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숯댕의 산책은 나의 일상이고 습관이 되어간다. 먼 타지의 사람이 굳이 ‘남의 개’를 산책시키면서 온 마을을 들쑤시고 다닌다. <동물농장>이 아니라 <궁금한 이야기Y>에 가깝다.
숯댕에게 가지는 이 이상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감정은 여전히 모르겠다. 책임감이나 죄책감일 수도 있다.
그에게 그저 간식을 주고 ‘예뻐해 주는’ 정도였을 때, 나는/우리는 알고 있었다. 곧 그 동네에 발길을 끊게 될 것을. 그만 몰랐다. 그럼에도 예고조차 하지 않았다. 그걸 알릴 도리가 없었다. 우리의 발길이 끊겼을 때, 그는 기다렸을까?
한쪽은 알고, 한쪽은 모른다. 불평등한 관계다.
<새만금 상공에서 일어난 섬뜩한 일, 기억하십니까?>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 숯댕과 나의 관계는 그와 비슷했던 것 같다. 나는 숯댕과의 관계가 ‘인간의 사정’에 의해 끊길 거라는 것을 알았다.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나 혼자만의 단념 같은 것도 했을 것이다. ‘이제 못 만나겠네.’
그를 하염없이 마당에 묶어둔 “주인”을 비난할 입장은 나도 아니었던 것 같다.
격일, 적어도 3일에 한 번 산책을 하러 가는 것은 내가 만든 룰이고, 숯댕은 이제 그것을 인지하는 것 같다. 나와 산책하는 동안 다섯 번 넘게 엄청난 양의 변을 계속 보는 걸 보면, 묶인 동안 대변을 참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단절 이후에도, 나를 신뢰하는 이 개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의 ‘기대’에 책임을 지고 싶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평등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