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3일. 구조단체, 경찰, 공무원이 개농장을 찾았고 나는 숯댕과 산책을 하며 주변을 맴돌았다.
흰눈은 어수선한 개농장을 벗어나 숯댕 산책에 동행했다. 뜬장 다섯 개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확신이 없던 때였다. 뜬장과 도살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개들. 하지만 인계 후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나는 흰눈이 현재 자신의 공간에 머물기를, 들개로 지금처럼 잘 살아가길 바랐다. 괜히 시보호소로 인계된 후 다섯 개들과 함께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출동한 공무원에 의해 ‘들개’인 흰눈이 포획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류를 요청했다. 흰눈이 지금처럼, 산을 누비며 살길 바랐다.
흰눈을 못 만난 지 오래 되었다.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시기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고, 그물 너머에서 목소리 정도만 들었다. 어딘가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경계했거나, 어쩌면 갇혀 있었을 수도 있었다. 개농장 밖 한쪽에 흰눈이 먹을 음식을 두고 가며 그의 생존만을 드문드문 확인했다.
농장주가 흰눈을 위해 둔 음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다섯 개들이 먹었던 음식과는 달리 멀쩡했다. 심지어 사료라니.
농장주는 흰눈을 ‘특별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 이유가 흰눈의 출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압박감이 밀려왔다. 숯댕과 산책하는 길에 개농장 근처를 기웃거리다 농장주의 오토바이가 주차된 것을 보고 후다닥 도망가기도 하며 나는 점점 흰눈과 멀어졌다.
작정하고 다시 들어간 날엔 뜬장이 철거된 것을 보았다. 흰눈은 없었다. ‘들개’로 포획되어 보호소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공고를 확인했지만, 흰눈은 없었다. 베이지색 털에 정수리에만 독특한 하얀 무늬가 있는 흰눈.
시에 문의를 했다. 뜬장 철거 과정에서 ‘들개’인 흰눈을 포획해서 데려갔는지 물었다. 공무원은 보지 못했다며, 아마 다른 곳으로 갔을수도 있다고 했다. 보호소에서 죽은 건 아니었다.
흰눈을 다시 만난다고 뚜렷한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다시 임신과 출산을 해서 그가 낳은 자식들이 팔려나가지 않길 바란다. 그냥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막연한 거리감으로 시간을 보낸다.
흰눈이 나타나길 바라지만, 나타나지 않길 바라기도 한다.
철거가 진행된 개농장에는 농장주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농장 전체는 그물로 둘러쌓여 있고, 그 안에는 텃밭이 있다. 한쪽엔 작은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 주변엔 그의 옷 같은 것들이 널려있다.
여기는 그의 공간이었다. 그의 공간은 분해되었고, 그의 ‘사유재산’은 빼앗겼다. 그에게 그 공간이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모른다. 그것까지 고려할 여유는 없었다. 인권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에게 닥친 일들은 폭력이었을 것이다.
흰눈의 입장은 어땠을까. 인간들이 우르르 몰려온 후로 아마도 자식이었을 개들이 사라졌다. 나는 흰눈의 일상을 무너뜨린 존재였을 것이다.
농장 입구에서 소리를 기다린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발길을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