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타인에 대해 어떤 시선이며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김혜진 작가의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너라는 생활』이라는 단편집인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겪어본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다소 민감하고, 어떤 각도에서는 불편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여기 실린 모든 작품에는 '나'와 '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작품마다 다르긴 하지만 몇몇은 '나'와 '너'가 동성커플인 것으로 나온다. 반 정도 읽은 책을 마저 읽으려고 책을 다시 폈을 때에도 동성커플이 나왔고, 작품 속에서 그들은 동네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장면이 이어졌다. 나는 동성애니 양성애니 이런 성 정체성에 대한 분류와 당사자들을 제3자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했다. 이내 조그마한 조각 같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결국엔 책을 덮고 노트북을 폈다.
고등학생 때였나. 아마 맞는 것 같다. 교회 집사님이 운영하는 영어 학원에 몇 년간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꽤 오래 다닌 곳이었기에 오며 가며 원생들의 얼굴이며 이름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수업하는 강의실 창문 너머로 낯선 여학생이 앉아있는 걸 보았다. 앞머리는 자를 대고 자른 듯 반듯했고, 전체적으로 생머리에 수수한 모습이었다. 그 시기 여느 여학생들처럼 젖살이 빠지지 않아 볼은 통통했다.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스타일이었다.
집사님, 그러니까 원장님께 여쭤보니 지난주부터 새로 다니기 시작한 학생이라고 했다. 내가 듣는 수업은 10시였고 그 여학생은 아마 그 앞 시간에 수업을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학생이 강의실 문을 열고 나오면 내가 뒤이어 들어가곤 했으니까. 매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그때만 해도 굉장히 소심하고 찌질한 학생이었던 나는 속으로만 말을 삼켰다. 원생들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통원 차량은 늘 저녁 11시에 있었기에 나는 그 여학생과 같은 차를 타야만 했다. 그때도 역시 말 한마디, 인사 한 마디 하지 못한 채였다.
그 여학생과 같이 수업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는 그로부터 몇 주 뒤에 듣게 되었다. 학기가 바뀌면서 수강생이 새로 들어오고 나가게 되었고 이 때문에 반을 개편해야 했던 것이다. 함께 수업을 듣는 첫날. 수업을 마치고 나서 그 여학생이 내게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서먹하지만 수줍게 웃던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아마도 그녀를 좋아했던 것 같다. 사실 외모보다는 마음씨가 착해서 더 호감이 갔다. 학원 옆에 있는 빵집에서 사 온 것이라며 잔뜩 사 온 호두파이를 나눠먹자고 하기도 했고, 원장님의 생일에는 작은 파티를 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나와 그 여학생은 점차 가까워져 친구가 되었고, 내 인생 처음으로 카페라는 곳도 그 애와 함께 가보았다.
그 애에 대한 이상한 소문은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듣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남학생들만 다니는 학교였는데, 그런 곳에서 여학생인 그 애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친한 친구 몇 명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너네 학원에 Y라고 있지 않냐? 걔 바이(양성애자)라던데? 아닌가, 레즈(레즈비언)라 했던가? 얼굴 빻았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크크크. 지금 같았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냐, 어디서 들은 얘긴데 걔에 대해 그렇게 함부로 말하냐고 따지고 들었겠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학생이 양성애 또는 동성애라니. 다 컸다면 다 큰 나이였지만 그때는 아직 어렸다. 큰 충격이었고 동성애나 양성애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큰 잘못으로 여겼다. 사실관계는 접어두고 나도 모르게 그 애와의 거리를 조금씩 두게 되었다. 자주 나누던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각자 학업에만 매진했다. 게다가 (그 애와는 상관없는 이유였지만) 내가 먼저 학원을 그만두면서 그 애와는 영영 멀어졌다. 그 소문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끝끝내 모른 채, 그 소문이 마치 사실인냥 내게 각인된 채로 말이다.
책 한 권, 짧은 소설이 내 작지만 쓰린 기억의 단편을 되살려냈다. 소설에서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동성커플에 대해 (험담까지는 아니지만) 뒷말을 남기고, 당사자들의 상황과 마음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이야기한다.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이유로. 내 입장이 아니니까, 배설하듯 내뱉기만 하면 되는 것이 그로 인한 고통은 내가 겪지 않는 것이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라고 다를까. 그때 침묵한 나 역시 그 소문에 동조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비단 이 이야기뿐 아니라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십수 년 전 그때처럼 어디선가 들은, 확인되지도 않은 소문을 마구마구 퍼뜨리고 있지는 않을까. 침묵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아닌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그런 오후다.
(이 글은 2021.04.15.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한 글을 옮겨 적는 포스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