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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Sep 13. 2018

그 운은 내가 가져가야겠소

영화 <명당>(2017), 박희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중블(중앙 블록)의 가운데 좌석을 선호한다. 자리가 없으면 차순위는 좌측이다. 지하철에서는 출입문 근처에 있는 가장자리를 선호하고, 카페에서는 콘센트가 있으면서 등받이 좌석이 편한 의자가 있는 곳을 먼저 찾는다. 대학생 때 강의를 듣거나 도서관에서는 고정석이 아닌데도 시간이 지나면 본인의 자리가 정해진다. 앞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맨 뒷자리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일상에서도 이렇게 누구나 선호하는 '명당'이 존재한다. 


 가끔 친구들을 만날 때, 다들 뿔뿔이 흩어져있어 장소 정하기가 참 힘들다. 인천, 수원, 성남 등에 사는 친구들을 한 데 모으기 위해  "홍대'에서 보자고 하면 성남 사는 친구가 거부했고, '잠실'에서 보자고 하면 강남에서 그리 차이 나지 않는데도 인천 사는 친구가 싫어했다. 그러나 '강남'만은 예외였다. 그곳은 모이기 좋은 만남의 장소이자, 가장 불만이 적은 명당이었다.


 누구나 살고 싶고, 누구나 앉고 싶고, 누구나 있고 싶은 곳이 있다면 그곳은 명당이 된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서울 근처에 살고 싶어 한다. 일자리도 많고, 주말에 문화생활을 즐기기 편하고, 자식 교육받기에도 최적화되어 있다. 누구나 서울에 살고 싶어 했기에 서울은 명당이 되었고, 그로 인해 부동산 값이 치솟았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분들은 주의하세요.



영화 <관상>, <궁합>에 이어 역합 3부작의 마지막 시리즈인 영화 <명당>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박재상(조승우)은 땅의 기준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지관이다. 명당을 이용해 나라를 지배하려는 장동 김 씨 가문의 계획을 막다가 가족을 잃는다. 13년 후, 그들에게 복수를 꿈꾸는 박재상 앞에 흥선(지성)이 나타나 장동 김 씨 가문을 몰아낼 계략을 짜게 된다.




세도 정치를 일삼는 장동 김 씨 가문 앞에 조선 24대 왕 헌종(이원근)은 그저 왕이라는 호칭만 남았을 뿐, 군사부터 신하까지 이미 모든 것을 가진 김좌근(백윤식)의 술수에 항상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김좌근은 지관 정만인(박충선)을 통해 조상들이 묘를 모두 명당에 묻었다. 명당의 좋은 기운을 통해 헌종을 누르고 기세 등등한 상황이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 발각되었을 때도 본인의 죄를 묻는 왕에게 군사를 데리고 와서는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끊임없이 간청한다. 이 간청은 오히려 '왕'에게 죽어달라는 말처럼 들린다.  



몰락한 왕족 흥선과 지관 박재상은 김좌근이 지금 기세 등등할 수 있는 이유는 명당의 좋은 기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명당에 묻혀있는 김좌근 조상의 묘를 찾아 나서지만, 누구도 어디에 안장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김좌근 가문은 당시 안장했을 때 관여된 모든 사람을 죽였다.

 


왕을 본인을 밑에 두고 세도 정치를 하는 김좌근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치솟는다. 헌종의 조상, 즉 역대 왕들이 묻혀있는 왕릉에 김좌근의 조상도 함께 묻혀있다는 사실을 헌종은 알아차렸지만, 세자를 죽인다는 김좌근의 협박에 그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된다. 다만 세자를 죽여달라지 말라는 간청을 올릴 뿐이다.  



김좌근은 장동 김 씨 가문에 해가 되는 인물들을 모조리 죽였다. 왕일지라도 말이다. 흥선은 살아야 했다. 상가의 개처럼 웃음거리가 될지라도 일단 살아서 후일을 도모해야 했다. 오늘만 사는 것처럼 보였던 흥선이 영화 후반부에는 아들을 왕에 즉위하고자 하는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때 흥선의 연기는 가히 압도적이다. 영화 <명당>은 흥선의 이런 변화를 아주 느린 템포로 천천히 보여준다.


흥선은 땅을 통해 왕을 가지고자 했고, 김좌근은 땅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려 했다. 그리고 김좌근의 아들 김병기는 땅으로부터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한다. 각자가 꿈꾸는 바는 달랐지만, '명당'을 통해 변화하겠다는 욕망 하나만은 같았다. 과연 누구의 욕망이 먼저 이루어질 것인가.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를 통해 미리 관람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꽤 심심하다는 평이 있었다. 혹여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지루한 편은 아니었다. 심심하다는 평은 영화를 보자마자 이해가 됐다. 영화 <명당>은 굉장히 느린 템포로 진행된다. 인물들의 욕망을 천천히, 그리고 거침없이 비추고 있다. 서사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지루할만한 템포였다. 영화 <명당>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그 틈을 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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