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질경찰> (2018)
※ 이 글은 영화 <악질 경찰>(Jo Pil-ho: The Dawning Rage, 2018)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 항상 이 문구가 나타난다. 이제는 더 이상 저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이미 영화가 현실인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되려 영화가 현실보다 약한 경우도 많았다. 2015년에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를 보면서 "저런 일이 말이 돼?"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은 내 생각을 비웃었다. 되돌아보니 영화는 현실의 미화 수준에 그쳤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정부의 무능한 대처로 인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많은 아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 말하고 침몰하는 배에서 혼자 탈출한 어른, 구조는 하지 않고 주변 통제만 하던 어른, 상부에서 명령만 떨어지기를 기다리던 어른까지 온통 무능하고 무기력했다. 그 당시 상황을 지켜보며 영화 <악질 경찰>의 고등학생 미나(전소니)의 말을 빌려 "너희 같은 것들도 어른이라고"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TV와 신문 등 언론 매체를 통해 비친 세월호 참사는 마치 대한민국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그로 인해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고를 지켜본 많은 어른들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영화 <악질경찰>에서 조필호(이선균)가 왜 악질 경찰이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영화에서 철저히 생략한다. 덕분에 관객들은 스크린 속에서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도 동정심을 느끼지 못한다. 앞선 사고를 두 눈으로 지켜보면서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을 본 것처럼, 경찰이 경찰답지 못한 모습은 너무 익숙하다.
태성그룹 정이향 회장(송영창)은 태성 장학회를 통해 매년 우수 고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전국에서 버스를 타고 태성 그룹 본사로 모인 학생들은 저마다 들뜬 표정을 짓고 있다. 태성그룹에서 수여한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커서 사회 지도층이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일할 것인지는 너무나 뻔하다. 비단 영화에서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은 아닐 거다. 불법 비자금 7,800억 조성 의혹으로 검찰에게 수사를 받던 정 회장의 영장은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된다. 검찰답지 못한 검찰 덕분이다.
영화 <악질 경찰>은 개봉 전부터 '범죄 드라마'라는 장르에 세월호 참사라는 다소 민감한 소재 때문에 논란이 많았지만, 영화를 연출한 이정범 감독은 2015년 단원고를 방문한 이후 침묵을 선택하기보다 논란의 중심에서 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세월호 유족들 또한 "잊히는 게 가장 두렵다"며 이 감독의 결단에 힘을 실어줬다.
세상에 '최악'과 '차악'만 남아있다면 우리는 '차악'을 응원할 것이다. '선'은 아닐지라도 그나마 주어진 선택에서 '선'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태성그룹과 맞서 싸우는 악질경찰 조필호를 응원하고, 논란의 중심에서 이 영화를 제작한 이정범 감독을 응원할 수 밖에 없는 건 현재 상황에서 틀린 것에서 덜 틀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에서 "이 영화는 사실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던진 메시지를 그저 영화 속 시나리오로 가두어버린다면 힘이 빠졌을지 모른다. 어쩌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고 나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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