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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어멈 Apr 27. 2022

슬픈, 로제 짜장떡볶이.

어멈은 사실 후각과 미각을 잃었다.




일주일에 한 번,

처음엔 봉봉이가 제일 기다리는 순간이었으나

어느새 내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인 그날이 온다.


바로, 봉봉이의 요! 리! 수! 업!!!


매주 한 번 하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는 날엔

쿠키, 케이크, 샐러드, 묵무침 등 다양한 요리들이 선물처럼 봉봉이 손에 들려왔고,

예쁜 봉봉이의 그림들로 꾸며진 포장재엔 무슨 재밌는 내용을 적어올지 기대를 하게 된다.


지난주 봉봉의 요리수업 주제는 바로 '로제 짜장 떡볶이'.

짜장 떡볶이는 먹어봤지만 로제 짜장 떡볶이는 처음이어서,

음식을 받아보기 전까지는 상상이 안 갔다. 로제와 짜장이라니.


배달시켜서 먹어본 로제 떡볶이는 크리미 한 살구색이었고, 여기에 짜장 떡볶이 양념이

들어간다 하니.. 연한 살구색에 짙은 밤색이 더해져 부드러운 밤색 정도가 되려나?

머릿속으로 그려보려 했으나 상상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 하교시간. 봉봉을 마중 나가니 멀리서 보기에도 봉지 한 가득을 채운

먹거리가 봉봉이 손에 들려있었다. 떡볶이는 끓여놓으면 불어버리는 터라,

선생님께서는 센스 있게 이번 메뉴는 밀키트로 준비해 주셨다.


귀엽게 썰어놓은 하트, 삼각형, 보석 모양 어묵들과 더불어 봉봉이가 넉넉히 담았다는

누들 밀가루 떡볶이 떡, 그리고 (늘 그랬듯) 그득하게 담아온 양념까지.

곳곳에 봉봉이의 손길이 묻어있었다. 그 양도 어마어마하게 야무지게도 담아온 것이다.


기대에 찬 우리는 저녁시간을 앞당겨 조금 일찍 요리에 들어갔다.

두근두근. 요리가 다 되기까지 몇 번을 서로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나눴던지.

밀키트 요리가 의미 있어지도록 봉봉이가 스스로 큰 팬에 담아 넣고 약한불에 끓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한 20여분,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로제 짜장 떡볶이'는 그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한 가지 우려되었던 것은 로제 떡볶이이다 보니 선생님께서 고추장을 양념 속에 함께 넣어주셨는데,

아직은 매운맛을 잘 먹지 못하는 봉봉이가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다 만들어진 떡볶이의 양념을 맛 보여주니, 이런. 봉봉이 입에 매웠던 것이다.





그럼 결국 많은 양의 떡볶이를 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이 앞섰다.

아빠는 그날 야근이라 늦게 온다고 했고, 탱글이는 매우니까 당연히 못 먹을 테고, 봉봉이도 못 먹고.

내가 최선을 다해서 먹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날은 점심을 못 먹어서 맛있게 많이 먹을 자신은 있었다.

봉봉이에겐 좀 아쉽지만 마침 집에 있던 재료로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 주니 탱글이와 맛있게 먹었고,

맛있게 보글보글 끓어익은 '로제 짜장 떡볶이'는 내가 두 그릇이나 싹 비웠다.

뒤늦게 퇴근한 아빠도 떡볶이를 맛보더니 맛있다고 칭찬해서 봉봉이는 하늘로 날아갈 뻔했다.


저녁시간이 마무리되고, 아이들이 잠시 둘이 노는 사이에 남편과 나는 커피를 내려 마주 앉았다.

그리곤 아이들이 듣지 못하도록

소곤소곤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어멈: "(공기 둘 반 소리 반의반의 목소리로) 욥, 사실.. 나 아무 맛도 안 났다? 처음 한 숟갈 밖엔..

         그런데 맛있다고 할 수밖에 없었어. 그리고 실제로 맛은 느껴지지 않았는데 식감이 너무 좋더라고.

         맛이 안 느껴져도 식감이랑 봉봉이 사랑 때문인가, 뜨끈하게 너무 맛있게 먹었어."

욥: "그랬어? 미각이 빨리 돌아와야 할 텐데..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니 봉봉이는 눈치 못 챘을 거야."





그렇다.

슬프게도.

로제떡볶이를 만든 날은, 봉봉이네가 코로나를 겪은 후에 처음 있었던 요리수업이었다.

그 전 주에 우리 가족은 누구 한 명 빠져서 서운하지 않도록 사이좋게 코로나를 집에 초대했다.

우리 가족에게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이다.


봉봉이와 아빠가 좀 많이 고생을 했고,

처음 우리 집에 확진 소식을 가져온 탱글이는 이틀 만에 컨디션을 회복해 다람쥐인가 싶게

격리기간 동안 집안 곳곳을 날아다녔다. 반면 어찌 보면 다행히도 나는 몇 가지 독특한 증상들을 제외하곤

그마저도 경미하게 지나가서 아픈 가족들을 보살필 상황이 되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헌데 모두가 아픈 시간이 지나고 제 컨디션을 찾을 때 즈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큰 증상이 없던 나는 갑작스럽게 미각과 후각을 잃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뭘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는 조금은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하필 그중에 봉봉이가 고사리손으로 담아와서 맛있게 만들어준 '로제 짜장 떡볶이'가 포함돼 버렸다.

매주 봉봉이가 만들어 온 음식을 먹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떡볶이를 맛있어 보이게 먹으면서도 이게 맛이 있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엄마가 맛있는 척 연기를 하고 있는 걸 알면 봉봉이가 분명 속상해질거라 마음이 슬퍼졌다.

물론 봉봉이는 언젠가 이 글을 보게 될 때가 아니고서야 모르겠지만.



'미안해 봉봉아. 그래도 엄마 정말 식감으로도 맛있게 먹었어.

오동통한 떡볶이와 부드러운 어묵! 환상이었다구!!'




다행히 미각과 후각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왔다.

아이들에게 나던 솜사탕 같은 냄새, 콤콤한 땀 냄새,

입가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들을 맡을 수 없어서 아쉬운 순간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하나하나 다시 맡으며 머릿속에 남겨두는 중이다.


참 이상한 경험들을 하게 만드는 코로나.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우리 집에 한번 다녀갔는데,

두 번은 만나지 않기를. 두 번은 오지 마!!!!!   


그나마 이만하게 지나가서 참 다행이라 여기며,

이제 조금은 코로나의 무게를 좀 내려놓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 아직도 마음을 놓을 수 없지만,

코로나를 경험하신 분들과 후유증이 있으신 독자분들은 쾌차하시길 바라며,

걸리지 않고 버틸 수 있으셨던 독자분들은 건강하게 남은 시간 잘 이겨내시길 바라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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