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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n 05. 2018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야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7), 자비에 르그랑



내 앞에 놓여있는 고통도 감당하기 버거운 시대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는 공감하는 척하면서 무관심하다. 무관심은 스크린에서도 이어진다. 영화는 법정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과 이혼한 미리엄(레아 드루케)은 아들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에 대한 단독 친권을 갖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폭력적인 남편의 악(惡)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아내의 선(善)은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인정받지 못한다. 애초에 법원이라는 곳은 확실한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그때 비로소 선 또는 악이라는 이름을 덧붙이니까.




초반부에는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아빠 앙투안(드니 메노셰)의 선한 의도가 그려진다. 그러나 아들 줄리앙은 항상 겁에 질려있고, 항상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않고 '그 사람'이라고 칭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이들 관계에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영화에서는 그 숨겨진 사실을 쉽게 풀어내지 않는다. 확실치 않은 두 갈래 사이에 균형을 던 관객들은 시간이 갈수록 줄리앙의 어두워져가는 표정에서 추측되는 진실을 통해 점차 균형을 잃어간다. 그러나 여전히 확실한 것이 보여야만 판단하려는 이성이 그 균형을 맞춘다. 영화에서는 유독 암전 효과를 많이 이용하는데 이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답답함을 증폭시킨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야


실체는 결국 영화 후반부에 드러난다. 이때 비로소 관객들은 본인의 판단이 틀렸음을 알아차린다. 항상 중립적이고 균형을 지키려고 했던 모습은 무관심의 또 다른 표현이었던 것이다. 막상 실체가 드러나서야 줄리앙의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눈에 보여야만 믿으려고 했던 모습이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에 집중한 나머지 진실을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진실이 느껴지는 순간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우리에게 무겁고 아주 불편한 시선을 넘겨준다. 



평점 ★★★★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관람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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