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봉봉어멈 Oct 02. 2015

초식 봉봉

봉봉이의 베란다 정복기.


빨래를 널러 갈 때면 봉봉은 착하게도 어멈을 도와준다.

정말 도움이 되는 건지 아닌지 잘은 모르겠으나,

빨래 바구니에서 빨래를 하나씩 꺼내서

'어멈 여기~~'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곤 했다.


빨래 너는 일을 거드는 봉봉. 사실은 양말 신겨달라고 하고 있다.



그러던 봉봉이가 변했다.


얼마 전부터 부쩍 빨래에는 관심도 없고 막무가내로 베란다에 나오겠다는 거다.

참고로 우리 집 베란다는 좁은 공간에 물건으로 가득 차

그야말로 봉봉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봉봉네 베란다 식구들



중간급 나무 두 그루와, 한집 생활로 심기가 불편한 작은 두 그루의 나무

(씨를 심어 쑥쑥 자란 낑깡나무와 심폐소생술로 되살아난 만량금).

그리고 그 주변을 어지럽게 감싸고 있는 빈 화분들과 화분과 관련된 다양한 도구들.

반대편엔 함께 포장된 생수 6개와 낱개 포장된 탄산수 몇 개. 그 외 기타 등등.

그리고 제일 중요한 타깃은 바로! 빨랫대.


하아..

일단 한숨 한번 쉬고.

2주 전쯤부터 갑자기 전쟁이 시작됐다.


사실 그전부터 일수도 있지만,

봉봉은 필사적으로 베란다에 나오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아오 나도 나가고 싶어 (봉봉)



처음에는 빨래 바구니를 베란다 문 앞에 좁게 놓고 필사적인 봉봉의 방해를 막아보려 했으나

점점 능숙하게 빨래 바구니를 넘어서 베란다로 오는 것이 아닌가!


마치 스턴트맨과 같은 우아한 몸짓으로 스무스하게 베란다로 넘어오는 모습이 조금 귀엽긴 했지만,

빨래를 못 널게 진로 방해함과 동시에 목욕을 다 한 몸으로 지저분한 베란다의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손으로 어루만져 주는 행동이 어멈 눈에 못마땅했다.




오예! 신난다!



쫓겨나고 울고불고 또 들어왔다가 쫓겨나고를 한 일주일 정도 반복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대대적으로 베란다 대청소를 했다.

베란다는 정말 놀랄 만큼 깨끗해졌고, 봉봉과 어멈이 함께 누워서 밖을 봐도 될 정도로 밝아졌다.


잘 정돈이 된 베란다 한편엔 봉봉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자,

 봉봉의 작은 노란 의자를 놓으니 정말 맞춤가구 같았다.

정리를 마친 욥과 어멈은 지친 나머지 시원한 커피를 한잔 하러 봉봉을 베란다에 둔 채 거실로 갔다.





그. 런. 데.



"으아아아아 앙~~~~!!"



한시도 눈을 떼지 말았어야 하는데 갑자기 베란다에서 울음소리가 나서 뛰어나갔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

.

.

너 정말!




봉봉은 분명 자기 입으로 깨물어 낸 잎사귀의 일부분을 들고 잔뜩 찡그린 얼굴로 울고 있었다.

(이가 아직 아래위로 두 개씩 나 있는 터라, 우리 집에 그 모양으로 이빨 자국을 낼 수 있는 건 봉봉뿐이었다.)


웃어야 되나, 혼내야 하나, 걱정해야 하나...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좋은 경험 한 걸로 마무리.



"봉봉아 낑깡나면 차라리 낑깡을 먹어.

근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





이전 01화 금방이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