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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Dec 03. 2020

공룡육아.

어멈의 공룡 같은 육아.

얼굴은 사나워 보여도 어깨는 한껏 쳐져서 어딘가 측은한 티라노.




지금처럼 이렇게 한창 추워지기 전에 있던 일이다.


열심히 설거지 중이었는데, 느닷없이 탱글이가 무언가를 내 발아래 놓고 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집 제일 큰 공룡, 티라노.


딱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 녀석을 살포시 두고 가다니.

엄마한테 아끼는 걸 가져다 준건지,

엄마가 티라노 같아서 가져다준 건지 아리송했다.


내 발 옆에 넘어져있는 티라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티라노사우르스는 참 불쌍했다.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늘 화를 내는 듯한 표정으로 입도 잔뜩 벌리고 무서운 표정과 무서운 몸짓을 하고 있어서

원치 않게 성격이 굉장히 포악하다는 오해를 자주 살 테니 말이다.


분명 살기 위해 난폭했을 수도 있고, 얼굴이 좀 무시무시한 인상이라 그런 것도 있을 텐데.

아닐 수도 있지만.


인형으로 태어났을 뿐인데 저렇게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사람들한테 각인돼있으니,

어디서든 티라노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이상하게 같이 억울한 건 왜일까?


탱글이가 무심하게 놓고 가 버리는 바람에 쓰러져버린 모습이 왠지 안타까워서

티라노를 창문 앞에 세워주고 보니, 마치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이 내 모습 같았다.

엄마는 요새 공룡처럼 포효하는 날이 많아서.

그래서 탱글이가 티라노를 가져왔나? (쓸데없는)생각이 많은 요즘이다.


집에 공룡 귀여운 녀석들도 많은데.

다시 생각해보니 갑자기 은유적인 탱글에게 서운함이 막 밀려온다.


(한발 크게 양보해서) 그래도 탱글이가 엄마 생각해서 글 쓸 수 있도록 영감을 주려고 그랬나 보다 하고,

잠시 티라노를 데리고 놀았다. 마침 아기 티라노 사우르스도 집에 있어서 함께 찰칵!


탱글이와 엄마의 일상과 같은 순간들을.



1. 티라노어: 쿠어어억 크억.

(해석 : 코자자. 좀 자자.)


2. 티라노어: 쿠워어어엉- 끄어어억! 끄억!

(해설: 머리만 감으면 돼! 금방이야 금방~!)


3. 티라노어: 쿠쿠 크큭 쿠쿠 크큭?

(해설: 누구게? 가꿍!)


4. 티라노어: 크, 쿠엉쿠엉!

(해설: 자, 지금부터 빠방 보자!)


사진을 찍어 티라노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늘 화만 내는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참 측은하다.

'티라노야, 어디 너도 네가 그러고 싶어 그런 모습이었겠니..'


살다 살다 티라노랑 동병상련을 느낄 줄이야.

내일은 웃을 수 있는 티라노 어멈을 기대해보며 오늘 하루를 조용하게 마무리해본다.

다시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고 글이 잘 써지기를, 끝나지 않는 이 시기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려보며.




참, 탱글아 내일은 아기를 잘 돌본다는 <브라키오 사우르스>를 살짝 놓고 가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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