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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본쓰 May 10. 2021

생일, 이번부터는 따로 챙기자

단체 채팅방 하나가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 채팅방이 만들어진 게 한 10년은 된 것 같다. 카카오톡이 있기 전에 네이트온을 썼을 때부터였고, 인스타그램이 있기 전에 페이스북과 싸이월드가 있었을 때였으니 10년이 더 되었을 수도 있다. 구성원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이다. 나는 남자, 다른 셋은 모두 여자. 모두 90년대생인데다가 같은 교회를 다녔으며 서로의 성격이 어느 정도는 잘 맞아서 지금까지 이 채팅방이 유지되고 있다. 다행히도.


구성원이 4명이다보니 1년에 생일이 4번 찾아온다. 지금은 사는 지역이 모두 달라서, 누군가의 생일에 모두 모여 식사를 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지만, 그래도 마음을 전하고자 생일 선물을 매번 챙겨왔다. 누군가의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은 따로 채팅방 하나를 만들어서 작은 이벤트나 선물에 대해 논의하곤 했다. 매년 그렇게 해왔고 익숙해 있었기에 너무 당연한 일로 여겨왔다.

문제는 10년이라는 세월에 할 만한 선물을 모두 했다는 것. 립스틱이나 향수 같은 화장품부터 지갑이나 옷, 신발 같은 잡화류, 커피나 베이커리는 물론이고 상품권이나 책, 무드등 등 그 종류만 해도 굉장히 다양했다. 이번에도 역시 곧 다가오는 A의 생일을 준비하며 나를 포함하여 B와 C는 단체 채팅방을 따로 만들어 선물에 대해 논의했다.

- 5일 남았는데, 무슨 선물할까?

- 찾아봤는데, 다 애매해... 한번씩 했던 선물이고 이러네.

- 이거 어때? 차량용 미니 공기청정기.

- 괜찮은 거 같은데? 좀 큰가?

매년, 매 생일마다 그랬던 것처럼 어떤 선물이 좋을지 한창 논의하고 있었을 때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생일자한테 물어보고 원하는 선물 해달라고 하는 거 괜찮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일 선물을 가장 선호했다. 예전에 내 생일에 친구들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미리 얘기했고 적당한 금액대에서 괜찮은 선물을 받아 지금까지 아-주 만족하면서 쓴 적이 있었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우리 매년 생일마다 이렇게 고민하지 말고 ㅋㅋㅋㅋ 그냥 받고 싶은 선물 얘기하는 거 어때?

그러자 C가 조심스레 얘기했다.

- 근데,,, 이제 그냥 각자 소소하게 주는 걸로 하자.

조금은 갑작스런 말이었고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었기에 나는 살짝 당황했다. '이런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는데'하고. 뒤이어 온 메시지를 통한 C의 입장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C는 몇 년 전 결혼하고 아이도 둘이나 딸린 아기엄마. 매년 남편 생일에 아이 둘 생일, 게다가 부모님과 시부모님 생일까지 챙겨야하는 C에게 매번 이런 논의가 오가는 것이 조금은 부담이고 귀찮다는 것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뉘앙스는 그러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주변에 생일을 챙겨줘야하는 사람들이 우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C의 말처럼 남편과 아이들, 가족들까지 챙기려면… 나 같아도 정신 없고 복잡하고 귀찮고 돈 아깝고 그랬을 것 같다. 따로 챙긴다고 해서 안 챙기는 것도 아니고, 선물 종류가 많아지니 좋을 수도.

- 음, 그래그랩. 그러면 이번까지만 챙기고 다음부터 따로 챙겨주는 걸로 하자.


내가 이렇게 답장을 보냈는데, C는 결단이라도 한 모양으로 답했다.

- 아니아니, 이번부터.

결국에는 이번 생일부터 따로따로 생일을 챙겨주는 걸로 하고, 대화는 끝이 났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과 '그래도 생일인데 조금 더 챙겨주면 좋지 않나'하는 마음. 두 마음은 서로 충돌하고 교차되며 엉키기까지 했지만 끝내는 따로 챙겨주는 걸로 마무리 되었다. 내 입장에서도 그렇게 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어쩐지 생일을 귀찮게만 느끼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아쉽고 또 걱정된다. 나중에는 서로의 생일 선물은 커녕 생일 축하 메시지도, 아니 생일까지도 잊게 될까봐. 365일 중 하루지만, 생일자에겐 소중할 수도 있는 날이고 축복받고 싶어할 수도 있는 날인데.


그래도 고민은 남는다. 그래서 선물 뭐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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