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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May 03. 2024

오늘의 죽음들


"도살장 가는 날이에요."


비질(Vigil)* 전 날, 엄마에게 말한다. 비질 당일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준비해야 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매일 늦잠 자는 딸이 안 보여도 놀라지 말라는 뜻에서 미리 말해둔다. 내가 도살장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엄마의 첫 반응은 경악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말려봤자 굽히지 않을 걸 알아서인지, 딱히 반대를 하진 않으셨지만, 표정에서 드러났던 기억이 난다.  


*비질 : 도살장 앞에 찾아가 학살의 증인이 되는 것

오늘은 답사를 하는 날이었다. 늘 가던 도살장이 아닌, 새로운 장소를 찾아내서 미리 답사를 가보는 것이다. 트럭이 어느 정도로 들어오는지, 관계자들의 태도는 어떠한지, 주변 상황이 비질을 하기에 적절한지 등을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비질은 늘 안전에 유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탔다. 작업실을 가기 위해 타야 하는 버스와 같았다. 버스가 작업실을 지나쳐갔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10분쯤 걸었을까. 장소에 도착했다. 혐오 시설에 대해 반대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보였다.


7:41


동료들이 도착하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며 탐색했다. 빈 트럭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곳이 맞다. 도살장.


동료들과 함께 도로를 바라보며 대기했다. 하염없이 트럭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띄엄띄엄 트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 주로 홀스타인 남성 소를 실은 트럭들이 모습을 보였다. 운이 좋아 차가 신호에 걸리면 그들의 모습을 찍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차들은 재빠르게 지나쳐갔다. 그리고, 외부인은 절대로 볼 수도 없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인간만 죽이는 곳으로.

대기한 지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스쳐 지나가는 트럭들의 찰나를 찍는 것이 전부였고, 기다림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때, 홀스타인 소들을 실은 트럭들이 연달아 왔다. 그리고 정체가 일어났다. 지금이었다. 트럭으로 다가갔다.  


소들은 큰 눈으로 밖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울고 있었다. 그들 위로 보이는 전선과 신호등 같은 풍경이 기이했다. 도로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와 동료를 보고 뒤에 있던 차들을 이 광경을 어떻게 보았을까. 트럭 기사님은 우리가 민원이나 단속으로 출동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관계자가 나왔고, 우리는 동물만 찍는 것이라 말했다.


사람들 눈에 우리는 ’겁에 질린 소‘보다 ’냄새나는 트럭‘을 찍는 사람들로 보였나보다. 움직이고, 울고, 소리내는 생명보다 트럭이 먼저였다.



트럭은 꽤 오랜 시간 우리 앞에 멈춰져 있었다. 눈물 자국이 있는 소의 얼굴이 보였다.


모든 도살장과 정육점에 있는 그림이 이곳에도 있었다. 행복한 동물.







집에 도착해서 낮잠을 두 번이나 잤다. 저녁 운동을 하러 나가려는데 연락을 받았다. 재개발구역 돌보미였다. '동동이'라는 고양이가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방에서 동동이가 들어갈 만한 적합한 박스를 챙겨 나갔다.  

밤의 재개발구역은 먼 곳의 브랜드 아파트 불빛 덕분에 꽤 멋졌다. 유난히 꼴 보기 싫은 풍경이었다.


동동이는 딸과 아들이 지내는 낡은 집에서 발견되었다. 돌보미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고 한다. 딸 콩콩이와 아들 댕댕이는 움직이지 않고 굳은 엄마의 시신에 놀란 것 같았다. 거리를 두었다. 동동이는 전에 봤을 때보다 말라 있었다. 조심히 쓰다듬었다. 차갑고, 조금 딱딱했다.


고생 많았어.


사진 : 재개발구역 돌보미



돌보미는 화장을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나는 매장을 제안했다. 그도 그러고 싶다고 했지만, '묻을 곳'이 없다고 했다. 맞다. 여긴 재개발구역이다. 아스팔트로 뒤덮인 땅. 중장비가 다 부숴놓은 땅. 묻는다 해도 멋진 브랜드 아파트를 세우느라 파헤쳐질 무덤. 인간에 의해 발견되면 종량제 봉투에 버려질 몸.

고민 끝에 장소를 찾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나무 근처에 묻기로 했다. 얼마 전 한 동료의 아파트 단지에 있던 나무들이 미관 때문에 몽땅 베어진 이야기를 했다. 이 나무가 파헤쳐지면 어쩌지.


그러고보면 이 장소는 내가 동동이를 처음 만났던 곳이기도 하다. 동그란 눈이지만 묘하게 싸늘했던 표정의 동동이.


땅이 생각보다 딱딱해서 삽이 필요했다. 근처 빈 집을 돌아다니다 정말 운명처럼 누군가 버린 낡은 삽을 발견했다. 삽으로 땅을 파자, 감자 같은 돌들이 땅에서 자꾸 나왔다. 결국 손으로 파내기 시작했다. 돌을 꺼내고 또 꺼냈다. 얼추 동동이 몸이 들어갈 정도가 되어, 동동이를 데리러 갔다. 그 사이 더 딱딱해져 버린 몸. 눈을 감지 못하고 있었다.


동동이의 몸을 묻기 위해 손으로 들자, 딱딱한 느낌이 이상했다. 유연하고, 말랑하던 동동이의 몸이 이렇게 달라졌다. 모르는 존재 같았다. 손으로 흙을 덮었다. 황량해 보여 꽃을 두고 싶었지만, 이곳엔 꽃이 없다. 누군가 버린 것 같은, 방치된 화분의 말라비틀어진 꽃 하나를 떼어왔다. 작은 무덤이 되었다.



우리만의 장례식을 가졌다. 그는 묵념을 했고, 나는 절을 했다. 오전에 보았던, 눈물 자국이 있던 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은 많은 죽음을 겪는 날이구나.


묵념을 마친 그는 동동이의 무덤에 손을 얹고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그와 동동이가 6년간 나눈 언어 중 하나였다.


동동이의 사인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죽었냐는 동료들의 말에 그저 '돌연사'라고 말했다. 외상도 보이지 않았고, 구내염조차도 없었던 건강한 동동이였다. 9살의 나이.


자연사일까?




하지만 나는 알 것 같았다.

봄부터 시작된 것들. 거대한 중장비들이 들이닥쳐 부숴대던 일. 매일 귀가 깨질 것 같은 소리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서식지가 파괴되는 것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한 동씩, 한 동씩, 그렇게 매일 무너지는 걸 지켜보면 어떤 기분일까. 꼭대기층부터 하나씩 사라진다면. 그에 대해 시위를 할 수도, SNS를 통한 공론화도 할 수 없다. 가해자인 인간에게 닿지 않는다. 매번 무자비한 공사에 의해 은신처를 옮기고 또 옮기다가 에너지가 바닥이 난 것일까.


끝없는 종말을 참아내는 일. 종말을 필터링 없이 겪는 일.



이제는 편안하게 잠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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