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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l 23. 2018

이 복수극의 승자는 누구인가

영화 <킬링 디어>, 요르고스 란티모스

처음 볼 때는 굉장히 불편하면서 불쾌했고, 두 번째 관람할 때는 불편함을 즐긴 영화였다.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은 크게 나누면 두 분류다.


1. 일하는데도 머리가 아픈데, 영화 보면서까지 머리를 써야 돼?

2. 그냥 보여주는 영화는 재미없어. 생각할 거리가 있어야 영화지.


만약 당신이 첫 번째 유형이라면 이 영화를 거르는 것을 추천한다. 아마 모른 채 관람했으면 내가 느낀 불편함이나 불쾌함보다 더 크게 느꼈을 것이고, 심하면 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두 번째 유형이라면 이 영화는 꼭 봐야 한다. 보통의 영화보다 숨은 메시지가 많고 생각할 요소도 많다. 안 볼 이유가 없다.




신성한 사슴의 살해


영화 <킬링 디어>의 원제는 The Kiling of a Scared Deer다. 직역하자면 신성한 사슴의 살해가 되겠다. 영화 속에서 사슴은 등장하지 않는데, 왜 제목에 사슴 이야기가 나오나 싶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아가멤논과 그의 딸 이피게니아에 대한 내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가멤논은 그리스 군의 사령관이었다. 그리스 군이 트로이로 출항하기 전 아르테미스의 신성한 숲에서 수사슴을 죽이는 실수를 저지른다. 사실 사슴만 죽이면 별 문제가 안 됐을 수도 있지만 그다음 이어진 망언이 문제였다.


아르테미스가 사냥해도 이렇게까지는 못 쏠걸


이 말을 듣고 분노한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군에 전염병을 퍼뜨리고, 배를 출항하지 못하게 바람을 안 불게 만든다. 예전 배들은 동력 없이 바람으로만 움직이다 보니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에 아가멤논은 딸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에게 제물로 바쳐야만 이 분노를 풀 수 있다는 예언을 믿고,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신성한 사슴을 살해'한 원인으로 시작된 불행인 것이다.



스티븐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스티븐은 심장전문의다. 그리고 마틴의 아빠는 스티븐의 환자였다. 영화 초반부터 둘의 관계는 의사와 환자 아들 그 이상으로 친밀하게 다가온다. (동성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화 <킬링 디어> 오프닝 장면은 징그럽다. 처음 20~30초 동안 음악만 나오고, 검은 화면만 나오다가 어느 순간 수술 중인 심장의 모습이 등장한다. 관객들은 처음에는 심장인지 확실히 못 느끼다가, 카메라가 줌 아웃하면서 그것이 심장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 장면은 실제 수술 장면을 허락받고 촬영한 장면이기도 하다. 뛰고 있는 심장의 모습을 보면서 내 몸 안에 있는 심장도 이렇게 뛰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까지 뛰고 있을 심장의 모습을 두 눈으로 보고 있자니 애처롭고 처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티븐은 수술이 끝나고 매튜와 걸으면서 대화한다. 누가 봐도 첫 대화는 '오늘 수술 어땠어?'가 되어야 하는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시계의 방수, 가죽, 가격 등의 이야기만 하고 있다. 그 대화를 듣고 있자면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수술이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일이지만 의사인 스티븐에게는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소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는 가족에게 충실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넌더리를 느끼고 있다. 매튜에게도 마틴에게도 자기는 메탈 시계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결국 그들은 가죽 시계를 선호하거나 선물 받은 메탈 시계를 가죽으로 바꾼다. 스티븐에게 메탈은 가족의 메타포이기도 하다. 남들에게는 메탈(시계)도, 가족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영화에서 비치는 그의 취향은 일관적이지 못하다.


외과 의사에게 놓인 환자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있다. 의사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스티븐은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마치 '신'처럼 느껴지는 쾌감을 통해 전능감을 만끽한다.


아내 애나와 관계를 맺을 때도 이 모습은 그대로 등장한다. 보통의 부부와는 달리 애나가 남편 스티븐에게 '전신 마취?'라는 말을 건네고 남편은 이에 동의한다. 그다음 애나의 동작은 시체처럼 몸을 축 늘어놓고 남편은 죽어있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 아내의 몸을 탐닉하면서 관계를 맺는다.



스티븐은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마취된 상대의 모습을 보면서 전능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

매튜와 마틴의 평행이론

 매튜는 스티븐의 동료 의사다. 마틴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스티븐의 환자 가족이다. 두 인물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둘 다 사람들에게 마취를 주는 사람이다. 매튜는 마취 전문의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 마취를 담당한다. 마틴은 스티븐의 가족들에게 사지 '마취'라는 저주를 내린다. 그리고 둘 다 스티븐의 집에 초대받는다.


각 캐릭터들의 보편성을 잊어야 한다.


영화 <킬링 디어>는 일반 영화처럼 각 캐릭터들을 개인에 가두어놓고 생각하면 그 어떤 내용도 이해되지 못한다.


마틴은 신이다.



마틴은 스티븐이 행세하고 있는 전능자, 즉 신의 탈을 쓴 인간이다. 신은 기본적으로 균형 감각을 따르는 사람이다. 스티븐은 전능자 위치를 즐기고 있지만 그는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때도 그는 자신의 취향으로 선물을 건넨다. 자기가 메탈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마틴에게 메탈 시계를 건넨 것이 그 증거다.  


반면 마틴은 철저히 균형 감각을 따른다.


1. 스티븐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그의 아들 밥이 마틴의 겨드랑이 털을 보여달라고 하자, 마틴은 나중에 스티븐에게 겨드랑이 털을 보여달라고 한다.


2. 스티븐이 본인의 집에 초대 하자, 본인의 집에 스티븐을 초대한다.


3. 마틴의 집에서 스티븐은 아내가 기다린다는 이유로 떠났다. 마틴도 하루 자고 가라는 스티븐의 권유에도 집에서 엄마가 기다린다는 이유로 집을 떠난다. (아내가 없으니 엄마가 그 역할로 균형을 맞춘다.)



신은 균형을 맞출 뿐, 인간의 규칙을 지킬 이유는 없다. 스티븐의 병원에 약속 없이 불쑥 찾아가고, 식당에서도 그는 천천히 걸어올 뿐이다.



스티븐의 가족들은 블랙 코미디를 하고 있다.


그들을 가족이라는 틀에서 생각하면 이 영화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어떤 경우에는 죽음을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희생은커녕 서로를 위한 모습이 좀처럼 보이지 않아 불편하고 불쾌하게만 다가온다.


전능자 행세를 하는 아빠 스티븐은 가족들에게 본인의 취향을 강요한다.


스티븐 → 애나(아내) 블랙 드레스

스티븐 → 킴(딸) 합창단

스티븐 → 밥(아들) 짧은 머리


그러나 그들은 스티븐의 취향을 무시한다. 그러다 다른 사람들의 전능자에 불과했던 스티븐이 본인들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전능자가 되자, 그들은 전능자의 말을 들으면서 마음에 들으려고 애쓴다.


애쓰는 와중에 스티븐의 가족들이 서로를 헐뜯는 부분은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킴(누나) → 밥(동생)

1.  마틴이 준 MP3 잃어버렸는데 너 죽으면 나 줘

2.  네가 뭘 잘 못해서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죽어


킴(딸) → 애나 (엄마)

1. 엄마한테 그때 대들었던 거 아빠한테 말했어?

2.  (화초에 물을 주고 있는 장면) 엄마 아직 괜찮아요? (엄마가 이때쯤 마비가 시작되어야 하는데..)

3.  (애나와 스티븐이 같이 있을 때) 자신이 희생하겠다고 말함.


애나(아내)→스티븐(남편)

1. 우리 아이 또 낳자. 그러니깐 난 (죽음에서) 빼줘

2. 여보가 좋아하는 블랙 드레스 입을게 (스티븐이 밥이 눈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고 애나에게 말하자)

3. 나체로 남편을 유혹하는 장면 (남편은 덤벼드는 관계를 좋아하지 않지만, 애나는 생존 욕구에 기인한다)


밥→스티븐

1. 아빠 생각해봤는데 안과 전문의(엄마 전공)보다 심장 전문의(아빠 전공)가 될게요.

2. 아빠 저 머리 잘랐어요. 진작 아빠 말 들을걸 그랬어요.



가족이 가지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은 어떻게든 본인이 살려고 서로를 헐뜯고 시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블랙 코미디가 아니고 뭐겠는가?

 


감자튀김의 행방


영화 초반부에 마틴과 스티븐이 식당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다. 마틴이 음식을 먹을 때 스티븐은 왜 감자튀김은 먹지 않냐고 묻는다. 이때 마틴은 맛있는 음식은 가장 마지막에 먹는다고 본인의 취향을 말한다. 그러다 그 장면에서 마틴은 감자튀김을 먹지 않는다.


그럼 감자튀김은 언제 먹는가? 초반에 나왔던 감자튀김은 영화의 후반부에 와서야 킴이 먹는다. 감자튀김은 곧 복수를 뜻한다. 식당에서는 희생된 밥을 제외하고 세 식구가 앉아있고, 먼 곳에서 마틴은 그 식구를 응시한다. 밥이 희생됨으로써 복수는 끝이 났고 희생을 뜻하는 케첩(피)을 잔뜩 뿌리고 킴은 맛있게 감자튀김을 집어먹는다. 마틴의 복수는 성공적인지 모른 채 영화는 끝이 난다.


마틴은 균형을 맞추는 인물이라고 했다. 마틴의 아버지가 스티븐에 의해 죽고 나서 마틴은 아버지란 자리만 잃은 것이 아닌  가족 전체의 균형이 무너졌다. 만약 아버지란 자리만 잃었다면 스티븐만 죽이고 균형을 맞추면 된다. 그러나 가족 전체의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복수의 대상을 스티븐이 아닌 스티븐의 가족으로 잡은 것이다. 만약 스티븐만 죽었다면 나머지 가족들은 슬퍼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것은 균형에 맞지 않다.


또한 마틴은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스티븐을 아버지 자리에 데려오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한다. 대신 '밥'을 죽이고 자신이 스티븐 가족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마틴의 복수는 성공인가? 실패인가?  

이것은 당신이 생각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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