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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17. 2019

오늘도 잠이 오질 않아 불행을 샀다.

책 『굿 라이프』를 읽고

오늘도 잠이 오질 않아 불행을 샀다.


누구랑 내기한 것도 아닌데 일찍 자면 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켰다. 딱히 보고 싶은 건 없지만 재밌어보이는 프로그램을 하나 찾아 감상한다. 한 시간이 삭제됐다. 어차피 삭제된 김에 한 시간 더 지를까 고민하지만 내일 피로에 쩔어있을 모습이 상상된다. 아쉽지만 넷플릭스는 여기까지. 아직 잠들고 싶지 않아 지마켓에 들어가본다. 사고 싶은 건 많지만 월급이 리필될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그냥 나오기는 아쉬워 충전 케이블을 하나 결제했다. 물론 무료배송으로. 마지막으로 오늘 하루만 해도 수백 번은 접속했을 SNS에 들어간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 그곳에서는 너무나 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잠자리에 들면 잠을 미루는 이런 행동들이 의도치 않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의식(Ritual)이 됐다. 그렇게 오늘도 잠이 오질 않아 불행을 샀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PANAS 감정목록

심리학에서 행복한 감정을 측정할 때 PANAS¹라는 도구를 주로 사용한다. PANAS는 일정 기간 동안 개인이 경험한 긍정 감정과 부정 감정의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다.


행복한 감정 상태를 측정하는 스무 가지 감정을 들여다보면, 놀랍게도 ‘행복하다’는 감정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불행하다’는 감정 역시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는 행복한 감정 상태가 행복이라는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하는 상태(혹은 불행이라는 개별적인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 상태)가 아님을 의미한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니라 PANAS에 제시된 열 가지 긍정 정서, 더 나아가 PANAS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우리를 기분 좋게 하는 다른 많은 긍정 정서를 경험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책  『굿 라이프』


우리는 행복을 단 하나의 개별적 감정으로 좁게 이해한다. 이미 일상에서 충분히 행복을 누리면서도 어딘가에 숨어있을 거라는 생각에 막연히 찾아 나서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행복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곳곳에 널려 있다. 행복을 측정하는 PANAS 감정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은 개별적 감정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긍정 감정 중에서도 어떤 감정이라도 행복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겸 행복연구센터 센터장 최인철 교수는 "행복이라는 단어의 정의는 모호하다. 쾌족(快足)이란 이름으로 바뀌어야 한다. 쾌족(快足)은 지금 기분이 쾌하고, 삶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에서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한다”라면서 “무언가에 관심이 있고, 영감을 받고, 경외감을 느끼며,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게 바로 쾌족이다"라고 말했다. ²


행복은 '기분 좋음'이다. 책  『굿라이프』 에서 최인철 교수는 이를 쾌족(快足)이라고 부른다.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금 당장 떠올려보면 어느 것 하나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이 닥치면 기분이 좋지만 막상 그 순간을 떠올리는 건 좀처럼 어렵다. 그래서 행복은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수집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 목록


나를 기분 좋게 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걸어가는데 그 앞에 사람들이 가득 서있다. 내가 도착할 때쯤 초록불로 바뀔 확률이 높다. 사소한 일이지만 기분이 좋다. <보헤미안 랩소디>, <알라딘> 같이 음악이 주가 되는 영화를 관람할 때면 메가박스 MX관으로 향한다. 사운드 특화관이라 평소보다 두 귀가 더 쫑긋하게 된다. 콘서트장에 온 느낌이 들어 더욱 집중해서 영화를 관람한다. 기분이 약간 울적하거나 일하다가 집중력이 떨어질 때는 노트를 펼치고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한다. 이때는 하루 종일 쥐고 있던 스마트폰도 잠시 내려놓는다. 집중하고 있는 그 몰입감이 나를 위로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목록을 보고 공감하거나 다른 기분 좋은 일이 생각난다면 바로 그게 행복을 부르는 목록이 된다. 모르면 우연히 찾아와야 행복하지만, 알고 있으면 내가 원할 때 먼저 행복을 부를 수 있다. (행복은 행운이 아니다)


비교도 습관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은 비교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상대방의 마른 몸매를 부러워하고, 높은 연봉을 부러워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부족하거나 없는 것만 끊임없이 골라내 불행을 더한다. 비교를 통해 구입한 불행 때문에 '부정 감정'은 더욱 극대화한다. 비교가 나쁜 것임을 알면서도 그 과정은 끊임없이 반복한다. 불행에 있어서 스스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셈이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소유의 영역에서 살면서 비교하지 않으려고 결심만 한다. 행복한 사람은 애초부터 비교가 일어나지 않는 경험의 영역에서 살아간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소유를 늘려 타인을 위협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경험을 늘려 관계를 강화한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소유를 통해 정체성 결핍을 은폐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구축한다. 결정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돈으로 경험을 사서 삶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낸다. 그들은 장식거리보다는 이야깃거리가 우리를 훨씬 더 행복하게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 책  『굿 라이프』


미국 습관 전문가 그레첸 루빈이 쓴 책  『나는 오늘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 에서는 나쁜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으로 '절제형'과 '포기형'을 소개한다. 절제형인 사람은 적당히 욕구를 충족시킬 때 성과가 좋은 사람이다. 반면 포기형은 모 아니면 도인 습관을 잘 지킨다. 포기형에 비해 절제형이 좋아 보인다고?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게임을 좋아해서 오래전부터 게임을 하지 않는다. 너무 좋아해서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하기에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게임을 할 때 '신나는', '열정적인'과 같은 긍정 감정도 들지만, 마음속에 "곧 자야 하는데..", "좀 이따 할 거 있는데.."를 생각하면서 '조바심 나는', '불안한'과 같은 부정 감정도 함께 찾아온다. 절제형인 사람은 퇴근 후 1~2시간 정도 게임하고 행복을 얻어 일상생활로 복귀하지만 나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게임을 포기했다.


부정 정서가 강한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어느새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비교 프레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나를 발견한다. 그 날은 잠이 오지 않아 SNS에 들어갔다가 해외여행 중인 친구의 소식을 본다. 행복해 보이는 친구와 달리 나는 내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지옥철을 뚫고 출근해야 한다. 그 사실을 떠올리니 갑자기 우울해진다. 지금 이 우울함은 내 잘못인가, 아니면 친구의 잘못인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파악조차 어렵다. 다시 부정 정서로 향할 뿐이다.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우리의 얼굴은 누군가에게는 탁월함의 기준을 높이는 자극이 되기도 하고, 그 기준을 낮추는 자극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탁월함에 대해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탁월한 사람들 옆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탁월해질 가능성이 높다. 안주하는 사람들 옆에서 시간을 보내면 안주하는 삶을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 중 누군가는 탁월함 유발자이고, 누군가는 안주함 유발자인 셈이다.

― 책  『프레임』, 최인철


 잠들기 전에 접속하는 SNS는 잃는게 많다. 밤에는 접속을 자제한다. 그 친구를 만나면 부정적인 이야기만 가득하다. 만나는 횟수를 줄이거나 관계를 끊는다. 행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긍정 감정을 가까이하고 부정 감정을 멀리한다.


그 과정에서 내게 맞는 적합한 전략을 구사한다. 절제가 된다면 '절제형'을, 절제가 되지 않는다면 '포기형'을. 여기서 포기는 영원한 포기가 아니다. 바디 프로필을 찍기 위해 잠시 탄산을 끊는 것처럼 일정 시기에만 유효한 포기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제 행복해지기 위해서 불행을 더이상 구입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흔들릴 '나'라는 과목을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이 과목은 필수 과목이다.


인간은 모두 이론가다. 이론가답게 우리는 각자의 이론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이 각자의 행복을 만들어간다. 따라서 원하는 만큼의 행복을 누리고 있지 못하다면 자신의 기질이나 환경이 문제일 수도 있지만, 행복에 대한 자신의 이론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

―책  『굿 라이프』




1. 정적 정서 및 부정 정서 척도 (PANAS, Positive Affect and Negative Affect Schedule)

2. 최인철(2018.1.6). 행복은 쾌족(快足)이다. BI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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