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와인 좋아하는데요.

무슨 술 좋아하세요?

무슨 술 좋아하세요?


모임에서 나누는 일상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술 이야기 일 것이다. 주량이나 취향을 묻는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진 않는다. 나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은 아니니까.


전 와인 좋아해요.


'와인'이 가진 이미지 덕분에 다들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다. '술 잘 못 마셔요'와 '와인 좋아해요'는 상반되는 느낌이라서 그럴까? 그렇기에 나는 빠르게 말을 덧붙인다. 와인을 잘 아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말이다. 나는 그저 와인이 가진 속도와 나른함을 좋아할 뿐이다. 곁들이는 안주는 가벼운 편이라 더 좋다. 와인이 나의 속도와 양에 잘 맞는 친구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커피를 좋아한다고 커피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듯, 나는 그렇게 와인을 마신다.


요즘 한 잔용 와인, 아니면 아주 작은 양의 와인을 쉽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편의점에서 'yellow tail'이라는 호주 와인을 종류별로 사 와서 쉬는 날 하나씩 꺼내 마셨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기분이 좋았다. 187ml라는 양은 하루를 마무리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한 번에 들이켜지 않아도 되는 즐거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기운이 감도는 매력. 딱 이 정도의 기분으로 무언갈 하고 있으면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잠겨 들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그리고 알던 것을 다시 보는 일이 많았다. 잔잔한 영화를 보거나 시를 한 편 읽어갈 때도 있었고, 평소에 듣는 음악을 틀고 사운드에 깊이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질 때도 있었다. 좋은 콘텐츠는 다시 꺼내볼 때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도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잖아요.

전 그게 딱 적당해요.


'와인을 좋아한다는 대답'을 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나는 항상 술이 왜 재밌는지, 술자리는 왜 즐거운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었다. 나의 템포가 그런 술자리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서로가 각자의 잔에 맞추어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와인을 좋아한다는 대답은 나의 템포가 그 정도라는 이야기이다. 그 전의 나는 스스로를 다른 이의 기준에 맞추어 아등바등 술자리를 보내는 사람처럼 생각했다. 술자리가 끝나고 나면 항상 공허한 기분에 울적해했다. 나는 그곳에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우울했다. 술자리는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장소로 변해갔다. 하지만 나의 속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나서, 이제 그런 일은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 정도가 딱 좋아'라는 이해를 하는 일이 왜 이렇게도 어려웠을까?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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