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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04. 2018

좋은 여행지를 고르는 방법

치앙마이 12일 차, 도이수텝을 다녀오다.

좋은 여행지를 고르는 방법


좋은 여행지를 고르는 방법


책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는 좋은 여행지를 고르는 방법을 소개한다. 여행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지, 타인이 주도권을 갖고 따라다니길 원하는지 등 여러 유형에 따라 여행 스타일을 나눈다. 필자는 패키지여행을 싫어하고 액티비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액티비티를 제외하면 능동적 여행에 가깝고 내적 기준형도 내 여행 스타일에 맞다. 그러나 지금 있는 치앙마이 여행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건  '속도가 빠른 대도시보다 천천히 반응해도 문제없는 여유로운 소도시 여행을 선호'하는 수동적 여행이다.


연휴를 틈타 前 회사 동료가 치앙마이에 왔다. 방콕에 며칠 있다 오는 길이었는데 아직 방콕을 가보지 않아 궁금해서 치앙마이와 어떻게 다른지 물어봤다.

방콕은 서울과 비슷하게 빌딩도 많고 전철도 많다. 걷는 사람들 속도도 빨라서 나도 덩달아 빨라진다. 자꾸 어디를 가야만 할 것 같은 도시다. 반면 치앙마이에서는 빨리 걷는 사람도 없고 어딜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없어서 그냥 카페에 앉아만 있어도 좋다.


예전 같았다면 긴 여행 일정 동안 빠이도 다녀오고, 치앙라이도 여행 일정에 포함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도장깨기식 여행은 질렸다. 여행 중에 치앙마이도 다녀왔고, 빠이도 다녀왔고, 치앙라이도 다녀왔는지보다 쉬고 싶을 땐 쉬고, 글 쓰고 싶을 땐 쓰고, 맛있는 걸 먹고 싶으면 맛집에 가는 여행이 더 내게 잘 맞다.

쉬는 것, 글 쓰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한국에서도 할 수 있잖아?


분당으로 돌아가면 사람들 틈에서 나도 덩달아 빨라진다. 느리게 걷다보면 조급함을 느낄 것이고 자꾸 뭔가를 더해야 할 것만 같은 조바심도 찾아올 것이다.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일상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이태원에 가면 팟타이를 맛있게 하는 집도 있고, 타이 마사지를 시원하게 하는 마사지 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도 쉬지 못할 때가 많다. 오늘은 내일과 연결되어 있고, 오늘을 놓으면 내일이 조금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면 여행지에서는 끝이 분명하기에 무모한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다. 무모한 생각이라고 해서 꼭 크고 대담한 것만 있는 게 아니다. 그저 하루 종일 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귀국을 앞두고 있다면 여행지에서 보내는 오늘 하루가 정말 귀하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려고 한다. 


간혹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숙소에서 그냥 누워있거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거나. 같이 여행 온 사람이 지금 구경 안 하고 쉬면 한국 가서 후회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며칠 뒤 여행지에서 찍었던 사진을 되돌아보면 잠시 후회할 수도 있지만 시간이 흘러 여행을 떠올리면 본인이 선택해서 쉬었던 그 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관광지를 구경하는 것은 책에서, 블로그에서, 남들에 의해서 그곳에 들르면 꼭 구경해야 한다는 강박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쉰다는 건 온전히 내 욕구다.


강박에 의한 관광보다 욕구에 의한 쉼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도이수텝  사원

 

썽태우를 타고 이동하고 또 이동 (약 40분 소요)

치앙마이 야경을 보기 위해 마야 쇼핑몰에서 다섯 시에 도이수텝으로 향했다. 마야 쇼핑몰에서 치앙마이대학까지 썽태우를 타고 이동하고, 다시 한번 도이수텝 사원으로 가는 썽태우로 갈아탔다. 


썽태우 타고 도이수텝 올라가는 길.


늦은 시간이라 관광객들이 없어 10분 정도 기다리다가 아저씨와 흥정을 하고 2명 450밧에 왕복으로 다녀왔다. 길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어 차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속이 쓰리다.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시는 분들도 종종 보인다. 차를 타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그분들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내려가는 계단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저씨와 1시간 뒤에 보자는 약속을 하고 도이수텝 사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보는 순간 '와...' 사진만 봐도 숨이 막힌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사람들은 내려오고 있고 우리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간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올라왔다. 우측 매표소에서 30밧을 내고 티켓을 구입했다. 내국인은 무료. 외국인은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권에는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적혀 있다. 


 

노을이 지는 시간


신발을 벗고 사원 안으로 들어와서 하늘을 보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간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다. 거칠게 내쉬었던 숨은 어느새 진정되었고 이 순간이 평화롭기만 하다.


황금빛 불탑과 파란 하늘


 밤이 깊어지면서 곳곳에 불이 들어온다. 그제야 원래의 빛을 뽐내기라도 하듯 불탑이 황금빛을 자아낸다. 반면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밝아지는 불탑과 어두워지는 하늘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시간이다.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 참 잘 나온다. 하지만 컴퓨터로 보면 하이엔드 카메라의 사진이 더 빛난다. 어찌 됐든 가끔은 이런 구도의 사진이 더 멋있을 때가 있다.



사원을 구경하고 치앙마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으로 전망대로 이동했다. 야경을 멋지게 담아내고 싶은데 원하는 사진이 안 나온다. 아쉽지만 시간이 다 되어 썽태우를 타고 내려오는 길에 기사님이 갑자기 차를 멈추고 어디를 가리킨다. 시내 야경이 잘 보이는 작은 전망대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시내 야경을 구경하고 있다. 그들의 틈에 들어가지 않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시내 야경과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렌즈에 담았다. 다시 내려가는 길에 찍은 사진을 살펴보는데 흔들렸던 사진이 더 맛깔나게 찍혔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소보다 한적한 골목길을 누비는 것을 좋아한다. 돈을 펑펑 써도 여행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가 있다. 오히려 돈 한 푼 들지 않는 배려와 호의가 가득한 여행이 더 즐거울 때가 있다. 많은 것을 보는 여행보다 많은 것을 느끼는 여행이 더 좋다. 여행을 다닐수록 나에게만 유효한 '좋은 여행지를 고르는 매뉴얼'이 차곡차곡 만들어진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을 때도 여행을 떠나보고, 돈이 많아도 가난한 여행을 다녀와보자. 본인의 생각과 정반대로 움직이며 지난 수십 년간 규정된 생각을 깨트려보자. 깨지는 순간 당신에게 그곳은 좋은 여행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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