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밤늦게 집에 오면 문 앞에 자리 잡고 있던 택배가 퇴사를 하니 이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회사를 다닐 때 일찍 잠들면 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항상 누워있는 상태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의미 없는 행위를 늘려갔다. 오늘 찍었던 사진을 보고, 친구들에게 카톡으로 괜히 궁금하지 않은 질문을 날린다. 하루에 수십 번 접속했던 SNS에도 다시 들어가 보고, 새로운 메일이 오진 않았는지 받은 편지함도 확인해본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들을 늘려가면서 최대한 잠을 미룬다. 지금 잠들지 않으면 내일 피곤할 게 분명한데도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참는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 듯이 적당한 선이 되면 타협하고 잠든다. 아직 잠이 가시지 않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근길에 꾸벅꾸벅 졸면서 일찍 잠들지 않았음을 후회한다.
참고, 후회하고, 견디는 것의 종착역에는 돈이 있다. 사람들은 무한정 쓸 돈이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둔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고 싶은 것을 사면서 노동을 통해 오는 스트레스를 씻어낸다. 회사에서는 이윤을 창출하는 하나의 객체에 불과했지만 소비할 때는 철저한 주체가 된다. 그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 찰나의 감정은 쉽게 잊지 못한다. 그 잠깐의 순간은 대부분의 시간을 참고 견디게 만든다.
견디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돈 이외의 가치는 천천히 소멸된다. 이때 돈이 가지는 상대적 무게는 소멸되는 다른 가치들의 영역을 흡수해 외연을 확장한다. 항상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택배는 주체가 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소비 활동 이외에서는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주체가 될 수 없었으니 가장 나약한 방법으로 주체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할 것 같지만, 결국 행복함을 느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초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 이외의 가치로도 주체의 삶을 살아간다. 돈은 수단에 머물 때 가장 빛이 나는 법이다. 목적이 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제외하고 주체의 삶을 살아갈 수 없다. 결국 노예가 되는 것이다. 돈, 그것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보자.
이번 글은 바스락 모임 내 글쓰기 소모임의 마지막 10주차 주제였습니다. 아마 같이 쓰지 않았다면 글은 차곡차곡 쌓이지 않았겠지요. 같이 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는 10주였습니다.
같은 주제로 글을 썼지만 각자 내용은 달랐습니다.
서로의 글을 읽고 느끼는 감정 또한 달랐습니다.
달랐기에 오히려 더 긴 시간동안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