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랑>(2018), 김지운 감독
영화 <인랑>은 2018년 7월 20일 CGV용산에서 시사회(+GV)로 미리 관람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제작할 때 감독은 보통 두 가지 노선을 두고 고민한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잘 표현하는가? 또는 기존의 장점을 끌어안으면서 감독의 재해석까지 그대로 녹일 수 있는가?
김지운 감독은 영화 <인랑>은 오시이 마모루 원작의 애니메이션 인랑의 오마주이면서 재해석이 공존하는 영화라고 20일 CGV용산에서 진행된 GV에서 밝혔다.
덧붙여 원작은 무척 건조하고 초월한 사람들의 느낌이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대체로 자기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배우들이 그 만화를 그대로 따라 하니 정서가 생기고 감정이 생각지도 못하게 강렬하게 분출되어 영화에서는 재해석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원작은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허무주의가 팽배했던 일본의 1960년대의 색채가 그대로 담겨있다. 원작 인랑의 팬들은 영화 인랑에서도 이런 지점을 기대하겠지만 스크린으로 옮겨지면서 오락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모호하면서 답답한 지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결국 원작의 장점(강화복, 지하수로, 빨간 망토, MG-42와 같은 총기 등)을 살리면서 재해석이 들어갔다. 무대를 과거의 일본 사회에서 미래의 한국 사회로 옮기면서 원작에서는 생략해버린, 그리고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덧붙여져서 세계관이 한층 확장되었다.
영화 <인랑>은 2029년, 남북이 5년간의 유예기간을 가지는 통일 정책을 발표한 상황에서 통일을 반대하는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경제 제재를 가하면서 민심이 흉흉해지고 대한민국 경제는 급속도로 무너진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할 것인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할 것인가에 따라 국민들은 통일을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통일 반대 성향을 가진 극우 무장단체 섹트(SECT)는 현재 남북 간 수립된 통일 논의를 적화통일이라 판단하고 정부를 전복하고 통일을 취소하여 경제 제재의 해제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다. 통일된 한반도의 미래보다 지금 먹고사는 것이 당장 시급한 문제라 판단한 것이다.
특기대 소속의 임중경(강동원)은 조직 내에서 잘 길들여진 '늑대'다. 본인의 생각을 믿기보다 조직의 생각을 의심 없이 그대로 믿고 따른다. 섹트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된 특기대에서도 엘리트급으로 구성된 비밀조직 '인랑'의 일원이기도 하다.
직장인이라면 어쩌면 나는 이곳의 소모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했을 것이다. 조직에 속해있는 개인은 때론 그곳에서 취향과 자율성이 훼손된다.
영화 <인랑>에 등장하는 공안부의 한상우(김무열), 섹트의 이윤희(한효주), 특기대의 장진태(정우성)까지 각각의 인물들은 개인인 동시에 본인이 속해있는 집단을 대표하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늑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극악무도했던 임중경은 여러 사건을 통해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을 만나면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변화의 조짐은 그전부터 벌어진 사고에 의해 시작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집단은 그 조짐 조차도 대의라는 명분을 통해 끊임없이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과 가려진 수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인간으로 가야 할 것인지 짐승으로 갈 것인지 끊임없이 번뇌한다. 결국 어느 곳에 먹이를 주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 현재 집단에 속해 있는 이상 그 먹이를 주는 것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원작의 답답함과 모호함을 벗어나고자 했던 영화 <인랑>의 모습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다소 아쉽게 다가온다. 강화복 슈트는 로보캅, 아이언맨을 제작한 할리우드팀이 제작했다고 한다. 계약을 하기 전에 슈트를 만들고, 시뮬레이션을 보내주고, 입고 뛰는 모습 등의 자료화면까지 성심성의껏 끊임없이 보내줬다고 한다.
재질, 상태, 가격 등 꼼꼼하게 체크를 하고 결국 그 팀과 계약을 했고, 알고 보니 그 팀에 속해있는 모든 사람들이 원작 인랑의 팬이어서 강화복을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강화복과 지하수로의 액션신은 칭찬받을만하다. 그러나 영화 <인랑>에서 스토리 라인은 소모품이 되어버렸다. 이해되지 않았던 몇몇 장면들은 김지운 감독이 참석했던 GV를 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모든 관객들이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 <인랑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인랑에 대한 기대와, 감독 김지운에 대한 기대가 워낙 컸기에 지금까지 나온 퀄리티는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 <인랑> 처음에 염두했던 시대는 원래 근미래였던 2029년이 아니라, 과거 1980년대였다고 한다. 오히려 그 시대가 더 어울렸을 거 같지만 제작비의 한계로 결국 고증이 덜 필요한 미래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 <인랑>의 제작비는 대부분 강화복과 미술에 써서 영화의 분위기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강화복과 미술 부분에서는 거의 만점을 주고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렇다 보니 제작비에 여유가 있었더라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지점이 해소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쉬운 지점이 많은 인랑이지만, 한국 영화를 이렇게까지 멋지게 뽑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김지운 감독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평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