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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29. 2017

평범한 일상이 예술이 되다.

영화 <패터슨>, 짐 자무쉬 감독

세상 물정 몰랐던 어린 시절, 직장인이 되면 돈 많이 벌어서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자기계발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꿈을 꾼 적이 있다. 막상 직장인이 되자 그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 일상의 대부분은 회사에 팔려나갔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다시 잊혀진 꿈을 상기시키며 무너진 일상을 세우기에는 할 수 없는 이유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그런 이유들이 켜켜이 쌓일수록 일상에서 내 꿈은 더 이상 숨 쉴 공간이 없었다.


  


뉴저지주 패터슨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의 직업은 버스 기사다. 그의 일상은 매일 비슷하게 반복된다. 매일 아침 6시 15분쯤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출근 버스를 운행하며 목적지까지 승객들을 태워다 준다. 퇴근 후에는 아내가 차려준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개를 산책시키고 중간에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 짓는다.  



그는 취미로 시를 쓴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그는 시를 통해 숨을 쉰다. (반복되고 지루하다는 것도 가만 보면 관찰자 입장에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모르겠다.)


영화는 월요일부터 시작해서 다시 월요일에 끝이 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그의 일상이 자세히 보면 매번 다르다. 마치 쌍둥이처럼 말이다. 처음 쌍둥이를 보면 '와! 진짜 똑같다'라는 반응을 보이다가도 그들과 친해지고 가까워지면 금세 다른 두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가 일어났을 때의 자세라던가, 버스 안 승객들의 대화처럼.



영화에서 비친 그는 주변 사람들의 대화에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좋은 청중의 모습이다.


필자는 브런치를 통해 글을 쓰면서 변한 게 하나 있다.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길을 걷다가도 문득 좋은 글감이 생각나면 이거 나중에 브런치에 써야겠다면서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이 생겼다. 이런 습관의 근간에는 좋은 청중이어야 된다는 법칙이 성립해야 한다. 꼭 타인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책을 읽을 때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 문득 드는 생각들까지 일단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되어야 나중에 어떤 것을 글로 써야 할지 선택지에서 쉽게 고를 수가 있다. 그전까지는 나에게 필요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면서 들으려고, 보려고 하지도 않아 흘러 보낸 순간이 너무나 많았다. 이런 변화를 겪은  보게 패터슨의 모습누구보다 강렬하게 이해할 있었다.



여기서 잠깐 짐 자무쉬 감독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는 콜롬비아 대학교 영문과 출신이다. 지금은 미국 독립 영화계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그는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 아니었다. 시인이 되려고 하다가 교환학생 자격으로 프랑스 파리에 있으면서 영화에 눈을 뜨게 되어 1년간 영화만 봤다고 한다. 그 후 뉴욕으로 다시 돌아와 뉴욕 대학교 영화과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면서 지금의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는 여태까지 연출한 작품에서는 시에 대한 관심을 영화 작품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영화 <패터슨>을 통해 그가 처음에 꿈꾸었던 시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영화는 중간중간 패터슨이 쓴 시를 보여준다. 영화가 엔딩에 가까워지면서는  The Line이라는 시 한 편이 소개된다.



The Line


There’s an old song
my grandfather used to sing
that has the question,
“Or would you rather be a fish?”
In the same song
is the same question
but with a mule and a pig,
but the one I hear sometimes
in my head is the fish one.
Just that one line.
Would you rather be a fish?
As if the rest of the song
didn’t have to be there.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시에서 노새(mule)와 돼지(pig)도 있지만, 마치 그 노래의 나머지 부분은 거기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물고기(fish) 한 구절만 머릿속에 남는다는 문장이 인상 깊다. 누군가는 노새를 기억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돼지 또는 전혀 다른 것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떤 것으로 기억되는 것은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특별함을 부여하면 우리의 일상은 달라진다.



극 중 사람들이 묻는다.


패터슨 씨 당신은 시인인가요?


그의 대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의 일상은 시 그 자체고, 시는 그의 일상이니까.




평범한 일상에서 아직 의미를 찾지 못했다면 영화 <패터슨>을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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