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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택트[Arrival, 2016] / 좀 다른 분석.

엄마와 아기가 만나는 순간 같았던. 영화[컨택트]

by 봉봉어멈
이걸 자수로 완성하려면 쉽지않을것 같아서 일단 스케치로.



**이 감상평은 영화 전체적인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봉 중인 영화에 예의가 아닌 듯 하나, 비밀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한 관계로 어쩔 수 없었어요.

스스로의 약속을 어겨서 쑥스럽네요.**




미지의 존재와 인간의 이야기가 이런 전개 일수 있다니.

SF영화를 좋아하기에 이 영화를 보고 매우 흠칫 놀랐고,

감동했고, 때론 슬펐고, 행복했다.

보물을 발견했다!!


사실 이글 이전에 먼저 쓴 글이 있는데 A4 다섯 장 이상의 분량이 되자,

검열관(욥)에게 저지당해서 새로 포인트만 잡아서 쓰고있다.


영화는 '시간'을 굉장히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사실 그게 제일 중요한 핵심이고, 이야기의 주축인데.

난 이 영화에서 그보다 다른 부분이 더 많이 와 닿았다.


바로 주인공 루이스와 그녀의 딸에 대한 이야기.

영화는 분명 미지의 존재와 인류의 만남을 그리고 있고, 루이스가 헵타포트 언어를 익히게 되며 알게 되는

그녀의 미래의 사건들이 내용의 전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어멈은 '모성애'로서의 접근을 봤다.


영화 속 루이스를 미지와의 만남과정을 풀어나가는 대단한 여성 언어학자로만 느끼기보단,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듯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는 그녀에게서

깊은 모성애를 가진 대범하고 굳건한 엄마의 모습이 느껴졌다.


내가 봉봉을 키우고 있어서일까.

처음부터 루이스와 그녀의 딸의 서사를 보면서 눈물을 펑펑 흘렸다.

슬픈 장면만이 아님에도 보는 내내 봉봉이 떠올라 더욱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다.


딸의 서사가 그려지는 과정에서 딸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그 이후에 처음 미지의 존재를 마주한 과정이 그려진다.

하지만 영화는 처음 시작 부분의 서사와는 달리, 사실 자신의 딸이 태어나기 이전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데. 그렇게 장면이 이어지다 보니 마치 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으로

세상과 죽음에 무덤덤해진 건가 싶게 오해할 정도로 루이스는 침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였을까? 그녀는 미지의 존재를 처음 만나서도 이전에 왔던 사람들보다 대담하단 소리를 듣고.

약간의 긴장만 할 뿐 그녀는 낯선 상황에 매우 안정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분명 준비되어 있지 않은, 절대로 준비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아기를 낳았을 때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예쁘고 신기하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두려운 존재.

처음엔 눈도 맞추지 못하고 엄마인 나를 거의 소리로만 인식 하지만 점차 눈빛과 표정,

몸짓과 소리들이 어우러져 감정을 주고받으며 비로소 정말 엄마와 아기가 되어갔다.

그야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의 만남.

진정한 Arrival의 순간이 그것은 아닐까?


루이스는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를 그렇게 만났다.

물론 아이를 낳아 처음 얼굴로 마주했을 때처럼 아름답지 않지만, 잔잔히 울리는 새소리와 함께

긴장되고 무서우면서도 경이롭고 신기한 존재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그것부터 고민하는 것.

언어학자이지만 내재된 모성으로 미지의 존재와 단순한 소통이 아닌

마치 내 아이에게 처음 언어를 알려주는 과정처럼 보이는 장면들이, 미래의 그녀의 아이와의 만남과

묘하게 교차되며 외계인과의 만남이지만 그 과정이 모성애로 아이를 감싸안는 느낌이 들었달까.


감독이(혹은 원작자의) 의도한 바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에 이르러 루이스가 혼자 우주선에 들어갈 때 카스텔로(헵타포트인2)가 말한다.

애벗(헵타포트인1)은 소멸의 과정에 있다고.

후에 그녀의 아이에 대한 서사가 나올 때, 궁금해졌다.

아이는 (사진으로 엄마 아빠의 장면을 봐서일 수도 있지만) 주황색 우주복을 입은 엄마 아빠와

헵타포트로 보이는 외계인을 점토로 만들어 마치 동물들을 만든 것처럼 보여준다.

상상해서 만든 것 같으나 마치 어떤 기억이 있어서 만들어 낸 것처럼.

혹시, 그 소멸과정에 있던 애벗이 그녀의 딸의 환생이 아닐까.

그래서 더 루이스의 감정이 애틋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럼 내용이 너무 이상한가?


액자에 걸린 딸아이가 그린 그림도 미지의 존재와 엄마아빠가 만났을때 모습인데 방호복을 벗어던진 두 주인공의 모습과 새만 그려져 있듯,

애벗에게 처음 만난 제일 인상 깊은 존재가 그 모습은 아니었을까.

왜 아기들이나 아기동물들은 제일 처음 만나서 소통하는 존재를 엄마라고 생각한다 하지 않던가.

엉뚱하다면 엉뚱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루이스역시 마치 그녀의 아이에게 하듯 미지의 존재와 하나하나 소통해 나갔고,

바꿀 수도 있는 미래의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건 아닐까.

어쩌면 그녀는 헵타포트어를 알게 되며, 미래의 자신의 딸이 애봇의 영혼일 수 있음을

이미 알았던 것은 아닐까?


이번 글은 다시 봐도 엉뚱한 어멈의 무비 path이다.


사실 제일 하고 싶은 이야기 들은 이제 끝났고,

마무리로 영화에 대한 제일 이해 안 되는 부분이었던 미래에 대한 부분과 그 해석을 어멈식으로 하나 정리하고 마칠까 한다.


줄거리 중에 미래와 현재를 오가는 루이스의 모습이 반복되고 내용이 극에 치달을 때 의문이 드는 장면이 있다. 바로 중국인 섕장군을 만나는 미래의 모습인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은 그냥 미래가 아닌 것 같이 아이러니했다. 마치 그녀 자신이 정해진 미래의 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 들어가 당황하는 모습이 말이다.

섕장군은, 18개월 전에 당신이 나에게 전화를 해주었기에 내가 마음을 돌렸다 하고, 거기에 루이스는 섕장군의 전화번호를 모른다 말한다. 그에 섕장군은 왠지 지금 이걸 알려줘야 할 것만 같다고 하며 자신의 전화번호와 자신의 아내의 유언을 말해준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의 섕장군에게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그것들을 말하고. 그 장면은 뭔가 아이러니했다. 그녀가 미래를 볼 수 있다면 미래 속에 있는 그녀는 미지와의 존재와 소통을 해결한 후이기 때문에 샹장군을 통해 알 필요 없이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게 맞다. 하지만 모르는 것 같은 그녀. 그리고 알려줘야 할 것 같다는 섕장군.


그 장면들을 보며 고민이 더 많았는데 아귀가 맞게 정리가 됐다.

바로 헵타포트어를 처음 띄엄띄엄 익혀 나갈 때는 그녀의 미래의 모습도 단편적이고 수동적이지만,

어느 순간 "이제, 알았어요. 읽을 수 있어요."라고 헵타포트어를 완전히 깨닫는 순간

그녀는 미래를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 또한 개척해 낸 것이다.


사실 초점을 주인공 루이스의 모성에 맞춰서 글을 쓰다 보니 영화를 보며 제일 궁금했던

시간에 대한 내용이 부족하다 느껴지지만, 마지막에 정리된 저 두 문단이면 그 부분에 대한

약간의 해소는 된 것 같다.


헵타포트어를 통찰하게 되며, 미래의 선택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지만.

결국 죽음으로 내 곁을 떠나게 될 아이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래서 한없이 늘 슬픔을 가진 표정이었던 것.

그것은 그녀의 깊은 '모성애'가 미지의 존재를 만난 순간 시작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피할 수 없는, 피하고 싶지 않은 운명의 도착.

그래서 arrival은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어요? "라고 하며

수줍게 웃는 딸아이의 모습이 봉봉이 같다.


엉뚱하고 감성적인 어멈의 첫 무비 pass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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