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요조
책을 한 권 들고 집에 닿기 위해 지하철을 갈아타고 있었다. 이십 걸음 정도 앞서가는 사람이 뛰어가는 걸 보니 열차가 역에 들어왔나 보다. 만약 책이 가방에 있었더라면 그들을 따라 부랴부랴 뛰었겠지만 책을 한 권 손에 쥐고 있으니 책 읽으면서 기다리지 뭐, 라며 느긋한 사람이 되었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탈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빨리 가지 않는 쪽을 선택했지만 운이 좋게도 열차는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으면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걸까? 내심 궁금할 때가 있다. 내릴 때 책 표지를 흘깃 살펴보곤 하는데 운이 좋으면 제목을 건진다. 그런 날이면 내용을 살펴보고 괜찮다 싶으면 꽤 높은 확률로 구입까지 이어진다. 인생은 꼭 그런 식이다. 지극히 가까운 누군가가 추천해도 무수히 많은 책이 선택받지 못하는데, 어쩌다 같이 지하철을 타게 되어 내 시선 안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깊은 신뢰감을 느끼는 것이다.
작년 말, 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을 출간한 요조의 강연을 듣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대학생 때 그녀의 노래를 자주 들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레 플레이리스트에는 사라져 있었다. 한동안 소식이 닿지 않다가, 북바이북에서 마침 강연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 냉큼 신청을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전부였던 그녀는 나에게 닿지 않은 시간동안 어느새 '책방 무사 주인장', '작가'라는 타이틀도 함께 붙어있었다. 곧 본인이 제작한 영화까지 개봉한다고 하니 '영화감독'까지 하나 더 붙는 셈이다. 아직은 신수진 대표라는 호칭이 낯설지만 싫지만은 않은 눈치였다. 좋아했던 가수가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외연을 확장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작가 이전에 책방 무사 주인장이었던 그녀는 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보다 자신의 책방에 대한 이야기를 이 날 강연에서 주로 들려주었다. 어느덧 서점을 운영한 지 4년 차가 되었는데 서울 북촌에서 처음 서점을 열고, 제주도로 내려간 이유도 때론 느리고 때론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보통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두려움부터 나타나기 마련이지만 가끔 어떤 일들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쉽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요조가 처음 출판사로부터 독서 일기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근거 없는데는 모두 이유가 있다. 이 책을 쓰는 6개월 동안 '지옥'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정말 괴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지옥을 경험하니 어느새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는 좋은 버릇이 남았다고 했다.
아마 지옥을 경험하지 않았으면 이 버릇 또한 남아있지 않겠지
노래를 만드는 가수와 글을 쓰는 작가를 보면 도대체 이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고 때론 경이롭기까지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그나마 그들의 느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프로 요리사라면 나는 그럭저럭 입에 넣을만한 초보 요리사가 된 셈이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음식을 평가하고 소비하던 사람에서 만드는 사람으로 서있는 곳이 바뀌게 되니 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의 제목처럼 일상을 마주할 때 모든 감각이 열린 채로 세상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마치 영화 <패터슨>에서 패터슨이 일상을 주제로 시를 쓰는 것처럼.
요조는 제주에 내려가기 전부터 이 책을 알았고, 제주에 가면 이 책의 사진처럼 멋진 자연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다고 한다. 책 속 제주의 멋진 풍경처럼 제주의 일상을 카메라로 열심히 담고 싶었지만 제대로 옮겨오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제주에 내려와 금방 깨달았다고 한다.
그 일을 위해서 어떤 사진가는 자기 인생을 다 써버리고 아파 죽었다.
어떻게 자기 인생을 하나에 다 쓰지
누군가는 책 한 권때문에 제주도에 내려간 거야?라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김영갑 사진작가는 자기 인생을 책 한 권에 다 썼다. (낭독해주는 모습을 온전히 귀로 듣고 싶었지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약 한 시간 가량의 강연이 끝나고 요조의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렸다. 북바이북 관계자는 '이름'을 적어주시면 좀 더 빨리 사인을 받을 수 있다고 찢어진 종이의 한 모퉁이를 나눠주었다. 이름을 적은 채로 기다리다가 리뷰집을 책으로 낸 요조에게 이 책의 리뷰는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줄을 서고 있는 내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브런치 주소가 적힌 명함을 건넬까 고민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용기내어 브런치에 책 리뷰를 쓸테니 언젠가 한 번 읽어보시라고 주소가 적힌 명함을 건네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했다.
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은 요조가 2017년 1월부터 12월까지 손이 가는 대로 책을 읽고 남긴 생각들을 엮은 '독서 일기'다. 특히 2017년 4월 2일에 읽었던 책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 산책 2>의 리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책 1 권에 리뷰 1페이지. 오히려 이렇게 정해지지 않아서 좋았다. 좋았던 책은 리뷰가 길고, 별로였던 책은 리뷰가 짧은 식이었다면 읽는 도중에 예측이 되어 약간 김이 빠질 수도 있는데, 이 책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어떤 책들은 사랑이 넘쳐 2~3페이지를 할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이 책을 읽고 작가의 책을 모두 샀다'라는 한 문장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리고 항상 책을 읽고 생각을 남기는 것에 부담감이 있어 독서 리뷰는 가끔씩 남기는 편인데 이 책을 보고 굳이 길게 남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상하다. 보통 이렇게 책을 소개해주면 읽고 싶기 마련인데, 요조처럼 '누가 정해준 책이 아닌 그 날 그날 마음이 가는 책을 읽어 리뷰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찾아왔다.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도 좋지만, 이렇게 가끔 내가 적용해볼 수 있는 아이디어를 주는 책도 좋다.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성실의 고통에 괴로웠다는 이 책을 쓴 요조의 에필로그처럼 당분간 성실의 고통을 느껴봐야지.
리뷰를 다 쓰고 나니 문득 예전에 블로그(티스토리)에서 요조 음반 리뷰를 썼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다. 벌써 4년 전이네. 지금 들어도 참 좋은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