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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육아.

어멈의 공룡 같은 육아.

by 봉봉어멈
얼굴은 사나워 보여도 어깨는 한껏 쳐져서 어딘가 측은한 티라노.




지금처럼 이렇게 한창 추워지기 전에 있던 일이다.


열심히 설거지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탱글이가 무언가를 내 발아래 놓고 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 제일 큰 공룡, 티라노.


딱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녀석을 살포시 두고 가다니.

엄마한테 아끼는 걸 가져다 준건지,

엄마가 티라노 같아서 가져다준 건지 아리송했다.


내 발 옆에 넘어져있는 티라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티라노사우르스는 참 불쌍했다.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늘 화를 내는 듯한 표정으로 입도 잔뜩 벌리고 무서운 표정과 무서운 몸짓을 하고 있어서

원치 않게 성격이 굉장히 포악하다는 오해를 자주 살 테니 말이다.


분명 살기 위해 난폭했을 수도 있고, 얼굴이 좀 무시무시한 인상이라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아닐 수도 있지만.


인형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저렇게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사람들한테 각인돼있으니,

어디서든 티라노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이상하게 같이 억울한 건 왜일까?


탱글이가 무심하게 놓고 가 버리는 바람에 쓰러져버린 모습이 왠지 안타까워서

티라노를 창문 앞에 세워주고 보니, 마치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엄마는 요새 공룡처럼 포효하는 날이 많아서.

그래서 탱글이가 티라노를 가져왔나? (쓸데없는)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집에 공룡 귀여운 녀석들도 많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갑자기 은유적인 탱글에게 서운함이 막 밀려온다.


(한발 크게 양보해서) 그래도 탱글이가 엄마 생각해서 글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려고 그랬나 보다 하고,

잠시 티라노를 데리고 놀았다. 마침 아기 티라노 사우르스도 집에 있어서 함께 찰칵!


탱글이와 엄마의 일상과 같은 순간들을.



1. 티라노어: 쿠어어억 크억.

(해석 : 코자자. 좀 자자.)


2. 티라노어: 쿠워어어엉- 끄어어억! 끄억!

(해설: 머리만 감으면 돼! 금방이야 금방~!)


3. 티라노어: 쿠쿠 크큭 쿠쿠 크큭?

(해설: 누구게? 가꿍!)


4. 티라노어: 크, 쿠엉쿠엉!

(해설: 자, 지금부터 빠방 보자!)


사진을 찍어 티라노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늘 화만 내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참 측은하다.

'티라노야, 어디 너도 네가 그러고 싶어 그런 모습이었겠니..'


살다 살다 티라노랑 동병상련을 느낄 줄이야.

내일은 웃을 수 있는 티라노 어멈을 기대해보며 오늘 하루를 조용하게 마무리해본다.

다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고 글이 잘 써지기를, 끝나지 않는 이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려보며.




참, 탱글아 내일은 아기를 잘 돌본다는 <브라키오 사우르스>를 살짝 놓고 가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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