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무비패스 #1. 영화 <케이크 메이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단순하게 케이크 만드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 관람*했을 땐 막장 드라마라 생각했고 두 번째 관람**을 하고 나서야 감독이 던지는 메시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 @CGV압구정
** 키노라이츠 스페셜 시네마톡 시사회 @CGV명동 씨네 라이브러리
※ 이 영화는 브런치 무비패스와 키노라이츠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영화입니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얘기했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는 가까이서 보면 불륜이요. 멀리서 보면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가득합니다. 원치 않으신 분들은 영화를 보고 읽어주세요.
우리는 언제 케이크를 먹을까? 평범한 일상에서도 종종 먹지만 특별히 찾는 날들이 있다. 케이크에 나이만큼 촛불을 밝혀 생일을 축하하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때는 가족, 연인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이뿐이랴 서로의 기념일을 챙길 때도 케이크는 어김없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별한 날이든, 평범한 날이든 우리에게 케이크는 항상 기분 좋게 해주는 음식이다. 어렸을 때부터 접한 케이크 맛은 충분히 잘 알고 있지만 매번 먹을 때마다 그 달콤한 맛이 궁금하다. 그리고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달콤한 맛에 빠져 쉽사리 포크를 놓지 못한다.
여기 케이크로 연결된 두 사람이 있다. 오렌(로이 밀러)과 크레덴츠 카페 파티쉐 토마스(팀 칼 코프)다. 이스라엘-독일 합작회사를 다니고 있는 오렌은 베를린으로 출장을 오면 크레덴츠 카페에 들러 아내가 좋아하는 시나몬 쿠키를 구입하고 토마스가 추천하는 케이크를 맛본다. 둘은 얼마 가지 않아 달콤한 케이크처럼 금세 사랑에 빠진다. 참 위험한 사랑이다. 오렌은 예루살렘에 자신의 아내와 아들이 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코셔와 샤밧을 알아야 한다. 이슬람의 '할랄'처럼 유대교에는 코셔가 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할랄처럼 코셔 또한 금기시하는 것이 참 많다. 샤밧은 보통 금요일 오후부터 토요일 오후까지의 시간을 일컫는 안식일을 뜻한다. 그때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오렌은 가족이 있는 이스라엘과 토마스가 있는 베를린을 오고 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렌의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오래가지 못한다. 그 소식을 알리 없던 토마스는 그가 오지 않아 계속 전화를 걸고 혹여 무슨 일이 있을까 불안한 시간을 보낸다. 결국 그가 일하고 있던 베를린 소재의 회사를 찾아가 비보를 듣고 그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향하게 된다.
이스라엘에는 오렌의 아내 아나트(사라 애들러)가 있다. 남편을 사별하고 아들 이타이를 챙기느라 잠시 닫았던 카페를 열게 된다.
오렌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온 토마스는 그녀를 찾아 주변을 계속 맴돈다. 일할 사람이 필요했던 아나트는 결국 토마스를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게 된다.
아나트의 카페는 코셔 인증을 받은 카페다. 즉 유대교의 율법으로 정해진 재료로 만든 음식만 팔고 있다. 이 카페에서 독일인 토마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게 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두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홀로코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의 독일 나치 정권이 일삼은 학살극이다. 이러한 홀로코스트의 주된 피해자는 유대인이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일본을 싫어하는 것처럼 유대인 또한 아픈 역사를 안겨준 독일인을 볼 때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타이의 삼촌 모티(조허 슈트라우스)는 독일인 토마스를 처음부터 경계한다. 전화 2 통이면 카페 아르바이트생 10명이 달려올 텐데 굳이 독일인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하냐고 아나트에게 핀잔을 준다. 뿐만 아니라 이타이 생일 선물로 줄 쿠키를 만들어 선보인 토마스에게 유대인이 아닌 사람이 오븐을 사용하는 것은 코셔에 어긋난다며 그를 타박한다.
토마스는 오렌의 흔적이자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샤밧'과 '코셔'의 문화권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지만 쉽사리 허용되지 않는다.
그때 유일하게 손을 뻗어준 건 오렌의 부인 아나트였다. 그가 만든 쿠키를 맛보고 코셔 인증을 받은 카페에서 코셔 음식을 팔지 않으면 인증서를 박탈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카페에서 팔자고 흔쾌히 제안하고 점점 그 종류와 양을 늘려간다. 그리고 토마스는 케이크나 쿠키 종류를 잘 만들지 못하는 아나트에게 하나하나씩 알려준다.
샤밧이 울려 퍼지는 금요일 늦은 오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기도를 하고 샤밧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토마스는 항상 홀로 식사를 했다. 아나트는 그런 토마스가 딱했는지 우리 집에 와서 아들 이타이와 함께 샤밧 음식을 먹자고 초대한다. 그리고 토마스는 자신이 만들어온 케이크도 가져와 함께 나눠 먹는다.
오렌은 출장 갈 때마다 토마스의 가게에 들러 아내를 위해 시나몬 쿠키를 샀다. 즉, 토마스가 만든 쿠키와 케이크는 아나트 입맛에 맞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들 이타이는 입에 대지 않는다.
모티 삼촌이 토마스가 만든 음식은 먹지 말랬어요
아나트는 케이크가 담긴 접시까지 핥아먹을 정도로 토마스가 만든 케이크를 맛있게 먹지만, 그 외 사람들은 입에 대지 않는다. 오죽하면 아들 이타이도 엄마가 먹어도 된다고 말해도 깨작깨작 케이크 겉만 조금씩 먹는다.
독일의 전통적인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는 크리스마스 때 즐겨 먹는 케이크다.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날이다. 크리스마스는 이제 종교 상관없이 전 세계 누구나 즐기는 축제가 됐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에게 관련이 많다.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는 영화에서 갈등과 차이를 녹이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 오렌이 크레덴츠 카페에 들렀을 때 먹고 감탄했던 케이크였고, 토마스가 아나트 집에 초대받았을 때 들고 간 케이크도 이 케이크였다. (이때 아나타는 너무 맛있는 나머지 케이크가 담긴 접시까지 핥아먹는다.)
역사적으로 갈등이 있고,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독일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오렌, 아나트는 토마스가 만든 달콤한 케이크 한 스푼으로 두 나라의 갈등과 차이는 눈 녹듯이 사라진다.
케이크는 토마스와 오렌을 연결해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오렌은 케이크 때문에 베를린에 출장을 오면 토마스 가게에 들렀다. 반면 쿠키는 토마스와 아나트를 연결해준다. 오렌은 본인은 케이크를 먹기 위해 왔지만, 항상 아내를 위해 토마스 가게의 시나몬 쿠키를 사 갔다. 그리고 토마스는 아나트의 카페 파몬에서 가장 처음 만든 건 쿠키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나트가 베를린으로 가기 전 나왔던 장면도 토마스가 만들었던 쿠키가 담긴 병이 거의 비어 있는 모습을 비춘다.
오렌은 그의 어머니의 말처럼 5개 국어에 능통하다. 그래서 애초에 전통과 역사를 강조하는 이스라엘에 살기 적합한 인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아나트에게 떠나겠다고 한다. 그는 예루살렘에 직장, 친구, 가족까지 모두 다 갖춘 완벽한 상황에서도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그곳을 떠나 사랑을 찾아 자유가 있는 베를린행을 선택하자마자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
토마스는 어린 시절 베를린 외곽에서 할머니와 함께 자랐다. 2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깊은 상실감과 외로움에 빠져 지낸 인물이다. 이때 그에게 오렌이 등장했고 한줄기 빛이었다. 그가 소멸되자 다시 찾아온 상실감과 외로움에 그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로 향했다. 처음에는 오렌의 흔적을 찾아왔지만 점차 그 샤밧과 코셔가 있는 문화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오렌의 어머니가 챙겨주는 샤밧 음식을 맛있게 먹고, 직접 만들어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아나트의 집에 초대받아 샤밧 음식을 먹고 집에 와서 샤밧 모자를 쓰고 거울을 응시한다. 그렇지만 끝내 샤밧과 코셔가 있는 문화에 거부당해 다시 베를린으로 떠나게 된다.
아나트는 샤밧과 코셔를 중시하지만 강제하지 않는다. 코셔 인증을 받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지만 집에서 아들 이타이에게는 코셔가 아닌 음식도 먹이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카페 파몬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독일인 토마스를 선택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관점에서도 전통의 관습에도 반하는 것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코셔 자격을 박탈 당하고도 우리 카페 음식이 이스라엘에서 제일 맛있다며, 코셔 인증은 없지만 코셔 음식은 팔고 있으니 구매는 손님이 결정하라고 선택을 건네준다. 이스라엘에서는 코셔를 '선택'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이 따른다. 즉 선택하지 않을 자유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성애를 금기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오렌은 떠났다. 아나트는 코셔를 존중하지만 애써 선택하지 않는다. 그에 따른 불이익도 감수하면서 살아간다.
이 영화는 가까이서 보면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인 불륜 드라마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멀리서 보면 독일과 이스라엘 두 국가의 역사적 관계가 있고, 문화의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층마다 겹겹이 다른 재료를 쓴 케이크처럼 영화에 비치는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도 참 복잡하다. 결국 케이크를 한 스푼 떠먹어봐야 그 맛이 달콤한지 알 수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극 중 케이커 메이커는 토마스를 뜻한다. 그는 달콤한 케이크와 쿠키를 통해 많은 변화를 꿈꿨다. 케이크를 통해 오렌과 사랑에 빠지고, 쿠키를 통해 아나트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결국 토마스가 맞이한 두 사랑의 끝은 달콤하지 못했다. 오렌 또한 달콤한 케이크를 먹기 위해 베를린으로 떠났지만 끝이 달콤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의 초반부에는 두 남성, 즉 오렌과 토마스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끝은 한 여성 아나트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그래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가장 먼저 사라 애들러(Sarah Adler)가 등장한다. 결국 달콤한 케이크를 맛 본건 아나트가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예산 문제로 극히 제한된 장소에서 촬영됐다. 대부분의 영화 장면은 베를린 크레덴츠 카페와 이스라엘 카페 파몬에서 다뤄진다. 극히 저예산으로도 공간을 제한하여 많은 장면을 담아냈다. 예산 문제로 8년 만에 겨우 개봉했다고 하니 감독의 노고에 경의를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