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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08. 2019

자연은 항상 우리 곁에 머물러있다.

영화 『물의 기억』(2019), 진재운

벌써 10년 전이다. 그날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교지편집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며 토요일 아침부터 취재차 월미공원에 올라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생수와 간단한 주전부리를 팔고 있던 공원 매점에서 틀어놓은 라디오는 지지직 소리를 내며 특별할 것 없는 뉴스를 끊임없이 전하고 있었다. 그 뉴스에 별로 신경 쓰고 있지 않다가, 갑자기 아나운서가 던진 한마디에 쫑긋 귀를 기울였다.


"속보입니다"



2008년, 퇴임 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故 노무현 대통령은 오랜 숙원인 친환경 생태 사업을 시작했다. 그전까지 봉하마을에서 남동쪽으로 약 1km 정도 떨어진 화포천 습지는 근처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오폐수와 쓰레기로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다. 청와대에서도, 퇴임 후 봉하에서도 끔찍이 아끼던 손녀를 자전거 뒤에 종종 태우고 다녔던 故 노무현 대통령은 자연을 복원시켜 손녀와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은
어릴 때 개구리 잡고 가재 잡던 마을을 복원시켜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것이 제일 좋겠다.


들판의 모습을 부감샷으로 볼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아름다운 자연과 건강한 먹거리를 물려주고 싶다던 故 노무현 대통령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영화 『물의 기억』은 그가 10년 전 꿈꿨던 미래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쓰레기로 가득했던 화포천은 지역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정화 노력으로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멸종위기종인 황새가 일본에서 찾아오고,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기사)'에도 선정되며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해충을 보이는 대로 다 잡아먹더라.


봉하마을에서는 인위적으로 비료와 농약을 쓰는 대신 살아있는 생명을 활용하여 해충을 없애는 '생명 농법'을 통해 농작물을 길러내고 있다. 영화 『물의 기억』에서는 논에 오리와 우렁이를 풀어 병충해와 잡초를 잡아먹게 하는 오리 농법과 우렁이 농법을 초밀착해서 세밀하게 보여준다. (영화를 연출한 진재운 감독은 이를 "전지적 현미경 시점"이라고 불렀다.)


개구리 VS 사마귀


영화 『물의 기억』 제작팀은 봉하마을 주민들의 배려로 1년 동안 봉하마을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진재운 감독은 출퇴근하면서 촬영했다면 보지 못할 여러 장면들을 볼 수 있어서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영화에서 앞집게를 제외하고 거미줄에 꽁꽁 둘러 싸인 사마귀와 거미의 목숨을 건 싸움은 흥미진진했다.)



꽁꽁 언 땅에서 벼가 싹을 트고, 고개를 숙일 때까지 그 속의 자연은 끊임없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렀다.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보지 못할 동식물을 스크린을 통해 오랜만에 지켜보니 어린 시절 마을 하천에서 가재 잡고 놀던 기억이 났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2009년에도, 내일로 여행을 하면서 잠시 봉하에 들렀던 2013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봉하의 자연은 끊임없이 우리 곁에 머물면서 숨 쉬고 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던 그 선물은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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