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여름이 시작되었다. 낮은 30도를 훌쩍 넘는다. 요즘은 저녁 7시가 되어서야 숯댕의 산책을 시작한다. 그전에는 도저히 내가 힘들어서 산책을 못 한다.
7시에 시작해도 앞이 핑 돌기는 마찬가지다. 500ml 물 병 두 개에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한 짐이다. 이 물도 숯댕이를 위한 것이지 내 것은 아니라서, 나는 산책 도중 한두 모금 훔쳐 마신다. 그래서 숯댕이가 물을 잔뜩 남기거나, 물그릇에 공을 빠트려서 물을 사방으로 퍼지게 하면 얄밉다.
너 마시라고 나는 참는다고!
오늘은 평소보단 조금 선선했다. 산책 중 섞어 마시면 좋겠어서 얼음물 1병과 시원한 물 1병, 내 이온음료를 챙겼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비슷한 구간으로 산책했다. 사람이 없고, 차가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들어가서.
한 시간쯤 산책과 공놀이를 하고 돌아가려다, 한 번 더 놀면 좋겠다 싶었다. 그는 곧장 풀숲에 풍덩 들어갔다. 우리가 자주 뛰어들었던 풀숲.
그런데, 풀이 그새 너무 자라 버린 것이었다. 허리를 넘어 내 어깨까지 올라온 풀 사이에서 숯댕은 잠시 사라졌다.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던 숯댕은 아무리 걸어도 걸어도 풀인 그곳에서 평소와 달리 ‘재미’가 아닌 ‘두려움’을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너무 신나서 자기의 체력을 훌쩍 넘도록 뛰어다닌 것일까.
풀숲에서 빠져나온 숯댕은 호흡이 가빴다.
아까 마시고 남은 물을 주었으나 부족했다. 얼음물의 얼음은 느리게 녹아 숯댕의 갈증을 채우기엔 느렸다. 가방에 든 이온 음료라도 응급처치랍시고 조금 부어주었다.
숯댕은 주저앉더니, 납작 엎드렸다. 나중에는 뒷다리를 쭉 뻗었다. 숯댕이가 산책 중에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쉴 줄 모르는 숯댕이가 누운 것이다. 그는 슬금슬금 풀숲으로 몸을 옮겼다. 풀숲에 몸을 뉘이고 거친 숨을 쉬었다. 숯댕이는 그렇게 한참을 풀 위에서 쉬었다. 그러나 가쁜 호흡은 잘 가라앉지 않았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깜깜한 밤. 사람의 도움을 구하려고 해도 한참을 걸어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마을 자체도 외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그 마을 안에서도 가장 외진 곳이 우리가 산책을 하는 공간이었다. 숯댕의 증상을 검색해 봤더니 일사병, 열사병 등으로 연결됐다. 숯댕이를 안고서 민가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까. 숯댕의 집까지 갈 수 있을까. 숯댕이가 사람이면 119를 부르면 되는 일이었다.
숯댕이를 안아 올렸다. 평소였으면 온갖 발버둥을 치며 내려놓으라 난리를 쳤을텐데(숯댕이는 안기는 것을 싫어한다) 저항하지 못했다. 그러나 문제는 내 체력이었다. 축 늘어진 숯댕이를 안고 몇십 걸음도 못 가서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숯댕이는 좌절한 나를 위로라도 하는 듯 제 발로 걷기 시작했다. 걷기를 넘어 총총 뛰는 듯했다.
괜찮아?
그렇게 숯댕은 내가 가장 걱정하던 구간을 제 힘으로, 조금 빠른 속도로 후다닥 지나갔다. 내가 숯댕을 안고 갔으면 같이 데굴데굴 굴렀을 것이다.
얼마 후 우리는 숯댕의 집에 도착했다. 물도 마시고 간식도 먹고 나를 안심시킨 그는 시뻘건 눈으로 다시 한번 내 심장을 떨어뜨렸다. 눈에서 피가 났다. 이 피는 뭐지? 챗GPT는 무서운 말을 쏟아냈다.
아는 주민을 통해 숯댕 보호자의 연락처를 받았지만 연락을 하지는 못했다. 그게 내가 지켜야하는 ‘선’이었다. 주민분이 아는 수의사를 통해 숯댕의 상황을 전달해 주셨고, 쉬게 두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 되었다. (아마도)
눈의 출혈은 소량으로 멎었고, 숯댕의 숨도 돌아왔다. 컨디션이 돌아온 숯댕은 공을 건드렸다.
공 놀이, 오늘은 끝이야 숯댕. 쉬어야 해.
특유의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여준 숯댕 옆에서 시간을 보냈다. 너도 놀랐지.
그러나 새삼 이게 처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장기간 이어지는 폭염의 날들, 천둥번개가 치는 밤, 폭설이 내려 숯댕의 나무집이 쓰러졌던 날. 그때도 과호흡이 왔을까.
수돗가에 있던 나를 보지 못한 등산객이 묶여 있던 숯댕이를 향해 폭언을 했을 때, 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폭언에 그쳤을까.
묶이고 갇혀 있으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 대피할 수 없다.
오늘 그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비틀대는 몸을 끌고 풀숲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대피할 수 없는 이들은 어떨까. 1m의 줄에 묶여서 땡볕에 있어야 하는 이 마을의 다른 개들. 이 마을에 갇힌 온갖 종의 동물들. 닭, 오리, 소, 흑염소.
숯댕이를 두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밤새 곁을 지킬 수 있었으면. 그러나 또 떼야했다. 집 가는 길에 피터를 챙겨야 한다. 내일의 돌봄이 또 줄줄이 이어진다.
(얼굴에 까만 게 있는데 진드기인지 상처인지 확인이 어렵다. 도저히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
다가오는 폭염의 날들이 두렵다. 아스팔트 열기에 녹아내리고, 마실 곳이라곤 없는 도시에서 말라갈 동물들.
나는 꽤 안전하게 이번 여름을 보낼 것이다. 얼음이 가득 든 음료를 들이켜고, 시원한 곳으로 그때그때 시원한 실내로 대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