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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Dec 13. 2018

영화 <로마>,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영화 <로마(Roma, 2018)>, 알폰소 쿠아론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영화 <로마>(2018)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탈리아 로마가 아닌 멕시코 시티 내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무심히 흘러가는 우리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누구도 같거나 비슷하지 않고 결코 평범하지도 않다. 영화는 1970년대 격동의 멕시코에서 한 집의 가사도우미로서, 한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클레오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시절 가정부였던 리보 로드리게스(이하 리보)를 바탕으로 완성된 캐릭터다. 영화의 축이 되는 몇몇 이야기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가장이자, 가장이 돼야 하는 남자들은 여자들로부터 떠난다. 소피아(마리나 데 타비라)의 남편은 출장을 핑계로 외도를 일삼으며 가족의 품에서 떠났고, 클레오의 남자 친구 페르민(호르헤 안토니오 게레로)은 클레오가 덜컥 임신하자 그녀의 곁에서 도망친다. 감독의 유년시절 그의 아버지는 가족을 떠났고, 리보의 남자 친구 또한 그녀 곁을 떠났다.  


영화 <로마>는 절제하고 감추고 생략함으로써 대중들의 마음속 빈틈을 파고든다. 배경음악은 철저히 절제되었고, 흑백영화로써 색감은 감췄다. 그리고 여자들은 도망친 남자들의 대답을 생략한 채 현실을 묵묵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영화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멕시코 학생들이 정부군과 맞서 시위하는 모습을 이따금 드러내는데, 감독은 이를 클레오의 시선으로 불안한 1970년대 멕시코 사회와 불안정한 한 가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다. 흡사 1950년대까지 중국과 교전으로 긴장상태를 유지한 모습을 담은 에드워드양 감독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연상되기도 한다. 두 영화는 불안정한 사회의 불안감이 개인에게 얼마나 빠르게 전염되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사회와 가정, 그리고 한 개인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오프닝 장면에서는 청소하는 듯한 주차장의 바닥을, 엔딩 장면에서는 하늘을 지그시 응시하는데 이는 남편을 잃은 소피아와 아이를 잃은 클레오가 불안하고 불안정한 현 상황에서 고개를 떨구며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갈 것임을 암시한다.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클레오는 영화에서 단 한 번 속내를 드러낸다. 소피아가 잠시 자동차 수리를 하러 가는 사이에 물속에 들어간 아이들이 위험에 빠지자 클레오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로 과감하게 뛰어든다. 수영을 하지 못해 물이 두려운 그녀였다. 그럼에도 두 아이를 구하기 위해 그녀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두려움과 맞서면서 아이들을 구해낸다.




영화의 메인 포스터로 사용된 이 장면에서 클레오는 아이를 갖기 싫었다며 울부짖는다. 멕시코 시티의 로마에서 한 가정의 보모로, 한 여자로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그녀에게 늘 작고 큰 파도가 출렁였다. 아이를 낳기 싫었지만 남자친구 페르민의 아이를 덜컥 임신했고, 그는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떠났다. 수소문 끝에 그를 찾았지만 그는 그녀에게 문전박대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떠한 변명도 요구하지 않고 한 아이의 생명을 고스란히 책임진다. 페르민은 사무라이 정신을 본받아 무술을 연마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한 가정에서 도망친 그는 멕시코 우익 세력의 정치 깡패가 되면서 사회로부터 다시 한번 도망친다. 페르민은 학생 시위를 진압하던 중 다시 클레오와 마주하게 되는데 그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클레오는 아이를 잃게 된다. 페르민은 클레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두 번이나 안겨준 셈이다.



클레오는 자신보다 항상 자신이 맡은 것들에 대해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클레오가 리보였듯이, 아마 저 네 명의 아이 중 한 명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유년시절 모습을 그려내지 않았을까. 소피아의 집에서 보모로 일하는 그녀는 소피아의 자식들을 본인의 자식처럼 귀중하게 생각하며 항상 벗이 되주던 그녀였다. 엔딩크레딧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리보를 위하여'는 상실의 시대를 살아야했던 감독의 유년 시절에 온갖 슬픔에도 묵묵히 모든 것을 감내할 줄 아는 리보를 생각하는 감독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클레오가 소피아의 아이들로부터.

리보가 감독에게, 감독이 리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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