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
모닥불님,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스타벅스에 내 닉네임이 울려 퍼진다. 바인더와 책, 그리고 서피스까지 자리에 세팅하다 보면 어느새 주문했던 음료가 나온다. 정말 피곤한 날이 아니면 되도록 카페에서 밀린 일이나 계획했던 일을 처리하는 편이다. 퇴근 후 1~2시간, 결코 많지 않은 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가니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조금씩 천천히 이루어진다.
책은 우리에게 경험하지 못한 시간을 제공하고 스스로에게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해 준다. 그렇게 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안겨준다. 그러나 읽지 않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책을 통해 변화하고 싶으면 일상에 책 읽을 시간을 어떻게든 확보해야 한다.
나는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
회사에서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읽을 시간이 없어.
퇴근하면 너무 피곤해, 그냥 쉬고 싶어.
온갖 읽을 수 없는 이유로 책이 여전히 덮어져 있을 때, 곧 머지않아 이전에 느꼈던 한계의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불과 몇 년 전 취업 준비생일 때는 한 해 읽었던 책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딱히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단계는 아니기에 지금보다는 시간적으로 한없이 여유로웠다. 그러나 읽지 않았다.
오히려 바쁘다는 변명이 통하기 좋은 직장인이 되고서 독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읽었던 책은 목표치였던 50권을 훌쩍 넘은 약 70권 정도였다. 역설적으로 여유로웠을 때는 목표 조차 한없이 여유로웠지만, 바쁠 때는 여유롭지 않은 목표를 어떻게든 달성하도록 더 노력했었다. 더 자고 더 쉬면 컨디션이 좋아서 시간 효용성이 좋을 거 같았지만, 막상 덜 자고 덜 쉬었을 때 더 좋았다.
나는 마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다.
집에 도착하면 따뜻한 전기장판을 틀고 이불을 들춰서 그 속으로 들어간다.
저녁 8시 32분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놓았던 일을 하기에 참 애매한 시간이다.
40분에 해야지
의미 없이 핸드폰을 만지다가 40분이 되면 50분에 해야지, 에이 늦었다. 9시에 해야겠다. 하고 조금씩 미룬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금세 잠 들 시간에 가까워진다. 결국 오늘 내린 결론은
오늘은 늦었다, 내일 해야지.
분명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지만, 충분한 시간 동안 의미 없는 것들을 채웠고 내일 하기로 기약한 일은 내일도 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카페보다 좀 더 편안한 집에서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일찍 집에 도착한 날이면 10번에 9번은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흘러갔다. 의미 없는 것들이 반복되자 더 이상 집이라는 편한 환경을 믿지 않기로 했다. 집은 휴식을 취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지만 생산성을 증대시켜야 하는 날에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항상 이것저것 많은 짐을 가방에 꾸리고 회사로 출근한다. 그리고 퇴근 후 카페에 가서 급한 일이 있을 때는 그 일부터 처리하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바인더도 쓰고, 책도 읽고, 서피스를 통해 블로그 글도 쓰고 그냥 울적한 날에는 필사를 통해 치유받기도 한다. 나에게 스타벅스는 뭔가를 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방지 위해 가는 곳이다. 물론 정말 피곤한 날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집에 가는 길에도 해야 할 것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집으로 곧장 달려서 푹 쉰다.
그 외에는 항상 무언가를 했고, 올 한 해 그 결과는 참 놀라웠다. 만약 뭔가를 하기 위해서 카페 가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오히려 격렬히 저항하면서 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페가 내 생산성을 증대시켜주는 곳임을 확인하고, 카드 혜택 또한 카페로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지금은 스타벅스를 30% ~ 50% 저렴하게 이용하고 있다. 어느새 카페는 커피를 소비하는 곳이자, 내 목표를 이루어주는 장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