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의 문제냐, 돌봄의 문제냐

by 세라

텃밭을 가보면 밭마다 자람의 정도가 각양각색이다.

예를 들어 우리 밭의 고추는 하나 둘 달릴까 말까 하고 가지는 단 하나의 꽃도 피지 않았다.

이 친구들은 태생부터 글러먹은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반면, 세네 걸음만 발을 떼면 고추 한 나무에서 고추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열려있다.

다른 점은 밭을 가꾸는 주인, 그리고 씨앗이다.

참 신기하게도 바로 이웃한 땅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작물의 생장이 판이하다.









남편은 농사는 원래 그런 것이라 자식처럼 마음을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자식처럼 기대감을 내려두고 스스로 꽃을 피우고 힘껏 가지를 뻗어낼 수 있게 기다려야지.

그런데 기다리고 믿어주기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돌봄 노동을 덜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잡초를 더 열심히 뽑고 물을 더 자주 주고 영양제를 잘 챙겨 준다면 꽃 하나라도 더 피울까?

하늘에 운을 맡기는 것도 "진인사대천명"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때 기대어 볼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고백하건대 나는 최선을 다하지는 못했다.

매일같이 텃밭으로 출근하지는 못했다.

나의 돌봄이 부족했음을 시인하는 바이다.



한편으로는 종자의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제 아무리 후성유전학-유전자의 발현은 후천적으로 매일 시시각각 나의 선택에 의해 조절된다는 요즘 유전학-이 중요해진 시대라고 해도, 타고난 유전자를 이겨낼 수는 없다.

나의 어떤 지인의 집안은 양가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암에 걸리지 않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드시는 약 없이 100세에 가깝게 사셨다. 이런 집안의 유전자를 받았다면 훨씬 건강할 확률이 높은 게 자명하다.

반면 또 다른 지인은 엄마 아빠 여동생이 모두 갑상선암에 걸렸고, 본인도 갑상선 이상이 있어 3개월 한 번 검사를 받고 있다.

타고난 종자, 그것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극복할 수도 있지만 사실 너무나 어렵다.

우리 고추와 가지 식구들은 다음 후손을 얻기 힘든 종자였을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

나의 노력이 부족함에 대한 변명이겠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씨앗이다.

역시나 좋은 종자를 고르고 남기는 것, 그것은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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