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나에게로 왔다
이른 아침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출근할 시간이다. 지난 29년 동안 매일 잠들고 일어나기를 반복했으면 알아서 일어날 법한데,막상 습관이 되어버린 건 잠들기 전 몇 시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지 확인하는 것뿐이다. 정작 습관이 되어야 할 것들은 여전히 습관화되지 않아 알람의 힘을 빌리고, 습관이 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았다.
작년에 이루지 못한 것들은 리셋하고 야심차게 내 인생을 바꿔줄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목표를 세우는지 궁금해서 검색을 하니, 역시나 운동, 독서, 외국어 공부 등은 빠지지 않는다. 올해는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겠다고 다른 목표를 생각해보지만 결국 내가 세운 목표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목표들이었다.
그런데 잠깐, 작년 목표가 뭐였지?
2017년 1월까지만 쓰다 말았던 다이어리를 펼쳐보니 올해와 다를 게 없다.
변하지 않는 건 월급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출근하기 싫지만 일하기 위해서 출근은 해야 하고, 일하기 싫지만 어제 잠들기 전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아둔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일해야 한다. 하기 싫은 것들은 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로 가득 차 있어서 우리는 결국 해야 한다. 반대로 하고 싶었던 것들은 할 수 없는 이유들로 가득 차 있어서 결국 우리는 못한다.
무슨 차이일까?
인간은 감각에 민감하다. 어디선가 시선을 끌거나 냄새가 풍기거나 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하기 싫은 것들은 남들에 의해 끊임없이 알람이 울려서 해야만 하는 경각심을 갖게 만드는 반면, 하고 싶은 것들은 울지 않는다.
새해 목표를 세울 때면 독서는 늘 단골이었다. 올해는 50권은 읽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당찬 목표(?)를 세우고 치열하게 살다 보면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새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간 동안 책은 울지 않았으니 당연히 독서를 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많이 읽는다고 남는 게 있었나, 한 권을 읽더라도 남는 게 있어야지.
양보다 질이다!
독서를 하지 않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양 중심의 다독이 아닌 질을 중시하는 정독을 장 중요한 요소라고 합리화하며 지난 과오를 잊고 새 출발을 다짐한다. 하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는 법. 양이 있고 질이 있지, 양 없이 질이 좋아질 수는 없다. 기본을 무시했던 자세는 언젠가 더 큰 리스크로 다가온다.
핸드폰은 전화, 메시지, 카톡 등에서 항상 알람이 울리니 신경 쓰지 않다가도 어느샌가 손에 쥐고 있는데, 책은 울지 않으니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늘 그 자리에 있었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먼저 다가오지 않으니 내가 먼저 다가가는 수밖에, 그렇다고 무턱대고 읽자니 내 의지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전략을 바꿔야 한다.
목표는 달성되면 끝인 반면에 습관은 끝이 없다. 그냥 장착되면 내 것이 된다. 잠시 내려놓을 수는 있어도 금방 다시 습관이 된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타던 습관을 익혀두면 꽤 오랜 시간 타지 않더라도 성인이 되고 나서 자전거를 타보면 금방 예전의 타던 습관이 돌아온다. 독서도 그렇다. 1년 동안 50권을 읽겠다는 정량적 목표도 좋지만 처음에는 '출근할 때 지하철에서 20분씩만 읽자'라는 소소한 습관부터 시작하자.
권수에 집중하지 않고 소소한 습관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재미가 붙고 책 읽는 습관이 붙는다. 그때부터 비로소 1년 동안 50권 읽어봐야겠다는 목표를 세우면 독서도 가속도가 붙는다.
영어공부를 할 때 단순히 교재를 읽기만 한다면 여전히 외국인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하지만 꾸준히 영작을 해보고, 부족한 회화 실력으로 계속 말하는 연습을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실력이 늘고 외국도 나가봐야겠다는 자신감이 붙는다. 그렇듯 독서도 단순히 읽기에만 그치지 않고 읽은 내용을 필사하거나 내 생각을 담은 독서노트도 작성해보고 독서모임에 참여해서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본인도 몰랐던 인사이트를 얻게 된다.
쓰기 : 필사, 독서노트, 블로그 포스팅
말하기 : 독서모임, 발표
그동안 필자가 작성했던 독서노트다. 단순히 책의 내용을 옮겨놓은 것도 있고, 읽으면서 깨달았던 것이나 내 삶에 적용할 만한 것들을 적어놓은 독서노트도 있다. 오롯이 내 것이 되기 위해서는 나만의 방법으로 체득하면 된다. 시중에 독서법에 관한 많은 책들이 있는데 참고는 하되 그들의 방식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 필자의 방법 또한 그렇다. 그냥 참고만 하고 꾸준히 쓰다 보면 본인만의 방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꾸준함이 답이다.
에세이를 읽다가 좋은 문장이 있으면 바인더에 손수 옮겨 적기도 하고, 블로그에 포스팅할 때 인용할만한 문장이 있으면 이 또한 workflowy에 적어둔다.
독서를 통한 최고의 아웃풋은 서평과 독후감이다. 나를 위한 아웃풋도 좋지만,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글이면 더 좋다. 누군가 내 서평을 통해 그 책을 구입하게 된다면? 스스로에게는 글이 인정받는 셈이고, 읽은 사람은 글을 통해 좋은 책을 구입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인정받고 좋은 책을 구입하는 것 이상으로 나도 글 쓰는 능력이 있네!라고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자신감이 붙는다.
필자가 브런치에 썼던 글 중에서 특히 관심을 받은 글에는 특히 독서와도 관련이 깊다.
퇴근 후 1~2시간이라도 카페에 가서 독서를 포함한 자기계발을 추천하는 메시지를 던진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하다 글은 최근에 어마어마한 관심을 받았다.
의도치 않게(?) 스타벅스 홍보대사가 되어버렸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서 퇴근하고 카페에 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글을 댓글로 남겼다.
지난 8월에 썼던 크레마를 쓴다는 것은 올리자마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 리더기를 구입하게 만든 글이었다. 올해 바스락 모임에서도 많은 분들이 '크레마'를 통해서 독서 습관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피드백을 많이 주셔서 굉장히 뿌듯했다. 이렇게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카페에 가서 조용히 필사를 하거나 블로그에 느꼈던 점을 올리다 보면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면 이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하기 위해서 독서모임에 참여해보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만 보더라도 전국에 수많은 독서모임이 있다. 회비가 없거나 저렴한 곳이 많으니 용기 내서 가보자.
독서모임에 참여하면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책에 대한 것보다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 나와 다른 라이프 스타일에서 풍기는 신선함을 받는다. 분명히 똑같은 책을 읽었는데 누구는 이런 이유 때문에 별로였다. 누구는 이런 점 때문에 좋았다고 의견이 갈리는데 그 이유도 일리가 있어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나는 몰랐던 거네'라고 생각하면서 내 세계관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세계를 넓혀주는 좋은 동료가 되는 것이다.
독서 토론 자체도 좋지만, 조금 더 욕심이 나면 책도 선정해보고, 그 책을 소개하는 발제자가 되어보기를 추천한다. 그렇게 하면 단언컨대 그 독서모임에서 그 책에 대해서 당신이 가장 많은 것을 얻을 것이다.
예전에 책을 읽는 습관이 자리 잡기 전에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읽을 수 없는 이유들로 독서를 멀리했다. 안 되는 것들만 생각하다 보니 정말 안 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독서가 습관이 되자 이제는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읽고 있다. 출퇴근 길에 읽고, 출근 후 회사에서도 읽고, 카페 가서도 읽고, 친구가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오면 그 시간 동안 읽고, 잠들기 전에 잠깐 읽기까지 읽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너무나 다양해졌다.
올해 독서에 욕심이 있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읽을 수 없다는 이유는 잠시 멀리하고, 1년에 100권 읽겠다는 목표 대신 하루에 30분씩만 언제든, 어디서든, 어떻게든 읽어보자는 쉬운 결심을 가지고 시작해보자. 매일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1달이 되고, 1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 사이 당신의 인생에서는 많은 것들이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새 울지 않았던 책이 어느 순간 나에게로 와있다. 그때 책은 비로소 당신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