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전

by 봉봉오리


숯댕과 앵두의 산책 경로는 산 아니면 민가가 모여있는 쪽의 길이다. 산은, 차도 사람도 없어 정신적으론 산책하기 더 수월하다. 하지만 나뭇가지에 찔리고, 산을 미끄러져 내려가고, 자빠지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나마 가을부터는 푹신한 낙엽 덕을 보고 있다. 민가 쪽은 포장된 평지라 몸은 편하지만 시시각각 차가 등장하고, 다른 마당개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쉬운 게 없다.






오늘은 숯댕이와 앵두, 동시에 산책을 했다. 경로는 앵두가 정했다. 민가 쪽 길이었다.





산만한 숯댕이는 앵두와 산책할 때, 천천히 탐색하는 앵두의 속도를 맞춰주는 편이다. (나한텐 안 맞춰준다) 그래서인지 나와 숯댕의 1:1 산책일 때보단 차분한 산책이었다. 다만, 두 개 각자의 관심사가 달라 나는 사이에서 찢겼다.



거리로는 얼마 안 되지만 민가 산책은 한 시간을 거뜬히 넘겼다. 산책이 끝나갈 즈음, 산속으로 숯댕과 앵두가 나를 끌고 갔다. 해가 저물어 붉은색 하늘이었다. 나를 산에서 조난당하게 할 셈인가.



두 개에게 끌려 올라가다 긁히고 줄은 식물들의 줄기와 엉켰다. 잠시 후 고라니가 폴짝거리며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숯댕과 앵두가 고라니를 향해 달려갔다. 이럴 땐 정말 두 개 사이에 내가 낄 수 없는, 종의 한계를 느낀다. 둘만의 소통을 하고, 둘만의 즐거움과 흥분을 공유한다. 본능적으로 고라니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앵두는 낑낑 소리를 내며 달려가고 싶다고 했지만, 말렸다. 미안하지만, 나는 고라니 편을 들 거야. 고라니는 둘이 아니어도 충분히 힘들어.



고라니가 사라지고 귀가하던 중, 앵두가 갑자기 엄청난 비명을 질렀다. 처음엔 고라니를 발견해서 낸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소리는 내가 개농장 고발 영상이나 동물 학대 영상 속에서 들었던 종류의 것이었다. 상황파악을 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 눈앞에 줄이 가로로 매달려 있었다. 전기 울타리였다.



앵두가 줄 너머에 관심을 갖다 몸이 닿았고, 감전된 것이었다. 상황 파악을 마치자마자, 이번엔 숯댕이가 비명을 질렀다. 앵두가 관심 가지는 것은 무조건 냄새 맡고, 따라가는 숯댕이는 앵두를 따라 하다 똑같이 감전당했다. 동네가 떠나가라 비명 소리가 퍼졌다. 두 개가 눈앞에서 감전되었다. 둘은 놀랐고, 나는 미안했다.


매번 산책하던 길이었다. 나는 이 울타리를 매번 보았다. 너무 익숙한 이 울타리를 나는 일종의 ‘뻥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순 경고성일 거라 생각했는데, 실제 전기가 흐르고, 그것이 꽤 심한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앵두와 숯댕의 비명을 통해 알았다.


돼지를 몰 때 쓰는 전기봉, 개농장에서 개에게 가하는 전기충격 같은 것이 떠올랐다. 밤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줄이, 이렇게 강한 고통을 야기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경찰 진압봉의 세기는 12,500v이고 전기 울타리는 15,000v다. 진압봉보다 높은 전기가 이렇게 있어도 된다고? 전기 울타리에 감전사한 ‘사람’도 있다. (사람은 기사라도 났다) 단순 경고가 아닌 수준이다.



들개였던 앵두는 이렇게 황당한 폭력을 전에도 겪었을까.





산책 후 앵두를 귀가시키고, 숯댕이네로 갔다. 숯댕이의 나무집에 깔아 둔 지푸라기는 숨이 죽어 쿠션감이 사라졌다. 집 주변에서 낙엽을 팔 가득 긁어모아 집 안에 깔았다. 낙엽은 좋은 이불이다.



몇 번을 그렇게 오가는데, 이상하게 조용했다. 뒤를 돌아봤다.



숯댕이는 또 고리를 끊고 탈출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계엄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