다만 어쩔 수 없이 터미널을 폭파해야 한다면 희생자의 수는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교에게 겨우 허락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을 터미널 밖으로 대피시킬 수 있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군인들이 다른 출구들을 카바인 판으로 막는 동안 노원경찰서 소속의 경찰 둘은 마지막 출구를 지키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밖으로 대피시키기 위해 애썼다. 장교가 붙여준 군인 넷이 기관총을 들고 두 경찰들을 엄호해주었다. 이제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면 식욕에 충실한 괴물들은 벽을 뚫고 터미널 밖으로 나오려 할 것이다.
[폭파 2분 전. 대피하라!]
[게이트에서 물러나라!]
무전기에서 장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교의 부하인 군인들이 먼저 뒤돌아 뛰어나갔다. 아직 터미널 안에 사람이 남아있을 수 있지만 이제는 정말 출구에서 최대한 멀리,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기예안 순경은 마지막으로 출구를 향해 뛰어오는 한 시민을 향해 소리쳤다.
[폭파 1분 전! 얼른 나오세요!]
출구를 향해 달려오는 그 마지막 시민은 비쩍 마른 장신의 남자, 바로 김후성이다.
후성은 괴물들로부터 도망치며 자신에게 찾아온 변화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진화에 가까운 현상을 더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후성은 자신이 그 누구보다 더 빠르게 괴물들을 피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는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아도 괴물이 내는 진동만으로 놈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괴물들은 검은고양이 까미와 동일한 형태의 진동하는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그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이는 오직 후성뿐이었다.
‘가지마세요! 그쪽에 괴물이 있어요’
후성은 괴물이 있는 쪽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소리쳤지만 그의 말을 듣고 방향을 돌리는 이는 없었다. 그의 소심한 목소리에는 남들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없었고, 볼품없이 마른 그의 외모와 후줄근한 차림새는 신뢰감을 주지 못했다. 존재감 없는 후성의 언어는 괴물에게 사냥당한 사람들의 살점과 피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졌다.
후성은 괴물에게 향하는 사람들을 뻔히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에게는 괴물의 위치를 감지하는 능력만 겨우 있을 뿐 괴물을 제압하거나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런 건 히어로처럼 특별한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니까.
결국 그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돌려 출구를 향해 뛰었다. 출구 밖에서 기다리던 경찰이 어서 오라며 그에게 팔을 뻗는다. 그는 경찰의 손을 붙잡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속도를 냈다. 경찰의 손을 붙잡기 직전인 그때,
‘살려주세요’
후성의 귀에 어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