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에서 찾은 나만의 작은 숲, 카페
브런치 무비 패스 첫 번째 영화였던 리틀 포레스트는 정말 보고 싶었던 영화인데 기존에 신청한 강연과 일정이 겹쳐 아쉽게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개봉하던 날도 여행 일정과 겹쳐 한참 지난 3월에 관람을 하게 됐다.
극장을 나설 때 진정으로 시작되는 영화가 진짜 영화라는 생각을 합니다.
질문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가 좋은 영화죠.
-영화평론가 이동진-
이동진 영화 평론가의 말처럼 이 영화는 내게 질문을 하나 던져준다. 그런 의미에서 좋은 영화였다.
좋아하는 게 뭐예요? 잘하는 게 뭐예요? 만큼 참 어려운 질문이다. 나에 대해 묻는 질문인데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선뜻 대답을 못한다.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과거를 되짚어봤다. 생각만큼 나를 몰랐다. 꼭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시간이 지나 혼자 있을 때 갑자기 그 말이 생각나 계속 머릿속에 맴돌 때가 있다.
영화를 본 이후에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작은 숲'은 어디에 있을까? 계속 생각해봤지만 답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고 그 과정에 퇴사를 했고 두 번의 여행을 떠났다. 그 중 두 번째 여행은 18박 19일로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4월 말 떠났을 때 한국은 아직 봄이었지만 치앙마이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공항에 가던 날 비가 거세게 내리고 외투를 입어도 추운 날씨였다. 외투를 챙기면 짐이라는 생각에 부들부들 떨면서 비행기에 탔다. 그리고 지난주 금요일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답을 얻으러 갔던 여행은 아니었지만 돌아오니 나만의 작은 숲을 찾았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는 고독은 수용하지만 고립은 원치 않는 현대인의 안식처로 카페만 한 공간이 없다고 설명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카페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카페는 수다를 떨기 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수다는 부가적인 수단이 되었고 공부, 독서, 자기계발과 같은 성장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지금 글 쓰고 있는 카페에서도 잠깐 주위를 둘러보면 노트북으로 개인 작업을 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밤늦게 퇴근을 하면 온 몸이 노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동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퇴근하고 카페로 열심히 출근했다. 덕분에 그런 경험을 녹여낸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하다>라는 글은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혜원(김태리)은 고향에서 자신의 작은 숲을 찾았다. 봄에는 직접 땀 흘리며 씨앗을 심었고, 여름에는 열심히 잡초를 뽑았다. 그리고 가을에 추수한 곡식과 각종 과일, 채소 등으로 멋진 음식 솜씨를 뽐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좋은 음식은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먹었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수많은 작은 나무들을 심어 자신만의 작은 숲을 이뤄낸 것이다.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니?
영화에서 재하(류준열)는 선택과 결단을 미루고 있는 혜원에게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다고 은연중에 얘기한다. 우리는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온갖 소중한 것들을 그 뒤로 숨겨놓지 않았던가. 정작 바쁨은 문제를 해결해주지도 않고, 오히려 소중한 것을 성가시게 만든다.
퇴사를 하니 바쁨이 걷어졌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여행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시간도, 돈도 많으니까 유럽이나 길게 다녀오라고 했다. 그들의 말대로 여건은 충분했지만 내가 끌리지 않았다. 산티아고 성지순례길도 언젠가 가보고 싶지만 지금은 가기 싫었다. 남들의 말에 혹해서 지금 가면 남들의 꿈을 따라하는 것이다. 대신 선택한 곳은 치앙마이였다. 벌려놓은 일들이 많았기에 한 달을 다녀오긴 힘들었고 최대한 갈 수 있는 18박 19일 일정으로 떠났다. 짧은 여행이었다면 일정에 쫓겨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느끼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을지도 모르지만 넉넉한 일정 덕분에 골목 곳곳에 숨겨있는 치앙마이에 있는 수많은 카페에 다녀왔다. 카페는 내게 소소한 행복을 주는 작은 숲이었다.
여행 3일차까지는 주변 지리를 파악하고 마사지에 심취한 나머지 카페를 다니지 않았다. 4일차가 되어서야 올드시티에 위치한 카페 My Secret Cafe In Town을 다녀왔다. 올드시티에 있는 도로가 근처 카페는 꽤 시끄러운데 다행히 도로가에 약간 비껴있는 골목에 위치해 있어 조용히 차를 마실 수 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카페에 자리잡아 전자책 리더기로 책 <내가 혼자 여행 하는 이유>를 읽었다. 아메리카노는 평범했지만 사진 멀리 보이는 저 Fruit Cake가 참 맛있었다.
만약 치앙마이에 가게 된다면 한 번 드셔보시길.
치앙마이에서 두번째로 들렀던 카페는 역시 올드시티에 위치한 THOR PHAN Coffee 였다. 이 카페 역시 한적한 골목 사이에 있다. 카페는 아담하고 테이블 수도 많지 않지만 깔끔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치앙마이에서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 카페 또한 그랬다. 처음에 마신 아메리카노는 남편 분께서, 두번째 마신 밀크티는 아내분께서 타주셨는데 둘 다 맛있었다. 글을 쓰러간 카페에서 두 잔까지 마실 생각은 없었는데 글감이 굉장히 잘 나와 오래 머물러 있으면서 음료를 하나 더 시켰다. 운이 좋게도 여기서 썼던 영화 <그 날, 바다> 리뷰와 Workflowy에 관한 글이 브런치에서 굉장히 많은 인기를 얻었다.
올드시티에 위치한 사원들을 구경하다가 급피곤해서 타페게이트 근처에 위치한 TAPAE GATE KAFE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TAPAE GATE VILLA 숙소 옆에 있는 조그만한 카페다. 올드시티 번화가에 위치하다보니 다른 가게보다는 상대적으로 가격은 비쌌지만 맛은 끝내줬다. 여기서 한 시간 가량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니 금방 체력이 보충되어 다시 사원 구경을 나섰다!
Dom Cafe는 님만해민 마야 쇼핑몰 건너편 Think PARK 내에 위치해있다. 사진에 보이는 동상 말고 안쪽에 큰 동상이 하나 서있고 2층으로 되있기 때문에 지나가다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카페 앞 공간에서는 매일 밤 작은 야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님만해민은 우리나라 강남과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되는데, 그 중에서도 Dom cafe는 가로수길과 같은 가장 핫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 말은 음료가 비싸다는 이야기. 어쨌든 음료를 주문하고 나면 진동벨이 아닌 철제 번호표(?)를 준다.
번호표를 주면서 1층에서 마실건지, 2층에서 마실건지 묻는데 대답에 따라서 해당 층에서 준비해 음료를 직접 가져다준다. 이 번호를 보고 해당 층에서 바로 만드는 듯 하다. 우리처럼 진동벨을 반납하고 음료를 받아오는 구조가 아니었다.
나만의 작은 숲은 카페라고 했는데, 이런 카페가 작은 숲이라는 단어에 정말 잘 어울린다.
음료는 Mocha Float을 시켰다. 잔에는 아이스크름이 가득 담겨져 있었고 에스프레소와 초콜렛은 작은 비커에 담아준다. 몇 달전에 사놓고 읽지 못한 책 <플루언트>를 처음으로 펼쳤다. 이 카페에서 책 읽다가 쉬기도 하고, 핸드폰도 만지작거리면서 맛있는 음료를 마신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치앙마이에 도착하고 처음 8일은 올드시티 숙소에 머물다가 나머지 일정은 님만해민쪽에 위치한 숙소로 옮겼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FIND Coffee는 대학교 앞에 위치해 있어 일단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커피는 맛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잠깐 쉴 때 들릴만한 카페였다. 케이크 종류도 꽤 많이 팔았는데 다른 카페보다 저렴하게 팔았다.
치앙마이에서 아마 가장 유명한 카페지 않을까. 님만해민 쪽에 2개의 매장이 있다. 도로가에 Ristr8to가 있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Ristr8toLab 매장이 있다. 개인적으로 골목에 위치해 있어 조용한 Lab을 추천.
리스트레토 카페에서는 크레마를 맛 보기 위해 롱 블랙을 시켰다.
저 짙은 크레마!!!! 치앙마이에서 마셨던 커피 중에 가장 괜찮았다.
골목에 위치한 Ristr8toLab에서는 가장 유명한 사탄 라떼를 시켰다. 라떼를 좋아하지 않지만 궁금해서 마셔봤다. 맛은 기억이 안나고 야외 테이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런 곳에서는 글감도 쏟아진다.
Wawee Coffee는 치앙마이에 3군데의 매장이 있다. 삥강 근처에 한 군데 있고, 님만해민 쪽에 두 군데가 있다. 앞서 얘기한 리스트레토 카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매장을 다녀왔다. 음악을 따로 틀지 않아 어떨 때는 도서관처럼 정말 조용해진다. 그래서 더 집중하기 좋았다. 와이파이 속도도 괜찮았다.
귀국 다음 날 독서모임이 있는데 발제자를 맡아서 틈틈이 치앙마이에서 발표 준비를 준비했다. 이 곳에서 자료를 마무리 지었고, 책 <플루언트>도 모두 읽었다. 치앙마이에 온 여행객들의 구매 리스트에 Wawee Coffee의 원두가 있을만큼 유명한 카페. 아메리카노 맛도 좋았다.
이외에도 수많은 카페를 다녀왔지만 사진이 없거나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장소들이었다. 치앙마이의 4월은 워낙 덥다 보니 카페뿐만 아니라 일반 음식점이나 길거리에서도 정말 많은 음료를 마셨다.
백화점 푸드코트 같은 곳에서 파는 데도 천 원도 안 하는 가격이다. ㅜㅜ
카오 소이 맛집에서 마셨던 Thai Tea, 값싸고 정말 맛있다.
냉동실에 넣어서 살얼음을 만들어 먹었는데 코코넛 정말 꿀맛.
마야 쇼핑몰에 위치한 망고음료 전문점 ICE HUB. 둘 다 맛있었다.
여태까지 먹었던 똠양 중에 제일 맛있었던 크레이지 누들(Crazy Noodle)에서 마셨던 구아바 주스.
밖에서 마신 음료는 비싸야 우리나라 돈으로 1,500원 정도.
치앙마이에서 18일 동안 있으면서 가장 좋았던 식당이나 카페는 3번 정도 찾아갔다. tikky cafe도 그중 하나였다. 식사하고 음료를 마셔도 5천 원이 넘지 않으니 정말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바쁜 일상에서는 습관처럼 카페를 다녀 그 소중함을 몰랐는데 치앙마이를 여행하면서 그 어떤 관광지보다 오히려 카페에서 휴식하고, 책 읽고, 일기 쓰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여행 중이라서 특히 좋았던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기에는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항상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카페를 찾았다. 달달한 음료를 마시고 읽거나 쓰는 행위를 통해 기분을 풀었다.
나는 카페를 참 좋아하는구나.
이 정도면 작은 숲이라도 불러도 되겠다.
당신에게는 나만의 작은 숲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