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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Feb 23. 2018

그럼에도 무엇이 되고 싶다

책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생선 김동영 작가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아


항상 무엇인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손에 아무것도 잡히지 않을 때면 내심 불안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았던 일을 겪으면서 이 길은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김동영 작가는 나와 같이 무엇인가 되지 못해 자책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책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를 통해 따스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


원하는 무엇이 되지 못했지만,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괜찮아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 재밌는 일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걸어온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글 속에 그와 함께 삼청동 주변을 걸어 다니기도 하고, 故 장영희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지 못할 그녀의 불편함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한다. 책을 덮고 푹 빠졌던 그들의 삶에서 나올 때면 '유명한 작가님들도 우리랑 다를 게 없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며 심심한 위로를 느낀다.




평생 눈을 감지 않는 생선처럼 살아가면서 모든 순간을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생선'을 예명으로 쓰는 김동영 작가는 스물아홉에 첫 책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를 냈다. 어느덧 마흔 하나가 된 그는 최근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를 통해 여행 에세이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책을 통해 보고 느낀 것

(책에서 인상 깊었던 본 것은 으로, 느낀 것은 초록으로 표시했다.)




p.17

지금까지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주어진 상황에 따르며 지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를 해야 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선 친구들과 어울려 조금 놀았고, 다른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하니까 저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갔어요. 다행히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적응하느라 바빴죠. 회사에 적응하고 나니까 언젠가부터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다 당신을 알게 되었는데, 나와는 다른, 완전히 딴 세상 사람 같았어요.


최근에 북바이북에서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님에게 강연(후기)을 들었다. 남들이 보통 좋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따라 해서 판사가 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 유일하게 손수 결정해서 간 곳이 LG였고, 그 이후 꼭 일해보고 싶었던 검색 기업인 네이버에서 대표까지 거쳐서 지금은 하고 싶은 일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지금의 회사에 3년 전에 취업했을 때만 해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김동영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적응하느라 바빴고 언젠가부터 내 삶의 중심에는 회사가 놓여있었다. 그래서일까? 삶의 중심에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배치한 사람을 보면 정말 부러웠다. 그래서 곧 부러웠던 그들처럼 내 삶의 중심을 회사가 아닌 다른 것으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p.18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지겨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다. 그땐 지겨운 시간들이 나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책과 음악 덕분에 미쳐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사람은 아무리 지겹고 힘든 상황이더라도 버틸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른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현실에 무심해지는 것이고, 조금은 뻔뻔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 한다.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운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생각하기보다는 느끼는 편이 현명하다. 


자유로워지려면 주위의 시기 어린 질투에 조금은 뻔뻔해져야 한다. 나와 다르게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우리는 걱정해주는 척, 불안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

 

p.23

만약 그날 느꼈던 감정을 그냥 흘려보내고 내가 진짜 자동차 정비 기술자가 되었다며 어땠을까? 지금의 내 모습에 100퍼센트 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가보지 않은 길에 항상 미련이 남는 법이니까. 지금과 다르게 살고 있을 내 모습이 궁금하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괜찮은 인간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 솔직하게 미련이 남는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본인이 실패하지 않은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지금 상황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과거 따위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p.38

내가 이른 아침에 일어나는 건 부지런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하루 중 내가 가장 또렷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그 시간에 나를 맞춘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그 시간을 사랑한다.


나에게 가장 또렷한 시간은 언제일까? 자기 분석에 꽤 능해도 여전히 모르겠다. 아침인 것 같기도 하고 새벽인 것 같기도 하다. 


p.41

비록 지금 우리는 이렇게 초라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모두 우리가 선택한 것이니까 후회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의심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렇게 잘 살고 싶다.


선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고 지치지 말자. 그렇게 의심하지 않으면 잘 살아갈 것이다. 잘해왔으니까.


p.60

사진은 내게 그런 것이었다. 단순히 어떤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때의 풍경, 사람들, 나눴던 이야기들, 감정들과 생각들, 그리고 냄새까지 모조리 담겨있는, 내 기억의 전부다.


여행에서 그 순간을 오롯이 느끼기보다, 나중에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먼저 셔터를 눌렀다. 그러나 다시 사진들을 찾아보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음 주에 예정된 여행에는 사진과 함께 글로 기억해보고자 한다. 


p.94

긴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많은 곳을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를 찾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거기서 머문다. 물론 찾다 보면 더 좋은 곳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곳에도 머물지 못한다. 그런 식으로 내가 정한 도시에서 나만의 소소한 일상을 만든다. 거기서 지난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고, 새로운 뭔가를 궁리하고, 그 모든 걸 글로 써 내려가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누군가 여행을 다녀오면 어디 어디 다녀왔어?라고 물었다. 생각해보니 질문부터 틀렸다. 장소가 아니라 순간을 물어야 했다. 누구나 거기에 있을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본인만 오롯이 느꼈을 테니까.


어떤 순간이 가장 좋았어?


p.95

내게 여행은 떠남과 돌아옴이다. 어딘가로 떠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참 좋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언제나 나 자신이 좀 더 정리되고 풍부해진 기분이 든다.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더 길게 갈수록 내가 느끼는 그런 감정들도 더 크고 강해진다.


여행도 결국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즐거운 것이다.   


p.114

핀란드에서 만난 마리라는 여자는 여행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긋한 인생의 수레바퀴 안에서 여생을 버틸 풍성한 추억이라고 했다. 러시아 횡단 열차 안에서 만난 술 주정뱅이는 우리에게 더 이상 충분한 시간은 없어. 그래서 우리는 늦기 전에 이 길을 떠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청춘은 불안이고 그 불안이라는 연료로 우리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버펄로에서 만난 친구는 사람이 살아가면서 산처럼 높아지는 것이 꼭 정답이 아니고 바다처럼 깊고 넓어지는 것도 하나의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했다.


특히 버펄로에서 만난 친구의 말이 참 멋있다. 바다처럼 깊고 넓어질 줄 아는 사람이 되자.


p.123

걸으면서 만난 사람들이 자주 물어요.(고행 같은 여행을 하는) 목적이 뭐냐고. 솔직히 그런 건 생각해본 적 없어요. 저는 걷는 게 좋고, 힘들게 오른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너무 좋아요. 또 어쩌다 마주치는 저 같은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아요. 그게 전부예요. 만약 특별한 목적이 필요하다면 나중에 이 여행이 끝나고 생각해볼래요.


싫어하는 것에는 이유가 꼭 있지만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p.149

나는 보았다. 알았다.라는 말보다 느꼈다.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느껴보고 싶은 감정이 낯선 장소에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집에 있을 때는 느껴보지 못한 많은 감정을 여행하면서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는 항상 뭔가 해야 하는 강박관념에 휘둘려 있다. 여행지에 가면 그런 강박관념이 들지 않아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느낀다. 때론 낯선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안겨다 준다. 


p.171

그렇다고 무리해서 완전 무장을 하고 러시아 전선으로 돌격하는 독일 특공대처럼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며 여행할 필요는 없다. 여행은 극기 훈련이 아니니까. 무엇을 보았는지가, 어디까지 갔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마음에 담았는지가 중요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더 이상 수학여행을 다닐 필요가 없다. 더 많은 곳에 가고 싶다면 다음번에 다시 한번 그곳에 들르면 된다. 


p.175

여행이란 어때야 한다고 정해진 건 애초부터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고, TV나 영화의 배경이 된 장소를 직접 가보고,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며 고르고, 허벅지가 당길 때까지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고 다니든 (중략) 모든 여행은 정말 아무래도 좋다. 여행을 하는 자신이 즐기면 그만이다. 


여행은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시험이다. 여백에 본인만의 답을 써 내려가면 된다.



p.185

여행이 매 순간 우리에게 최고의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건 불가능하다. 여행도 우리 생활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간 안에도 기쁘고 외롭고 그립고 기대하는 순간들이 함께 뒤섞여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낯선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야 말로 저마다의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였다는 걸.


일상과 여행은 한 끗 차이, 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p.205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묻는 게 있다.

 "어디서 오셨어요?"   


"저는 얼마나 걸려서 여기까지 왔는지가 궁금해요. 만약 멀리서 왔으면, 그 거리만큼 시간이 걸리면서까지 애써 저를 만나러 와준 게 고마워서요"    


앞으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도 묻고 싶다. 어디서 오셨어요? 시간 내서 만나러 온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낄 듯하다.



귀한 건 그런 식으로 사라지면 안 된다.


몇 년 사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죽었다고 한다. 이어서 작가는 나름대로 당신들 없는 세계에서 잘 지내보려고 분투 중이라고 하면서, 한때 그 언저리에 간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되었든 귀한 건 그런 식으로 사라지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몇 페이지 지나지 않아 좋아하는 사람과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아침에 비추는 햇빛이 부담스러워한다던 그에게 작가는 그 시간에 비치는 건 햇빛이 아니라 햇살이라 괜찮을 거라고 했다. 그는 햇살과 햇빛은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햇살은 햇빛처럼 내리쬐는 게 아니라 가만히 살을 감싸 안는 거라고 말했다.   


다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언젠가 적당한 아침이 오면 그에게 부담스러운 햇빛이 아니라 포근한 햇살을 선사해주고 싶다고 약속했다. 아침 햇살이 유난히 좋았던 오늘이 되었지만 이제 다시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이 되었다. 이 에피소드를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럼에도 무엇이 되고 싶다  


무엇이 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연애를 해보고 싶다. 다름을 받아들이는 넉넉한 연애를 하고 싶다.

여행을 그만하고 싶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잘하기도 남은 인생은 짧다.

이제 뭔가를 사서 집 안에 두기가 싫다. 그것들이 결코 텅 빈 나를 채워주지 않는다.

종교를 가져보고 싶다. 불안정한 나를 절대적인 존재에게 온전히 맡겨보고 싶다. 

성과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바인더 쓰고 함께 책 읽는 바스락 모임


책을  좋아해서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더 많은 책을 만나고 싶다.

연애를 하고 싶다. 김동영 작가의 바람처럼 다름을 받아들이는 연애를 하고 싶다.

여행을 하고 싶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느껴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 나를 지켜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더 만나보고 싶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 내 세계를 확장해보고 싶다. 



혹시 당신과 내가 어딘가에서 만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합시다.


김동영 작가가 말했던 것처럼 지금 글을 읽는 당신과 내가 어딘가에서 만나게 된다면, 서로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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