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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슬로 선유산책 Mar 01. 2021

벽돌

단어를 입에 넣고 굴려보자 - 02

예술의 전당에 가던 길이었다. 환승을 하기 위해 버스정류장을 항해 걸어가던 중 한 내과를 발견했다. 다 해진 간판을 보아하니 아주 오래된 곳 같았다. 그 건물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벽돌 때문이었다. 옛것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붉은 벽돌. 특이하게도 3겹의 벽돌을 꽉 채우지 않고, 계단식으로 모양을 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벽돌. 벽돌. 버스를 타고 벽돌을 계속 떠올렸다. 단어의 모양 자체가 반듯하고 네모난 것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벽도 그러하고 돌도 그러하고 견고한 것이 결합된 모양새가 꽤나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벽돌이 너무 일상에 가까운 나머지 딱히 이에 대해 특별한 가치를 느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벽돌이 있고, 나는 그걸 지나치기만 했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무 산책길을 걷는 것만큼 벽돌길이나 돌담길을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기억 속에 남아있던 벽돌길을 하나씩 떠올렸다. 최근에 도서관을 가며 지나갔던 길이 생각났다. 어떤 아이가 듬성듬성 낙서를 했는데, 걷는 길 내내 이어져있어 그 글을 읽으며 걸었던 기억이 났다. 국어, 수학, 영어, 과학, 음악 등등 과목과 관련된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중간에 ‘난 사람’, ‘된 사람’이라는 단어를 보고 웃기도 했다. 이 친구는 그 단어가 인상 깊었던 것 일까? 단어랑 어울리지 않게도 한 구석에는 0점이라 적혀있었다. 굉장한 위트라고 이건!


이러한 공간의 낙서는 좋아하지 않지만, 누구누구 왔다감 이라던가 연애를 표시하는 말들보다는 꼬마 아티스트의 단어나열이 훨씬 감각적이고 풍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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