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함께한 봄, 여름, 그리고 가을.
올해는 시간이 정말 무럭무럭 흘렀다.
무럭무럭과 시간이라는 개념이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지만,
조금은 성장키워드로 가득 찬 한 해였다.
탱글이가 1학년이 되서 무럭무럭,
봉봉이는 봉봉이대로 무럭무럭,
나도 욥도 각자 무럭무럭.
새해라고 인사를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여름이라더니,
가을이라고 쓰려고 보니 겨울.
그것도 이제 올해의 마지막날을 이틀 앞두고 있다.
작년쯤이었나…
계속해서 내 작업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썼던 글에 <그림책작가되기>라는
꿈을 적어놓았다. (이곳 어딘가에..)
그 꿈은 그냥 막연했지만,
정말로 오랜만에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물론 말한다고 절대로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지만 이번엔 정말로 해보고 싶었다.
(40대에 아직 꿈이라니..)
결과가 보이지 않는 막연한 그림들,
막연한 글들. 그리고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이는
소소한 작업들.
스스로 한 일들에 대한 평가기준이 높아서 인지.
아니면 정말 무엇이 하고 싶은지를 찾지
못해서 인지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그동안 나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고,
뭐가 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뭘 잘할 수 있나...'
하는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우연히 시작하게 된
어린이집 학부모 그림책 동아리.
그 동아리 모임을 통해서 그림책을 함께보며
이야기 나누는 경험을 하게 됐고,
2-3년을 이어진 그 모임을 통해
그림책을 꽤 깊게 사랑하게 됐다.
사랑에서 그치지 않고, 마음이 움직였다.
'나도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내 작업의 제일 문제는
늘 호기심으로 시작하지만
꾸준히 뭔가를 해내지 못한다는 것.
되게 부끄럽게도 이 브런치의
10년간의 기록만 봐도 그렇다.
이거 뭐.. 중부난방.
어느 기록은 지우기 아까워 두는 것이지,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들도 많다.
끈기도 참 없고 하고 싶은 건 많고.
어쨌든, 자기 비하는 여기까지 하고.
그림책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며 찾아보다
알게 된 그림책 연구소가 있었는데,
알맞은 경로를 찾지 못해
공부를 따로 이어가진 못하고 잊어버렸었다.
그러다 정말 우연히.
올해 1월 같은 영혼을 가진 친구로부터 제안을 받아
함께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운영하는
그림책연구소 수업을 듣게 됐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무럭무럭 자랐다.
내 마음의 나무가.
앙상하기 그지없던 내 마음에
삐죽삐죽 새싹이 돋고,
마른땅에 슬금슬금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숙제와 미리 읽어야 할 책들에 둘러싸여,
어린인지 어른인지 모를 내가 세 계절을
도서관 유아자료실에서 한동안 살았다.
그렇게 그림책에 파묻혀 사느라
어느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자발적으로 파묻히려고
더욱더욱 노력했던 것 같다.
짧은 이야기 속에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남기는
그림책의 매력 속으로 자꾸만 더,
마치 갯벌 속으로 빠져버린 장화처럼
점점 더 빠져들어갔고.
어쩌다 보니 이 시간이 되어버렸다.
올해는 핑계지만 그렇게 그림책 속에 파묻히고
공부하며 배워나가느라
주변을 잘 둘러보지도 못하고,
(정확히는 둘러보는 일도 뒤로 미루고)
나를 위해 온전히 한 해를 보냈다.
얼마 만에 이런 시간이 온 건지.
내가 나를 위해 이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고
공부했던 시간이 또 있었나?
하는 놀라움이 들 정도로 열심히였다.
특히 옆에서 함께한 친구 덕분에
이 과정이 가능했다.
함께하자고 이끌어 주고
묵묵히 옆에서 기복 있는 나를 끌어준
소중한 친구.
그래서 결론은.
아, 어떤 결론을 내려고 쓰는 글은 아니지만
올해는 그렇게 살았다.
힘들었던 일들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단타로 감동을 무한히 받으며
마음을 정화하는 시간들로 풍성해졌다.
지금 사실 오랜만에 글을 쓰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새해를 맞기 전에 올해는 마무리하고 싶고,
그리고 또 왜 뜸했는지 독자분들께 좀
해명도 드리고 싶고해서 컴퓨터앞에 앉았다.
아직도 갈길은 멀다.
그림책을 배우며 느낀다.
오히려 나를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이 판은 내가 낄 자리가 아니야...'
그래도.
누군가는, 한 명이라도 내 이야기에
감동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걸로 꿈을 한번 밀고 나가볼 의미가 있지 않을까?
자랑이고 얄미울 수 있지만,
정말 오랜 시간 방황했던
내 그림 혹은 작업인생에서 이제서야
안정적인 배에 올라탄 기분이다.
그 배에서 나는 아직 갑판에 올라갈
가능성도 없는 상태이고,
언제 바다로 떨어질지 모르는...
안전벨트도 없는 자리이지만
떨어지지만 않는다면 그 배에 타서
둥둥 긴 여행을 하고 싶다.
주저리주저리.
새해엔 아직은 엄청 부족한 그림책 더미도
완성본으로 만들어보고,
아직은 머릿속에 다 넣지도 못한
그림책 공부들 이어갈 생각이다.
올해는 그러다 보니 할 이야기가 많아도
브런치에 글을 잘 못썼는데,
안 쓰다 보니 더 못쓰게 된것 같다.
다른 것보다 새해엔 글 쓰는 일,
그림책 공부하고 만들어 보는 일에
힘을 쏟게 될 것 같다. 되던 안되던.
오늘 올해의 마무리랍시고 쓴 이글.
너무 딱딱하고.. 부끄럽지만,
오늘도 이불킥을 부르는
흔적 하나 남기는데 의의를 두고.
오랜 시간 떠나지 않고 이 공간에 남아주신
독자분들께 올해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새해에도 어느 자리에서건
평온하시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본다. (사실은 이게 제일 중요하다.)
내년엔 또 의미있거나 의미없는 글로
몇 분 더 이곳으로 모셔볼 노력을 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짐해 본다.
올해도 열심히 살아내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우리 내년에도 함께 힘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