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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Sep 20. 2018

아니, 제주까지 와서 서점이라니요.

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 #3. 제주독립서점과 코워킹스페이스 브이랩365

 많은 사람이 추석 연휴에 제주를 계획할 때, 여행객이 가장 적은 연휴 며칠 전을 틈타 제주에 왔다. 마지막으로 제주 땅을 밟아본 건 2012년 겨울이었다. 교지편집위원회에서 동고동락했던 선후배들과 함께 수학여행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2박 3일 여행을 다녔다.


 나는 인생도, 여행도, 일상도 계획적인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내 강점을 얘기할 때 '꼼꼼', '세밀'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제주는 넓었고, 가봐야 할 곳은 많았다. 수학여행에서도, 수학여행을 빼닮은 다음 여행에서도 유명한 곳은 많이 가봐야 한다는 사실만 내게 의미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다닌다는 사실에 신났지만, 지금 그 여행들을 떠올리면 제주의 멋진 풍경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고생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퇴사 후 아무런 계획도 세우기 싫어 훌쩍 떠난 블라디보스토크와 치앙마이 여행에서는 발길 닿는 대로 다녔다. 정처 없이 걷다가 가고 싶은 곳이 생기면 잠시 구경했고, 다시 목적지 없이 걷는 식이었다. 이번에도 그 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만 하나의 계획은 세웠다. 갈 곳을 정해놓지 않았지만, 과거에 다녀온 곳은 최대한 가지 않기.



제주까지 와서

서점이라니요


제주에는 교보문고, 영풍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이 없다. 대신 제주 곳곳에 독립서점이 흩어져있다. 교통이 불편한 곳에 숨어있어도 사람들은 기꺼이 찾아내 방문한다. 독립서점들은 시선을 끌 만한 화려한 외관은 아니지만, 허름한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빛이 날 정도로 기획자의 시선으로 점철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1) 책방무사

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요조  @대중음악박물관

요조는 학창 시절에 애정하던 가수 중 한 명이었는데, 어느 순간 기억 속에 사라졌다. 그녀의 소식을 다시 알게 된 건 종종 눈으로 읽었던 어느 서점의 블로그였다. 책 한 권을 냈고, 독자를 만나기 위해 제주에서 서울로 온다고 했다. 그 책은 1년 동안 읽었던 책의 리뷰를 엮은 책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이었다. 약 1시간가량의 강연에서는 책보다는 지난 4년 동안 서울 북촌에서, 제주 성산읍 수산리에서 책방무사를 운영하면서 있었던 이야기를 때론 느리고, 때론 조곤조곤하게 이야기해주었다.



가수 요조가 운영하는 제주 서점이라고 홍보해도 시원찮을 판에 그녀는 이전 가게의 상호명이 걸려있는 간판 (한)아름 상회를 내걸고 책을 팔고 있었다. 책방 무사라는 본래의 이름은 입구 옆에 간신히 달려있었다. 한 때 애정 하는 가수가 운영하는 서점이라니 가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강연을 듣고 썼던 리뷰 글]



 방문하고자 했던 생각은 이른 시일 내에 이루어졌다. 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 자격으로 제주 땅에 발이 닿는 순간 USB를 머리에 꽂은 것처럼 '맞다. 여기 오면 요조 서점 가보기로 했지'라는 기억이 불쑥 재생되었다. 갈 곳이 없었는데, 갈 곳이 생겨서 갑자기 신이 났다. 바로 책방 무사이자 (한) 아름 상회이기도한 서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겉으로 봤을 땐, 허름하고 좁아 보였는데 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오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벽면의 조명은 주변만 밝힐 뿐이었지만,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채광은 서점 내부에 빛이 닿는 곳까지 환하게 밝힌다. 평일 낮이라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지 않은 조용한 이 공간에 선풍기가 열심히 일하는 소리와 가끔씩 지나가는 버스 소리만 들릴 뿐이다.



책방무사에서는 다양한 문구류, 굿즈도 함께 판매한다. (한)아름 상회의 간판을 보면 '코닥 필름 판매점'이라고 쓰여있는데 책방무사에서도 카메라와 필름을 판매하고 있었다. 요조는 책 <오늘도 무사>에서 본인의 인지도나 화려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보다 (한) 아름 상회가 과거 이 동네에서 만남의 장소였고, 오래된 추억이 담긴 필름을 판매하는 곳의 추억을 계승하고 싶다고 했다. 책을 읽으니 서점 곳곳이 더 잘 보인다.


+ 마침 책방 주인장 신수진님이 계셔서 책 <오늘도 무사>에 사인을 받았다 :)


(2) 소심한 책방


계획이 없던 여행이 소심한 책방에 들러서야 제주 서점 투어가 되었다. 핑크색 간판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칠 뻔했던 소심한 책방도 책방무사처럼 근처 건물들과 위화감이 없다. 낮은 돌담 사잇길 사이로 역시 문을 '드르륵'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소심한 책방의 풍경이 펼쳐진다.



버스를 타고 제주를 배회할 때 우연히 본 '메가박스'를 보고 순간 영화를 볼까 생각이 들었던 것처럼, 소심한 책방에 와서도 영화와 관련된 책들이 먼저 내 눈에 띈다. 아무리 많은 책이 있어도 결국 먼저 눈에 띄는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묻어있는 책이다.


+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순간 볼까 했지만, 성남으로 돌아가서 보기로 했다.





통통 튀는 독립 서적들과 제주 풍경이 담아있는 굿즈까지 소심한 책방에서는 볼거리가 풍성했다. 사실 이 책방에 오기 전, 함덕 서우봉을 갈지 아니면 소심한 책방에 갈지 고민하다 왔는데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 아직 제주에 올 날은 많지만 혼자 '서점'을 이유로 올 기회는 많지 않다. 서점을 좋아하지 않는 일행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한 두 군데 정도는 우겨서 방문하겠지만, 그 이상은 같이 떠나온 '여행'을 망칠 수도 있는 그릇된 욕심이다. 어쩌면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을 자유', '갑자기 생긴 계획으로 떠나는 여행'은 혼행의 특권이다. 소심한 책방을 구경하고, 제주에 숨어있는 몇 군데의 서점을 더 찾아보기로 했다.


(3) 라이킷


세 번째 방문한 서점은 라이킷이다. 공항과 가까운 동문 재래시장 근처에 있어서 비행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을 경우 잠깐 들러서 구경하기 좋은 위치다. 앞선 서점과 달리 내 취향과는 맞지 않고 피로가 쌓여서 제대로 구경하지 못해 내 지갑을 열지 못했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라이킷에서 팔고 있는 독립 출판물 <내가 30代가 됐다>에서 주인공으로 보이는 주인공이 '시발' 외치는 것만으로도 벌써 재밌어 보여서 자리에서 금세 읽었다. 한 권 구입할까 했지만, 얇은 두께임에도 보통 책들의 가격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 처음 방문했을 때 피곤하기도 했고, 이 책을 다시 구입하고 싶어서 다음 날 방문했는데 휴무일이라 아쉽다.


(4) 바라나시 책골목


바라나시 책골목은 다른 서점과 달리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제주 관련 글을 읽다가 우연히 바라나시 책골목을 소개한 글에 '여기 진짜 알리고 싶지 않은 비밀 카페인데'라는 댓글이 재밌었다. 마침 근처라 식사를 마치고 제주에서 방문한 네 번째 서점이었다.


작가와 독자의 구분이 사라진 지금, 당신과 우리가 작가다 <작은 책을 스스로 만들며 사는 법>

역시 '드르륵'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니 가장 먼저 나를 반기는 건 독립 서적이었다. 들렀던 각 서점마다 큐레이팅한 독립 서적들은 겹치는 게 많지 않았다. 혼자 만든 책이다 보니 혹시 퀄리티가 낮지 않을까. 표지를 대충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 틀은 이번 서점 여행을 통해 와장창 무너졌다. 충분히 훌륭했고, 충분히 멋진 책들이 넘쳤다.


'작가'라는 호칭을 종종 들을 때가 있는데, 내 이름 석자가 낸 책도 없다 보니 그 말을 들을 땐 매번 낯간지러웠다. 그 호칭은 글을 써서 성공한 사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닌 남의 평가로 이루어지고, 출판사가 선택한 사람만이 그 호칭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는 편협한 생각이 있었다. 많은 독립 서적을 마주하니, 고작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와 달리 작지만 스스로의 책을 만들며 사는 사람들이 멋있었다. 그들을 직접 본적은 없지만, 어디선가 멋지게 살고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든다. 꼭 글로써 성공한 사람만이 작가가 아니라, 스스로 그 호칭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다. 작가와 독자의 구분이 사라진 지금, 당신과 우리는 작가다.



조금만 둘러봐도, 바라나시 책골목 주인장 권혜진씨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책방에 들어서면 마치 인도에 있는 것처럼 인도 향이 물씬 풍기고, 인도와 철학을 대표하는 서적들이 쉽게 눈에 띈다. 바라나시 책골목은 크지 않았지만, 군데군데 책 읽기 좋은 좌석들이 많아서 읽고 싶은 책을 들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음료는 너무 뜨거워서 충분히 식혀먹었다.


인도식 밀크티 짜이를 한 잔 시켜놓고, 독립 서적 한 권과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을 편하게 누워(?) 읽었다. 적절한 온도, 적절한 음료, 적절한 책이 한 데 섞이니 적절한 이 상황이 너무 좋다. 마침 비행기를 타야하는 시간도 적절히 남아 있어서 여유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자마자 나는 이곳이 너무 좋아져버렸다



좋은 경험은

글이 된다


 치앙마이와 서울에서의 코워킹스페이스는 수차례 경험했지만, 제주에서의 코워킹스페이스는 어떤 느낌일까? 비슷한 장소 같아도 경험해보면 공간 기획자의 의도와 배려가 그 공간을 한껏 성숙하게 만든다. 언젠가 제주에서 여행하며, 일하는 삶을 꿈꾸기에,  제주에서의 코워킹스페이스는 생각하는 자체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지난달부터 활동하고 있는 도시작가 자격으로 제주 아라동에 위치한 코워킹스페이스 '브이랩365'에 방문했다.


제주 아라동 코워킹스페이스 브이랩365

김포에서 오후에 출발했는데, 제주에 도착하고 장소를 찾다 보니 하늘이 금세 어두워진다. 건물 앞에 서니 1층에는 공방과 영업 중인 카페(롱리브)가 있고, 사이에 놓인 계단으로 올라가면 코워킹스페이스 브이랩365가 보인다. 2층 전체가 코워킹스페이스로 운영되고 있다.



브이랩365는 지정석이 있는 프라이빗랩과 자유롭게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오픈랩A,B로 구분되어 있다. 입구에서 오른쪽에 프라이빗랩이 있고, 왼쪽에는 오픈랩이 위치해있다. 오픈랩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락커 사물함을 배정받아 짐을 놓고 다닐 수 있고, 프라이빗랩에서는 방마다 도어락이 달려 있어, 물건을 놓고 다녀도 안심이 된다.

프라이빗 랩 : 1~2인 개별 부스, 24시간 사용 가능
오픈랩A : 자유롭게 어디서나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공간,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옴.
오픈랩B : 오픈랩 A와 동일하나 음악 없이 조용하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


프라이빗랩, 오픈랩B

2박 3일 일정으로 방문한 제주에서 하루는 프라이빗랩에서, 하루는 오픈랩B에서 글을 쓰고 작업을 이어나갔다. 프라이빗랩에서는 24시간 동안 언제든지 시간 제약 없이 이용 가능하고, 오픈랩은 오전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빨리 문을 닫는 곳이 많은 제주에서 늦은 시간까지 운영되는 것은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브이랩365 미니라운지

일하다 보면 가끔씩 단 음식이 땡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를 위해서 미니 라운지에 간단한 음료와 간식이 구비되어 있다. 브이랩365를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프라이빗랩 안쪽에 있는 미팅룸은 전화를 하거나, 회의가 필요할 때 이용되는 공간이다. 프라이빗랩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예약제로 운영된다. 벽면 위쪽에는 발표 자료를 띄울 수 있는 TV가 구비되어 있다. 6인에서 최대 8인까지 사용할 수 있는 회의 공간이다.


브이랩365 공간 소개(블로그, 플러스친구)

오픈랩A/B  1일권 12,000원, 1개월 198,000원

프라이빗랩(1인)  1개월 297,000원

프라이빗랩(2인)  2개월 539,000원

 


제주라는 멋진 도시와 브이랩365라는 좋은 공간이 만나니, 글이 술술 써진다. 가끔 글에 자신이 없을 땐 이렇게 좋은 공간의 에너지를 듬뿍 받아 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좋은 공간의 좋은 경험은 기필코 글이 된다.



지금 여기,

그리고 제주



 과거에 제주는 대중교통이 불편해 차량 렌트가 아니면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번에 방문한 제주에서는 2박 3일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다녔다. 아직 수도권만큼의 편리함은 아니지만, 대중교통에 큰 노력을 쏟은 지자체의 노력이 엿보인다. 지선, 간선 버스들은 기본요금 외에 거리에 따른 추가 요금이 붙지 않아 저렴하게 제주 곳곳에 숨어있는 서점을 찾아다닐 수 있고, 서울에는 없는 버스-택시 간 환승(600원 할인)까지 된다고 하니 뚜벅이들한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낮에는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독립서점을 구경하고, 밤에는 일하면서 보낸 2박 3일의 제주는 기존 여행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2012년의 제주에 왔을 때는 성시경의 '제주도의 푸른 밤'만 들었지만 6년이 지난 지금은 태연과 소유 버전도 생겼다. 이번 여행에서 그 세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여행을 했는데,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음에도, 부르는 가수마다 느껴지는 제주의 계절이 달랐다. 성시경은 봄의 제주, 태연은 여름의 제주, 소유는 가을의 제주를 노래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누가 불렀는지에 따라 느껴지는 계절이 달랐던 만큼, 계절마다 물씬 풍기는 제주의 정취 또한 달랐다.


혼저옵서예

꼭 혼자 와달라는 말처럼 보이는 혼저옵서예는 제주도 방언으로 '환영합니다'라는 뜻이다. 제주에 혼자, 그리고 평소와는 다른 지금 여기, 그리고 제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떠나보자. 제주가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도시작가는 도시 곳곳의 로컬 공간들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크리에이터 그룹입니다. 주변 환경과 분위기, 사람이 서로 영향을 받으며 완성되어가는 특별한 공간에 주목해요. 공간 공유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가 특별한 장소들을 제대로 나누기 위해 '도시작가'와 함께 로컬 공간 이야기를 수집합니다.



제주 골목길을 걷다보니,
'아. 내가 지금 제주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순간 입가에 미소가 올라간다.




#스페이스클라우드 #도시작가 #아라동 #브이랩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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