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기록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리슬로 선유산책 Feb 26. 2021

무해

단어를 입에 넣고 굴려보자 - 01

오랜만에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스타벅스의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 책 2권과 다이어리, 가벼운 텀블러를 올려두니 모두가 제 자리를 찾은 듯 알맞았다. 따사로움에 기꺼이 등을 내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일은 상당히 즐거웠다. 추위에 약한 나는 절대 ‘얼죽아’ 회원이 될 수가 없었는데, 이 계절에 오랜만에 달그락 거리는 얼음 소리와 텀블러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을 보며 새로운 기분을 느꼈다.


‘세상에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


먼저 집어 든 것은 이 책이었다. 도서관에서 제목에 이끌려 책을 꺼냈는데, 마침 내가 관심 있어하는 제로 웨이스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고민할 여지도 없이 빌려오게 되었다.


무해 - 라는 단어가 입에 맴돈다. 걸리적거리지 않고 편안히 뱉어낼  있는 단어가  자체로 ‘무해 보였다.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상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텀블러를 건네며 커피를 주문할 때 항상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나도 무해해지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에코백에 텀블러와 손수건을 넣고, 나가기 전에는 혹시 몰라 다회용기를 챙길까 말까를 수십 번 고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활 곳곳에서 쓰레기를 무지막지하게 만들어내고, 어느 날은 머그컵을 준다고 생각했던 카페에서 일회용 컵을 턱 하고 제공하는 바람에 의지가 꺾이기도 한다. 이제 더 이상 당연한 일회용품은 없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꾸 무너져 내린다. 무언가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는 수십수백 번 생각해야만 한다. 상처는 너무 쉽고, 치유는 먼 곳에 있다.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비누를 쓰는 마음에 대한 글이 기억이 나는데, 샴푸바와 바디워시바 설거지 비누를 사용하는 작가는 처음에는 비누를 홀대 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에서 나온 바와 같이 비누는 ‘옛날’의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다. 비누는 쓰면 쓸수록 솔직하게 줄어든다는 이야기에, 둥글게 깎여나가는 비누를 상상하며 온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해한 삶을 위해, ‘해’를 하나씩 덜어내고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들어 온 무의미한 쓰레기가 데이터화 되어 나에게로 돌아온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갑자기 생겨났다. 그렇다면 더 이상은 ‘해’를 쌓지 말아야지 싶은 것이다.


- 커피 일회용 컵과 빨대

- 휴지 특히 손을 닦을 때 쓰는 휴지

- 봉투, 필요 없는 포장

- 생수병은 그만 (브리타 최고)

- 햇반도 그만 (밥솥 최고)

- 쉽게 사는 의류

- 아크릴 수세미 (미세 플라스틱 발생 요인)

- 재활용되기 어려운 화장품 용기, 워시 용기

- 생리대 (하루만 되어도 쓰레기 산이 된다)


천연수세미로 설거지를 하며 종종 씨앗이 튀어나올 때, 자연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어서 즐거워진다. 배달은 시키지 않고, 포장용기를 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가는 것도 익숙해졌다. 장은 직접 보면서 최대한 플라스틱 용기가 없는 제품을 골라잡는다. 분리 배출해야 하는 제품은 꼼꼼히 분리하고 세척하여 버린다. 많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고민하고 대체품을 생각해본다. 실천하고 있는 일, 실천할 예정인 일을 적어 내려가며 이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무해해지는 중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