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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ug 16. 2018

너도 떠나보면 알게 될 거야

대학생 시절, 누나가 구입 후 번만 쓰고 방치한 카메라를 들고 서울 골목을 누비며 사진을 찍곤 했다. 직장인이 되고서도 시간이 날 때면 카메라를 종종 들었지만 셔터를 많이 누르진 않았다. 찍어봐야 마음에 들만한 사진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평소에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갈 때면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아쉬움에 마음에도 없는 셔터만 주야장천 누른다. 수 백장의 사진이 모였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눈에 들어오는 건 단 몇 장의 사진뿐이었다. 나머지 사진들은 자연스레 흑백이 된다.


우리가 언제 사진을 찍게 될까요?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
앞에 놓인 풍경 또는 사람이 우리에게 기쁨 또는 설렘의 감정을 선사해줬을 때 우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하루에도 수천번, 수 만 번 이상의 사람들과 사물들이 우리의 눈에 비치지만 대부분 무의미하게 흘러갈 뿐이죠. 그런 무의미한 것 중에 우리의 감정이 들어간 것, 즉 기쁨과 설렘을 느낀 상대를 만난다면 우리 마음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서 유의미 있는 것들로 변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셔터를 누르게 되는 거죠.     


책 <강신주의 감정수업>에서 얘기한 것처럼 무수히 많은 무의미한 것들 중에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사람이나 사물이 있으면 우리는 셔터를 누른다. 요즘은 바쁘다는 핑계로 출사를 멀리하고 있는데, 지난 몇 년간 다녀온 출사와 여행에서 유의미하게 다가온 사진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내일로 여행, 여수 (2013)

언제나 기차를 타는 일은 설렌다. 해외여행을 가서도 일부러 기차를 탔다. 벌써 5년이 지났지만 기차를 타고 전국을 누볐던 두 번의 내일로 여행이 수많은 국내 여행 중 유독 기억에 남는다. 기차라는 한 공간에 같이 탔지만, 누군가는 중간에 내리고, 누군가는 나보다 더 멀리 떠난다. 누가 내린 자리는 새롭게 탑승한 사람의 몫이 된다. 방금까지는 내린 사람의 추억이었지만, 이제는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추억이 된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 (2018)

공항이나 기차역은 항상 분주하다. 가끔 그곳을 지켜보는 관객이 되면 그 무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밌게 다가온다. 출발을 코 앞에 둔 열차를 타기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 부모님이 싸준 밑반찬을 두 손 가득 들고 부모님과 인사를 주고받는 사람. 휴가가 끝나고 마중 나온 여자 친구랑 마지막 인사를 하는 군인까지 각각의 사람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역무원들은 그들이 혹여 기차를 놓치게 될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면서 도움의 손길을 뻗친다.

기타큐슈, 일본 (2018)

퇴사를 앞두고 떠난 일본 여행에서는 여행이 주는 설렘과 앞으로의 두려움이 공존한 여행이었다. 증상이 나타날 때 먹게 되는 약처럼, 김동률의 <출발>은 새롭게 시작할 때 늘 찾게 되는 약 같은 노래 중 하나.

고베, 일본 (2016)

우메다에서 고베를 가기 위해 탔던 한큐 전철은 차분함 그 자체였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기관사가 고베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방송에서 '고베 산노미야'라고 말하던 차분한 목소리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인지 여전히 고베를 떠올릴 때면 영화 <러브레터>와 함께 그 기관사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찾아온다. 

부암동 (2016)

 올해 여름은 출사를 꿈꿀 수도 없을 정도로 무덥지만, 2016년 여름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부암동을 다녀왔다. 워낙 출사지로 유명한 곳이다 보니 평소에도 가고 싶었지만 워낙 교통편이 좋지 않아 항상 걸림돌이 있었다. 예쁜 카페들이 많아 출사를 가게 되면 꼭 들러봐야겠다는 카페가 몇 개 있었는데 검색해보니 가장 마음이 갔던 카페는 아쉽게도 영업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가장 마음을 썼던 것들이 더 이상 마음조차 닿지 못할 때 느껴지는 아쉬움은 늘 씁쓸하다.

돔 카페, 치앙마이 (2018)

3주가량 쉬러 다녀온 치앙마이는 마음이 가는 카페들이 참 많아서 좋았다. 님만해민 근처에 있는 돔 카페가 막 영업을 시작할 때 2층에서 가장 편한 자리를 잡아 밖으로 보이는 나무를 풍경 삼아 책을 읽었다. 쓸모없는 바쁨이 여유를 앗아갈 때 한 번씩 예전에 썼던 글을 읽으면 다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치앙마이, 태국(2018)

치앙마이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는 사람의 뒷모습을 담은 사진도 내일로 여행에서 찍은 기차 사진만큼이나 내 인생에서 오래 머물다 가지 않을까. 초점이 맞춰지지 않아 번진 모습이 오히려 멋짐을 자아낸다. 사진을 찍을 때면 항상 아름다운 피사체의 모습을 남기려고 하지만, 결국 내 마음속에 남는 한 두장의 사진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찍었던 당시에도 '이야기'가 되었지만, 지금 다시 봐도 '이야기'가 되는 그런 사진.

지우펀, 대만(2017)

앞으로 떠날 여행에서 찍은 수많은 사진들이 흑백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담아낼 단 몇 장의 사진을 위하여 여행을 장바구니에 담아놓는다. 결심이 설 때 떠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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