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증인>, 이한
누군가가 내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나쁜 면도 있고, 나쁜 사람이라고 하기엔 딱히 잘못한 것도 없다.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지내면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자신에게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타인에게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일까. 점심 메뉴를 고르는 것처럼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은 애매하다. 어렸을 때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내고 싶었다. 누구와도 트러블 없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내가 원하는 목표를 하나둘 쌓아가길 원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책 <쇼코의 미소>, 최은영
그건 어려웠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학창 시절 영원할 것 같았던 친구들도 다른 학교로 진학하면서 자연스레 멀어졌고,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 관계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내가 먼저 떠난 경우도 있지만, 고스란히 남겨진 경우도 있었고, 서로가 맞지 않아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싫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좋은 사람'의 반대말은 '싫은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영화 <증인>에서 순호(정우성)는 과거 민변 활동을 하면서 오랫동안 신념을 지켜왔지만 이제는 현실과 타협하고 속물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현재는 대형 로펌에서 거액의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던 중 자신의 출세가 걸린 '80대 치매 노인 살인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되고,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를 증인으로 내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순호는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 지우를 어떻게 증인으로 세울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지우는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해있어 순호와 소통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서 기필코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우와의 소통은 필수였다. 순호는 매일 같이 지우가 다니는 학교와 집 등을 따라다니면서 그 날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자 귀 기울인다. 시간이 흘러 지우와 대화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침잠해있는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힌트를 주변 사람들에게 얻고 지우의 세계를 이해하면서 조금씩 다가간다. 하지만 두 사람은 법정에서 변호사와 증인으로 마주해야 했다. 서로 서는 위치가 달랐다. 지우를 이해하는 척 구슬려서 결국 법정에 그녀를 증인으로 세웠지만, 그곳에서 '자폐아'라는 한계로 그녀를 몰아세워 가해자가 무죄를 받을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선점했다.
순호는 파트너 변호사가 되기 위해 자폐아인 지우를 이용했다. 점점 나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녀를 이용하면서 파트너 변호사에는 한 걸음 가까워졌지만 순호의 마음속에는 지우가 던진 한 마디가 걸린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평범한 사람이 던진 한 마디였더라면 그저 한 귀로 들었겠지만, 거짓말하지 못하는 자폐아 소녀가 던진 한 마디였다. 과거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민변 활동을 하며 주변을 살피면서 지킬 것은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것에만 눈이 멀어 본인의 출세에 도움되는 일만 좇고 있다. 속물이 되었어도 민변 시절 함께 활동했던 사람들은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는 이제 그와 비슷한 속물뿐이다. 과연 그는 지우가 던진 '좋은 사람'이라는 질문에 어떤 행동으로 답할까.
영화 <증인>. 2019년 2월 13일 개봉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시사회로 먼저 만난 작품입니다.
한줄평
누군가에게 싫은 사람은 되어도 나쁜 사람은 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