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치앙마이 4일 차
치앙마이 나흘째, 그냥 목적지 없이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처음 해외로 떠난 칭다오부터 최근 다녀온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항상 핸드폰을 들고 다음 목적지를 찾아가기 바빴다.
(여행을 일처럼 하는 건지..)
새벽 늦게까지 놀아도 일정을 지키기 위해 아침 일찍 분주하게 챙기고 (어디나 그렇지만 한국인이 많은) 인기 관광지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늘 자랑용이었다. SNS에 올리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다녀온 곳에 호기심을 가지면 클라우드에 보관된 사진을 보면서 가이드가 된 것 마냥 열심히 설명했다.
지금도 여행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를 가야 할지, 어떤 곳이 좋은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미 다녀온 사람의 후기는 소중한 정보였다. (정보가 별로 없는 블라디보스토크는 오죽하면 가장 좋은 여행 책이 네이버 블로그라고 한다.)
여행에 대한 기록을 예전에는 바인더에 차곡차곡 적었는데 이제는 Workflowy가 대신하고 있다. 물론 숙소에 와서 다시 한번 바인더에 정리한다. 어딜 다녀왔는지, 가격은 얼마였는지, 감정은 어땠는지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적는다.
일주일 미만의 여행을 떠났을 땐 속옷, 양말만 손빨래하고 겉옷은 여분을 충분히 챙겼다. 그래서 따로 빨래 돌릴 일이 없었다. (대만이나 일본은 세탁 비용이 비싼 것도 한 몫했다.) 지금은 옷도 몇 벌 안 챙겨 왔고 긴 시간 머물다 보니 빨래를 돌려야 한다.
숙소 근처에 있는 세탁소에 맡기기에는 빨랫감이 적어서 숙소에 비치된 코인 세탁기를 이용했다. 세탁기 앞에서 헤매고 있는데 숙소 아주머니가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연이어 타이머가 표시되는 디스플레이를 가리키면서 1시간 정도 뒤에 세탁이 완료될 거라고 한다.
밤늦게 치앙마이에 도착해서 숙소 앞에서 헤매고 있을 때도 근처에 계셨던 아저씨 한 분이 구글 지도를 같이 보면서 숙소를 찾아주셨다. 그리고 대만 지우펀에서도 지나가던 할아버지 두 분께서 길을 헤매고 있는 우리를 보며 "May I Help You?"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다. ( 당시에 직접 숙소에 전화를 걸어 담당자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서 데려갔다.)
어쨌든 다시 빨래 얘기로 돌아와서, 빨래가 다 되고 숙소에 널기 위해 들고 가는데 아주머니가 아들로 보이는 꼬맹이한테 뭐라고 얘기한다. 이어서 꼬맹이가 날 따라오더니 어디로 방향을 가리킨다. 알고 보니 건조대가 있는 위치였다. 꼬맹이한테 '컵쿤캅'이라고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시하니 씩 웃으면서 다시 엄마 품으로 돌아간다.
저녁 먹으러 나가는 길에 아주머니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러시아에서 사 온 초콜릿을 건네니 아들을 불러 (나를 가리키며 저 아저씨가 초콜릿 줬다면서) 엄청 좋아하신다.
숙소 근처 백화점(Central Kad Suan Kaew)을 구경하다가 뜬금없이 어벤저스 포스터를 발견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생각하다가 주위를 둘러보니 극장이었다.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그래 한 번 보자!
수요일이라 90바트인줄 알았는데 신작은 요일 상관없이 110바트. 그래도 한국보다 싸다.
팝콘 40바트, 콜라 25바트. 합쳐도 2,500원이 안 된다. 영화랑 팝콘, 콜라를 합쳐도 우리나라 조조보다 싸다.
영어로 나오는 게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모르겠지만 맨 뒤에 앉아서 재밌게 관람했다. 남들이 터질 때 난 속이 터졌지만 어차피 한국 가서 다시 한번 볼 것이고 개봉날 봤다는데 의의를 둔다. 그리고 언제 태국에서 영화를 보겠어.
어제 영화를 본 이 백화점에 오늘 또 왔다. 마트에 들러서 술, 먹을 것좀 사려고 왔는데 목요일부터 야시장이 열리는 거 아니겠는가. 한 바퀴 빠르게 둘러보고 일단 술 좀 사려고 마트에 가는데 길거리 마사지가 영업하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200바트 넘으면 안 받으려고 했는데 150바트라 1시간 동안 시원하게 발마사지 받았다. 마사지하는 아주머니가 힘이 없으시고 건성으로 하시는데 이상하게 시원하다. 내일 또 가야겠다.
마사지받고, 술이랑 야식과 코코넛을 하나 들고 숙소로 복귀하는 길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