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의 지옥 같던 노동이 끝났다. 찝찝함을 안고 끝났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5일 동안 내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숯댕이었다.
늦은 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집 안에서 나온 숯댕은 예상치 못한 나의 등장에 펄쩍펄쩍 뛰며 산책을 가자고 재촉했다. 연이은 폭우로 산사태 위험이 있어 산길을 가지 않고 민가 쪽으로 갔다.
내리는 비, 너무 신난 숯댕이, 습하고 갑갑한 우비로 인해 정신없던 산책 길에서 나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고라니었다. 이미 죽어 있었고, 피가 빗물에 번져 도로가 붉었다. 차에 치여 죽은 것 같았다. 숯댕이는 처음엔 호기심을 보이는 듯했고, 내 눈에는 연민처럼 보이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잠시 후, 고라니의 엉덩이 쪽 냄새를 킁킁 맡던 숯댕이가 고라니의 꼬리를 물고 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줄을 당겨 숯댕이를 급하게 떼어 놓았다. 빨리 자리를 뜨려다, 고라니를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숯댕이의 줄을 묶어둘 곳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조금씩 다가가 고라니의 발목을 잡았다. 조금씩 끌었다.
처음 잡는 고라니의 몸이었다. 꽤 무거웠다. 숯댕이가 없었다면 들어서 옮길 수 있었을까? 고라니의 몸을 도로 가장자리 풀숲으로 옮기는 중간중간 숯댕이는 다시 고라니를 물었다. 먹으려는 것이었을까. 줄로 엮인 숯댕이와 나의 목적은 서로 달랐다. 나는 옮기고, 숯댕이는 물고 싶었다. 비는 내리고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숯댕이의 엉덩이를 탕 쳤다.
겨우 사체를 가장자리로 옮기고 숯댕이를 끌어 다른 곳으로 갔다. 고라니 사체로부터 떨어뜨려놓고 싶었다.
복잡하고 혼란한 마음이었다. 숯댕이가 고라니를 먹으려 하다니. 맞아, 숯댕이도 개지. 온갖 동물 뼈도, 살도 먹는 걸. 이 동네에서 고라니 발목만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들개들이 고라니를 사냥해서 먹는다.
우리의 공간에는 누구도 없었다. 원래도 인적이 거의 없는 야산의 길이지만, 폭우 속이니 더 그랬다. 나는 힘들지만, 숯댕에겐 (다른 인간으로부터) 안전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날씨가 구린 날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쾌적하고, 안전한 날씨에 익숙한 사람들은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숯댕이의 고리를 풀고 공을 던졌다. 숯댕이는 공을 물고서는 재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았다.
1-2분이면 돌아와야 할 숯댕은 보이지 않았고, 겁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곧 돌아올 것을 알았지만 ‘고라니 사체’가 걸렸다.
숯댕이가 고라니에게 돌아간 것은 아닐까? 고라니를 뜯어먹다가 차에 치이면 어쩌지? 고라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게 맞을까? 길이 엇갈리면 어쩌지? (숯댕이는 집을 찾아갈 줄 안다)
다행히 숯댕이는 금방 나타났다. 오랜만의 산책에 흥이 과했을 뿐이었다. (후에 안 것이지만 장대비 속에서 숯댕이는 더 흥분한다)
나는 숯댕이의 포식 행위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죽은 동물의 부산물을 간식으로 주고, 심지어 지난 5일 간 몇 만에 달하는 닭의 사체를 ‘처리’하는 노동을 하고 왔으면서.
얼마 후
산책하는 도중 멀리서 파란색 트럭이 오는 걸 봤다. 숯댕이는 빠르게 달리는 교통수단을 보면 달려드는 경향이 있어서, 트럭이 다가오는 걸 본 순간부터 줄을 바짝 잡고 있었다. 숯댕이는 늘 그렇듯 차를 향해 적극적인 행동을 했다.
트럭이 우리 곁을 스쳐서 지나간 순간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컹컹!
돌아보니 찰나의 순간이지만 트럭 뒤에 철창이 있는 것을 보았다. 컹컹 소리는 아마도 그 철창에서 나온 소리였던 것 같다. 숯댕이는 그 트럭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계속 흥분 상태로 있었다. 평소와 달리 어쩔 줄 몰라하는 것 같았다.
숯댕이가 나를 보는 눈빛이 복잡해 보였다. (순전히 내 생각이겠지만) “왜 저 개를 모른 척해?”라고 묻는 것 같기도 했고, “따라가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모르겠다.
나는 더 이상 그 트럭이 어떤 트럭인지, 그 안에 개가 얼마나 갇혔는지, 그리고 그 개들이 어디로 가서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될지 더 이상 알아볼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트럭이 완전히 사라지고 숯댕이가 차분해졌을 때 찬물을 주면서 사과를 했던 것 같다. 힘이 없어서, 의지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숯댕이 사과를 받을 대상은 아니지만 눈 앞에 있으니까 들어줬으면 했나.
요즘 드는 생각이지만, 사과도 애도도 하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방법 같기도 하다. 사과 속에는 변명을 섞을 수 있다.
한 번씩 ‘유실물’처럼 올라온 동물을 찾아본다. ‘기타 축종’으로 검색하면 닭, 뱀, 앵무새, 염소, 돼지 등 다양한 이들의 사진이 뜬다. 개나 고양이처럼 일정 기간 후 ‘처분’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들을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 공고를 보고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잔디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 중이었는데, 한 사유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공간은 하필 도살장이었고, 그곳의 관계자들은 차 안에 있는 잔디를 보고 자기들의 것이라고 했다. 잔디가 그들에게 끌려갔다.
이 돼지는 미니어처라고 외쳤었나. 도살해서 고기로 먹는 그 ‘종’도 아니라고 항변했던 것 같기도 하고, 삼켰던 것 같기도 하고. 무서웠던 감정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