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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24. 2018

치앙마이에서 미리 여름을 만나다.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방식이 있듯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꾸려가는 것은 누가 이래라저래라 가르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낄 때 망설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춰 쉬면서 다시 인생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려워만 하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p24



치앙마이에서 미리 여름을 만나다.


4월 초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오고 일상에 적응할 때쯤 치앙마이로 미리 여름을 만나러 떠났다. 직항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굳이 한 번에 갈 만큼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기에 좀 더 저렴한 에어아시아 경유편을 이용했다.


여행 기록하기에 Workflowy는 참 좋은 도구다.


인천공항을 가기 위해 캐리어와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서는데 비가 세차게 내린다.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회용 우산을 가지고 공항버스를 탔다. 평소라면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가 비가 오고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1시간 반이 넘게 걸린다. 공항에 도착해 유심을 수령하고 에어아시아 카운터를 찾아서 체크인을 했다. 짐을 줄인다고 줄였는데 체크인 전에 캐리어와 백팩 무게를 재보니 9kg가 조금 넘었다. 에어 아시아는 기내 수하물이 7kg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에 무게를 재면 초과 요금을 내야 했다. 체크인하기 전에 열심히 구글링 해보니 캐리어 무게만 재더라, 학생들이 매는 백팩 정도면 그냥 넘어가더라. 의견이 다양했다.


다행히 백팩도 캐리어도 무게를 재지 않았다. (캐리어는 뭐 그냥 깡통으로 들고 가는 수준이었다) 오히려 보안 심사하러 들어가는 길에 직원 분이 한 번 들어보시더라.   



인천공항(ICN) → 방콕 돈므앙(DMK)

항공기는 3-3-3 형태였다. 왼쪽 창가 자리인 A를 배정받았는데 가장 시끄러운 왼쪽 윙 옆이었다. 그러나 윙보다 더 시끄러운 게 있었으니, 바로 뒷자리에 꼬맹이가 있었는데 방콕까지 6시간 동안 잠도 안 자고 옆에 앉아 있는 아빠에게 폭풍 질문을 쏟아낸다. 조용히 해달라고 하려다가 옆에 앉아 있는 아빠도 힘들어 보인다. 이럴 땐 그냥 자자. 


돈므앙으로 향하는 에어아시아 비행 편에 탑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인들과 태국인들이었다. 큰 항공기가 덜 흔들릴 줄 알고 안심했는데 엄청 흔들린다. 그리고 6시간 정도 앉아만 있으니 정말 허리가 아프다. 나중에 그 이상 소요되는 여행지를 간다면 돈을 좀 더 주더라도 좋은 좌석을 이용할 생각이다. (이렇게 말하고 막상 나중에 더 저렴한 좌석을 찾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방콕 돈므앙 공항(국제선→국내선)

방콕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다음 항공편은 6시라서 나가기 애매해서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때우기로 했다. Transfer가 적힌 대로 따라 걸었다. 


국제선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하는 길이 엄청 길다. 치앙마이에서 달러로 환전할 생각이라 바트를 따로 가져오지 않아서 공항에서는 카드만 썼다. 보통 이럴 때 다른 국가에서는 ATM을 이용해서 소액을 출금했는데 태국은 ATM을 이용하면 금액 상관없이 150~200 THB(약 5천 원~6천 원)의 수수료가 발생하니 차라리 카드를 쓰는 편이 낫다.


돈므앙 공항 스타벅스에서 초안을 썼다.


돈므앙 공항 스타벅스에서 이 글의 초안을 썼는데 직원이 닉네임을 물어본다. 영어 이름이 딱히 없어서 'SEO'라고 했더니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니 영수증을 건네주면서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해준다.


방콕 돈므앙(DMK) → 치앙마이(CNX)

18시 10분 출발 예정이었는데 35분 정도 딜레이 됐다.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니 쨍쨍하던 방콕의 하늘도 어느새 어두컴컴하다. 수많은 한국인들은 온데간데없이 현지인과 백인들이 많다. 오사카에서는 한국인이 가득했는데 교토에 가면 백인이 참 많았듯 방콕에서는 한국 사람이 정말 많았는데, 치앙마이로 향하는 길에는 현지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백인이었다.(물론 교토에도 한국 사람은 많다.) 이륙한 지 1시간 정도 지나니 치앙마이 공항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공항은 도시의 외곽에 있는데 치앙마이는 도심과 정말 가깝다. (착륙할 때 시내에 착륙하는 줄)



내 마음을 만족시키는 일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버티는 게 좋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달라야 했다.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을 보살피고 나에게 이로운 길을 끈질기게 찾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리하고 싶었다. p27~28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가 유행 중이지만 한 달까지 살 자신은 없고 20일 정도 머물 생각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친구들에게 치앙마이에 3주 정도 있다 오겠다고 했더니 두 가지 반응이다. 긴 여행이 부럽다는 친구도 있었고, 그렇게 오래 머물면서 뭐할 것인지 궁금해하는 친구도 있었다.


항상 짧은 여행을 계획하다 보면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음식을 먹을 것인지, 어디를 갈 것인지만 집중해서 생각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계획을 하나도 짜지 않았다. 정처 없이 걷다가 발길 닿는 대로 다니면서 발이 아프면 마사지도 받고, 목마르면 길거리에서 파는 음료로 목을 축이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즉흥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짧은 여행이었다면 생각도 못할 여행 계획이었다.


나는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러운가?
-아무런 계획도 목표도 없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상황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지금 직장을 그만둔다면 뭐가 아까운가?
-그것들이 나에게 중요한 것들인가?
-지금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는가?
-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있는지?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 카트린 지타

   

인천에서 방콕, 방콕에서 치앙마이까지 워낙 비행시간이 길다 보니 두 권의 책을 읽었다. (물론 다 읽지는 못했다) 여행이 끝나고 다음 날 바스락 모임에서 발표해야 할 책 <일상기술연구소>와 언젠가 읽어야지 묵혀둔 책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였다. 묵혀둔 책의 저자 카트린 지타는 혼자 여행하면서 본인에게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녀와 비슷한 질문을 스스로 한 적이 있어 유독 와 닿았던 내용이다. 


아직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이번 여행에서 채워가지 않을까.


사람에게는 때때로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무의식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다람주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단조로운 일상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p.33


여행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들은 왜 비싼 돈 들이면서 가봤자 거기서 거기인 여행을 남들처럼 굳이 따라 해야 하는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사람일수록 혼자 떠나는 여행을 추천하곤 한다.


혼자 가면 재미없을 것 같은데
VS
혼자 가보니까 너무 심심하더라



혼자 가서 심심한 여행은 있어도 재미없는 여행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과 같이 갔을 때 심심하지 않아도 재미없는 여행이 되곤 했다. 직접 겪어봐야 아는 것들이 있다.


희망을 찾아가는 이 특별한 여행에 가이드를 둘 생각은 하지 말길 바란다. 이 여행의 프로그램을 구상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이며, 아무도 당신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여행을 준비하고 홀로 여행지에 도착하고 나면 당신은 자신의 간으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p49



숙소 근처에 있는 치앙마이 스타벅스에서 글을 썼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관점과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지, 나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며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혼자 있는 순간 밖에 없기 때문이다.


치앙마이에서 미리 여름을 만난다. 3주 동안 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천천히 생각해볼 예정이다. 식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배가 고플 때 언제든지 밥을 먹을 수 있고, 같은 곳을 두 번 간다고 불평할 사람도 없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여러 번 갈 수 있고, 수없이 먹을 수 있다.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내 마음에 더 귀를 기울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시간이다.


어쩌면 치앙마이에서 미리 만나는 건 여름이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고 있는 내 모습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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