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8 - 2018. 04.11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와서 가장 먼저 손이 뻗은 건 여행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여독을 푸느라 며칠 쉬어도 될 것 같은데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를 마주하고 있자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예전에는 여행 1일 차, 2일 차처럼 시간 순서로 여행 글을 썼다. 요즘은 모든 순간을 담지 않는다. 인상 깊었던 순간을 중심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거나, 느낀 것들을 나열하는 식이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와서 가장 먼저 썼던 글은 후자 형태로 느낀 점들을 나열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느낀 20가지 생각들'이었다.
느낀 것들을 풀어낸 글은 감사하게도 브런치 메인에 게시되었다. 고맙습니다. 브런치.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예정 시간보다 늦게 내렸다. 기차는 놓쳤고 버스까지 보내면 오래 기다려야 하거나 비싼 값을 치르고 택시를 타야 한다. 숙소부터 급하게 찾아 가느라 도착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공항 사진을 찍지 못했다. 내부에 들어가면 작은 공항이지만 밖에서 보는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인천공항만큼이나 멋지다.
2012년 8월에 개통된 금각교는 레닌스키 구(Ленинский район)와 페르보마이스키 구(Первомайский район)를 이어주는 세계 최장의 사장교다. 독수리 전망대가 있는 곳이 레닌스키 구에 속하고 다리를 건너가면 페르보마이스키 구가된다. 루스키 섬 또는 마린스키 극장에 발레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이 다리를 건너게 된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관광객인 우리가 주로 가게 되는 곳들은 러시아 인들에게 비싼 동네라 주로 다리 건너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으니 서울로 출근하는 경기도 시민들이 생각났다.
어딜 가도 똑같구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부분 마주한 표지판은 영어를 병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약 2시간가량 떨어져 있는 우수리스크에서 혹시나 길을 잃지 않을까 잔뜩 긴장했다. 다행히 기차역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하는 방향이 영어로 적혀 있어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는 서방에 대한 반감으로 영어를 잘 쓰지 않는다. 영어 뿐만 아니라 일본어에 중국어까지 병기를 하는 우리나라는 친절한 걸까?
우리나라 건물들은 겉과 안이 비슷한 경우가 많다. 오래된 건물이면 내부에 들어가도 오래된 느낌이다. 러시아에서 마주한 건물들은 꽤 오래됐음에도 내부에 들어가면 지속해서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지 근사하다.
공항만큼은 아니지만 기차역에 가면 언제나 설렌다.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 이제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사람들. 늦었는지 부리나케 뛰어가는 사람들, 사람들이 기차를 놓치지 않을까 주위를 살피는 역무원들.
한 발치 물러나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관객이 된 것처럼 일상 속에서 생생한 연극이 계속된다.
여행이 끝에 다다르니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혹시나 해서 챙겼던 우산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바람이 너무 거세서 우산을 쓴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러시아 사람들은 대부분 비가 와도 후드티만 뒤집어쓰고 가던 길을 간다.
우수리스크에서 최재형 선생의 생가를 찾았다. 한국 관광객들이 우수리스크에 오면 꼭 들른다고 하니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잘 아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길을 헤매신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자유여행으로 떠나온 관광객들은 우수리스크를 잘 가지 않는다. 보통 패키지여행으로 온 단체 관광객들이 대절한 버스를 타고 온다. 모를만하다.
방문했을 때는 아쉽게도 리모델링 중이었다.
최재형 선생의 생가에 방문하기 전에 고려인 문화센터를 갔다 왔는데 생가 리모델링을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었다. 거의 폐가 수준으로 오래된 듯한 건물이었는데 이제라도 보수를 하게 되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트 거리를 마주하면 끝에 바다가 보인다. 나도 모르게 바다로 끌려가다 보면 해양 공원이 나타난다. 아직은 추위가 덜 가셨는지 군데군데 바다가 얼어있다. 인천 월미도 공원과 느낌이 비슷하다.
배우 장동건이 출연한 2005년작 영화 <태풍>의 촬영지였던 혁명 광장. 처음 가게 되면 넓은 규모에 놀란다.
주말에는 넓은 광장에 시장이 선다고 한다. 아쉽게도 여행은 평일 일정이라 시장을 구경하지 못했다. 대신 비둘기만 질리도록 구경했다.
잠수함 박물관은 겉으로만 봐도 나쁘지 않다고 해서 내부를 구경할까 고민하면서 네이버 블로그와 구글 지도 리뷰를 찾아봤다. 그러다 어떤 리뷰를 보고 내부를 구경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극찬했던 리뷰보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딱히 볼게 많지 않으므로 무방하다는 글이 내 마음을 흔든다. 구경하고 나서 느낀 내 생각도 결정에 도움을 준 리뷰와 다르지 않았다.
볼 게 없지만 언제 잠수함에 들어가 보겠는가?
혼자 여행을 다니면 맛있는 음식을 여러 개 시키지 못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때마다 시원한 맥주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극장에서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 왔다. 그래서일까? 유독 할아버지 두 분의 사이가 좋아보인다.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 이제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 일상으로 복귀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 뒷 모습이 그렇게 비칠까?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이라는 말이 있다. 그들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3박 4일간 떠난 블라디보스토크 여행기는 이 글로 마칩니다. 4월 23일에는 방콕을 거쳐 치앙마이로 18박 19일 일정으로 떠납니다. 태국 사람들의 일상과 마주할 시간들이 넉넉한 만큼 그 곳에서는 어떤 생각과 순간들을 제 안에 담아올지 벌써부터 설렙니다. 퇴사 후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서울에 잠시 내려놓고 설렘만 가득 안은 채로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