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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May 01. 2024

5월

우리가 빼앗은 ‘가정’



얼마 전, ‘그믐달’에 갔다. 그믐달은 새벽이생추어리가 새로 이사 간 곳이다. 4월이지만, 여름 더위였다.


새벽이가 마당 한가운데 물이 고인 곳에 누워 진흙 목욕을 했다. 진흙을 몸에 묻혀 체온을 떨어 뜨리는 돼지의 행동인데, 인간의 등목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4월에 진흙목욕이라니, 기후위기답다.



하지만 새벽이가 누운 그곳은 진흙목욕 하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그저 물이 고였을 뿐인 곳. 새벽이 에게는 제대로 된 진흙목욕탕이 필요하다.


삽을 들고 마땅한 자리를 찾았으나 흙이 너무 단단해 시도도 하지 못했다. 비가 온 다음, 땅이 말랑해진 후 비로소 다시 도전할 수 있었다.


새벽이의 몸에 맞는 목욕탕을 만드는 건 꽤 고된 일이었다. 삽질을 하면서 동료와 이야기했다. 새벽이가 와서 루팅 해주면 좋겠다고. 새벽이에겐 아주 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삽질보다 힘든 것이 있었다. 바로 새벽이의 ‘관심’이었다. 그믐달 땅은 아직 풀이 자라지 않아 새벽이는 무척이나 지루한 날을 보내고 있고, 그런 새벽이를 보는 활동가들의 마음도 무거웠다.


그런데, 자신의 보금자리에 인간들이 활보하며 구덩이를 만들고 있다! 새벽이는 삽질을 하는 내내 우리를 예의주시했고, 종종 그의 큰 몸을 흔들며 돌진해 왔다. 나와 동료는 삽을 버리고 도망치기 일쑤였다. 땅을 파다가 새벽이의 눈치를 보고, 다시 땅을 파고.

새벽이가 오는지 감시하며 땅을 팠다.

새벽이가 우리를 공격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도망가야 했던 것은, 그와 우리의 힘 차이 때문이었다.


얼마 후, 새벽이의 과거 사진을 보게 되었다. 너무 작은 생명. ‘어색한’ 새벽이의 과거.



새벽이에게 아가 시절이 있었다니. 구덩이를 파는 나에게 달려오던 새벽이는 맹수였는데. 인간의 품에 안긴 비인간 새벽이.



5월 1일.

‘가정의 달’에 진입했다. 새벽이의 아가 시절 사진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사실 이 사진이 어색해야 하는 것이 맞다. 비인간 새벽이는 인간의 품이 아닌, 엄마 품에서 그와 같은 날 태어난 이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물론 공장이 아닌 엄마가 만든 둥지 안에서. 그것이 그의 ‘가정’이다.


5월.

우리가 빼앗은 ‘가정’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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