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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r 07. 2019

다른 건 다 사도, 시간은 못 사겠더구나.

영화 <라스트 미션>(The Mule, 2018), 클린트 이스트우드

※ 이 글은 영화 <라스트 미션>(The Mule,2018)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문제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문제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지도 모를 때 찾아오는 막연함은 그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 영화 <라스트 미션>에서 얼 스톤(클린트 이스트우드, 이하 얼)은 12년째 딸(엘리슨 이스트우드)과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는다.



늘 곁에 있는 가족보다 당장 돌보지 않으면 피지 못하는 백합에 정성을 쏟은 결과다. 꽃을 피우는 일만큼 남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런 얼의 모습이 가족의 눈에는 가장으로서 책임은 회피하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자유인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는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손녀의 결혼식에서 아내와 단둘이 이야기하던 중 '그래도 처음 10년은 좋았잖아'라는 말처럼 처음에는 가족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이후 꼬여버린 실타래처럼 그는 지금 가족과 관계를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의 관계만큼 원예업도 점점 기울었다. 과거 호황기를 누리던 원예사로서의 삶은 인터넷의 발달로 더 이상 누리지 못한다. 농장을 정리하며 직원들에게 마지막 월급을 주고, 집은 빚을 갚지 못해 압류처리가 되었다. 그나마 꽃을 피워내면서 받은 돈이 가족과의 유일한 연결고리였는데 그마저 끊기게 된 셈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운전만 하면 돈을 준다는 멕시코 청년의 제안을 고민 끝에 수락한다. 돈을 벌어서 다시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마음먹는다. 그런데 그 일은 알고 보니 미국과 멕시코를 오고 가며 마약을 운반하는 '마약 운반원'이었다. 그는 이제 87세의 나이로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마약을 운반한다.


'마약 운반원'이라고 할 것 같으면 멕시코, 필리핀과 같은 유색 인종의 젊은 남성이 떠오른다. 나만 그런가 싶어 글을 쓰는 중에 주변 사람들에게도 물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본 적 없지만 자연스럽게 그들을 가리킨다. 바로 그 편견 때문에 멕시코 마약 조직은 얼을 마약 운반원으로 기용한다. 그는 백인이었고, 노인이었다. 그리고 가족과의 관계가 좋지 못하니 그들이 찾을 일이 없고 지금 돈이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편견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다.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 콜린 베이츠(브래들리 쿠퍼)는 멕시코 마약 조직을 수사 중 '할배'라는 닉네임을 가진 '마약 운반원'이 대량의 마약을 운반한다는 단서를 얻는다. 하지만 그 '할배'가 정말 할아버지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만의 암호일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혀 수사를 진행한다. 마약을 옮기기로 계획된 모텔을 알아내고도 아이와 함께 있는 부모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하고, 범죄 경력이 있을 것 같은 백인 남자와 멕시코 남자에 집중한다. 얼은 백인 그리고 노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수사망에서 교묘히 빠져나간다.



얼은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에 맞게 배달을 원하던 멕시코 조직원들과 달리 그는 마약을 운반하다가 타이어가 펑크 나서 어쩔 줄 몰라하는 흑인 부부를 도와주고, 맛집이 있으면 꼭 들러서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그가 풍기는 편견(백인, 노인, 예측 불가능)은 마약 운반원으로서 적격이었다. 도로에서 백인 노인이라는 이유로 의심을 덜 받고, 매번 시간을 어기기 때문에 잠복해있던 경찰의 시선을 피해 무사히 배달할 수 있었다.


그가 남들에게 가지는 편견도 오히려 그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변명하거나 숨기지 않고 타인에게 서슴없이 말했다. 도움을 주고 있는 흑인 부부에게 니그로(Nergo)라는 말을 거침없이 쓰고, 총을 겨누며 위협하고 있는 멕시코 마약 조직원에게 '멕시코인들은 얼굴이 다 똑같아'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다소 의외의 상황에서 비치는 그의 편견이 영화를 보는 중에 웃음 짓게 만든다.  



얼은 마약을 운반하고 받은 금액을 확인할 때마다 매번 액수에 놀란다. 그 돈 덕분에 문 닫을 위기에 처한 참전용사회를 일으켜 세우고, 좀 더 튼튼한 차로 바꾼다. 그는 이제 많은 것을 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었다. 과거 41개 주를 돌아다닐 만큼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그는 다시 길 위에 서있다는 그 자체로 이미 지금의 일을 즐기고 있었다.



다른 건 다 사도 시간은 못 사겠더구나


나날이 운반하는 마약의 무게를 갱신하면서 그가 받는 액수도 평소에 쉽게 만지지 못하는 거금이 되어간다. 그러던 중 암 투병 중인 아내가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자 얼은 고민에 빠진다. 운반을 중단하고 가족에게 가면 본인의 목숨이 위험해진다. 하지만 지금 가족에게 가지 않으면 더 이상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는 결국 자신의 목숨을 건 마지막 미션으로 투병 중인 아내에게 가기로 한다. 가족과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해 시작한 마약 운반을 통해서 받은 돈으로 다른 건 다 살 수 있었지만 관계를 돌릴 수 있는 시간은 사지 못했다며 참회하듯 내뱉은 얼의 진심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중요한가 되돌아보게 만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 2008) 이후로 10년 만에 본인이 감독한 영화 <라스트 미션>(The Mule, 2018)의 주연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2014년 뉴욕 타임스에 실려 큰 화제를 낳은 87세 마약 배달원 '레오 샤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87세의 레오 샤프' 역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영화 속에서 그가 풍기는 표정, 몸짓, 말투가 레오 샤프를 따라 하는 연기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어느덧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나이가 엿보인다. 어쩌면 그가 출연하는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 <라스트 미션>이 유난히 슬퍼 보이는 까닭이다.


2019년 3월 14일 국내 개봉.




(영화사로부터 소정의 지원금을 제공 받았으며, 주관적인 견해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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