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누군가를 위해서
[펑!]
기예안 순경은 두 눈을 꼭 감았다. 눈꺼풀 위로 혼란한 빛의 일렁임이 느껴졌다. 먹먹한 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온몸을 향해 쏘아붙는 뜨거운 열기는 생생했다. 터미널 벽을 감싼 카바인 판이 폭파로 인해 발생한 열과 파편들을 어느 정도 막아주었지만 그녀는 출구에서 너무 가까이 있었다.
어느 정도 열기가 걷히고 간신히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건 손깍지를 낀 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는 최경위의 팔이었다.
“으악! 뭐하는 거예요!”
기예안 순경은 최경위의 팔을 잡고 배에 얹힌 그의 손깍지를 풀었다. 최경위의 두 팔은 그녀의 손이 닿자마자 종이인형처럼 가볍게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는 등을 휙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
“하하, 미안해요. 순경님, 그게......”
그렇지 않아도 기예안 순경보다 피부가 희고 고운 사람이 더 하얘진 얼굴로 허허실실 웃었다. 그러나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터져 나온 신음.
“으윽!”
“왜 그래요?”
최경위는 신음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왼쪽 위팔을 붙잡고 새우처럼 등을 웅크렸다. 그제야 그의 왼쪽 옷소매 밑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는 붉은 핏방울들이 보였다. 기예안 순경은 최경위의 웃옷을 끌어내려 위팔의 상처부위를 유심히 확인했다. 그녀는 체대에 다니던 시절 교양수업 시간에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배운 적이 있었다.
“아악! 아픈 델 왜 눌러요?”
“그냥 상처가 깊은지 본 거예요”
꾹.
“아!”
“엄살떨지 말아요. 좀 스친 거 가지고”
꾸우욱.
“아아아!”
“아오, 시끄러. 아직 귀도 먹먹한데 볼륨 좀 낮춰요”
“아파요, 진짜”
“남자가 이 정도로, 쯧”
툴툴거리며 말했지만 기예안 순경은 그녀를 끌어안아 등을 감싸주었던 최경위 덕분에 자신이 다치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렇지만,
‘누가 도와달라고 했냐고!’
고맙긴 한데 다음엔 정말 안 그래도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어어어?]
[우와아!]
[어어!]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고함을 치기 시작한다. 등 뒤에서 무언가 묵중한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기예안 순경과 최연준 경위는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강남고속터미널, 아니 방금까지 터미널이었지만 이제는 폭파로 잿더미가 된 그곳에서 뿌연 먼지바람이 활활 피어올랐다. 잿더미 곳곳에 아직 남아있는 불씨에서 피어오른 연기와는 달랐다. 건물이 무너질 때 돌덩이와 파편들이 서로 마구 부딪히며 일어나는 시멘트가루 섞인 바람. 행여나 저 바람에 섞인 돌가루가 눈에 튈까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눈을 감았다.
얼굴에 돌가루가 스칠 때 생긴 생채기들에서 따가움을 느끼며 눈을 떴을 때, 한층 엷어진 먼지바람 뒤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사람들의 시야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것은 피부와 눈알을 아프게 하는 돌가루보다 훨씬 큰 거북함을 불러일으켰다. 점점 저 다가오는 잿빛 형체는 혹 살아남은 괴물의 것일까?
[사?]
차라리 눈을 감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도, 놈의 발톱이 내 배에 꽂힐까 두려워서 다시 눈을 감을 수도 없는 공포.
[사, 사?]
먼지가 걷히며 서서히 잿빛 형체의 정체가 드러났다.
[사람이다!]
검은색 후드집업을 입고 후드를 푹 뒤집어쓴 남자와 그의 키의 절반도 채 안 돼 보이는 조그만 여자아이. 축 늘어진 아이는 남자의 두 팔 위에 안겨있고 두 사람의 머리카락과 온몸에는 뿌연 시멘트가루와 작은 부스러기들, 피가 비치는 상처들이 가득했다.
군인들은 겨누고 있던 총구를 다시 아래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 형체가 괴물이 아니라 사람임에 안심했지만 그들의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아이의 시선이 그들을 반기는 사람들이 아닌 허공을 향하고 있었기에. 군인들이 남자에게서 아이를 넘겨받았다. 아이는 바닥에 눕혀졌고, 구급대원이 재빨리 심폐소생술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눈은 깜박이지 않았고 여전히 허공을 향하고 있다. 그 갈색 눈동자 안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사람의 영혼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의 눈은 의안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모습은 마치 인형을 살리겠다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듯 기괴해 보이기도 했다.
한참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아이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구경하던 사람들 틈에서 한 여자가 튀어나왔다.
“하은아!”
여자는 아이의 작은 몸 위로 쓰러질 듯 휘청거리며 다가왔다. 그리고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아이의 작은 손을 자신의 분칠한 뺨에 갖다 댔다. 화장으로 붉게 물들인 뺨처럼 붉어진 여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속눈썹에 칠한 마스카라 액이 섞인 먹색 눈물이었다.
눈물이 마를 때쯤, 여자는 구급대원에게 받은 반창고를 제 손등에 붙이고 있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는 잿더미에서 아이를 안고 나온 남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김후성이었다.
“살인자!”
여자의 외침에 아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후성을 향한다.
“추행범! 강간범!”
후성은 반창고를 다 붙인 후, 땅에 떨어진 반창고 포장지들을 주워 바지 호주머니에 넣었다. 길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되니까.
“내 딸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후성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딸......진짜 딸 맞아요?”
여자의 얼굴은 하은이와 꼭 닮아있었다. 그럼에도 후성은 다시 물었다.
“길에 버린 쓰레기가 아니고?”
“내 딸 살려내애!”
여자는 후성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끈질기게 제 할 말만 이어갔다. 여자가 다시 먹색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어느새 후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져있다. 어린 아이를 구해낸 히어로를 보듯 안쓰럽고 동경어린 시선에서 범죄자를 향한 불안하고 의심어린 눈빛으로. 근처에 있던 경찰들이 슬금슬금 후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
후성은 속으로 한숨을 크게 한번 쉬었다. 그리고 잽싸게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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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의 면회자 대기실은 한적했다. 딱딱한 소파가 여러 개 놓여 있었지만 고무나무 화분 뒤편 가장 구석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있는 후성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내데스크의 간호사는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는 듯 손에 든 서류의 칸마다 체크 표시를 그려 넣었고, 매점의 직원도 이어폰을 낀 채 조용히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들리는 소리라곤 창문 밖 멀리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 그리고 역시 작게 볼륨을 맞춘 tv 소리뿐이다.
[(mbs뉴스)
앵커>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앞. 주변에 무장경찰과 구급차가 가득합니다.
어제 낮 이곳에서 폭탄 테러로 인해 건물 대부분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민간인 사상자 50여 명이 넘는 참사가 발생한 가운데, 경찰은 현장에서 도주한 폭탄 테러 용의자를 추적 중인 것으로 전해져......]
뉴스를 보며 후성은 그가 구하고 싶었던 아이를 생각했다.
‘하은이는 살았을까?’
터미널이 폭파되기 직전, 후성이 살려달라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갔을 때 건물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비스듬히 넘어진 기둥 밑 깊고 좁은 공간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파묻고 앉아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후성은 아이를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지만 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자, 어서 나와!”
후성의 목소리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의 투명한 눈을 보고서야 후성은 아이가 맹인임을 알았다.
“꼬마야, 이름이 뭐니?”
“하은이요”
“하은아, 손 좀 앞으로 내밀어볼래? 여기 있으면 위험해. 우리 같이 나가자”
“아저씨 히어로예요?”
‘아니’
하지만 후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꼬마라도 생판 모르는 아저씨보다는 히어로를 믿고 따라가고 싶을 테니까.
“알아요. 히어로인 거”
쩌적. 기둥에 금가는 소리가 들렸다. 기둥이 완전히 부러져 무너지기 전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야 했다.
“내 팔이 짧아서 하은이가 손을 내밀어줘야 거기서 꺼내줄 수 있어.
자, 어서! 엄마한테 데려다줄게”
“엄마한테 안 가요. 난 여기 있을 거예요”
“무슨 소리야?”
“엄마한테 난 필요 없어요. 난 앞이 안 보이니까, 엄마를 힘들게 해요”
“아니야. 엄마들은 안 그래. 오히려 하은이가 있어야 힘이 날 걸?”
후성은 스스로에게 놀랐다. 내가 이런 말도 할줄 아는 사람이었나?
“아까 사람들이랑 도망갈 때, 엄마가 내 손을 놓았어요”
“응?”
“엄마가 맨날 나 때문에 힘들다고 했어요. 그래서 손을 놓은 거예요”
후성은 할 말을 잃었다.
하은이의 머리 위에 있던 기둥이 반쯤 갈라져 아래로 더 주저앉았다. 낮아진 공간만큼 하은이는 허리를 더 굽혀야했다.
“하은아, 같이 나가자. 제발. 엄마가 기다릴 거야”
“......”
“아저씨가 약속할게. 엄마가 하은이 기다리고 있는 거”
아이의 마음이 조금은 움직였던 걸까? 아이가 손을 달싹였을 때,
쿠쿵!
기둥이 완전히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