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Apr 16. 2019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

책 『오리지널스』를 읽고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가장 기분 좋은 순간은 언제일까. '브런치북'이나 '출간'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브런치 메인에 글이 게시될 때다. 2016년 12월 13일에 삼수만에 작가로 선정되어 그때부터 꾸준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처음 신청할 때는 티스토리를 운영하고 있어서 쉽게 생각한 나머지 건성으로 신청했다 떨어졌고, 두 번째는 '도대체 기준이 뭐야?'라는 분노를 담아 썼지만 떨어졌고, 세 번째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덕분에 통과했다.


※ 약 1년 뒤에 브런치 총괄 기획자 황선아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때 브런치 작가 선정 기준에 대한 답변을 들은 적이 있었다. 등단 시인이든 일반인이든 상관없이 제출한 '글'로만 평가한다고 했다.  



산 넘어 산이었다. 브런치 작가는 됐지만 구독자 300명을 찍기까지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적지 않은 수치였지만 여전히 목말랐다. 성취 욕구가 강해 일단 1차 목표로 구독자 1,000명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페이스로는 2020년에 도쿄 올림픽이 열려야만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 <오리지널스>에서 애덤 그랜트는 독창성을 '특정한 분야 내에서 비교적 독특한 아이디어를 도입하고 발전시키는 능력, 또는 그런 아이디어를 개선할 수 있는 잠재력'이라고 정의한다. 글쓰기에서는 아이디어가 글감이 된다. 훌륭한 요리사가 신선한 재료를 먼저 알아보듯, 좋은 글감은 출간 작가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일반인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거라고. 나에게 그런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 건 글 쓰는 재능이 부족함을 나타내는 거라고 믿었다. 글을 쓸 때마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나를 괴롭혔다.


수없이 많은 개구리에게 입맞춤을 해봐야, 그중에 왕자를 하나 찾아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200자 원고지 20매를 채운다.

셰익스피어는 20여 년에 걸쳐 희곡 37편과 154편을 썼다. 피카소가 남긴 작품 목록에는 유화 1,800점, 조각 120점, 도자기 2,800점, 드로잉 1만 2,000점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중 아주 극소수만 사람들에게 인정받았다. 셰익스피어와 피카소는 모든 작품이 유명하고 독창적일 거라는 내 생각은 착각이었다. 나는 주변만 몇 번 서성이다가 왕자를 찾을 수 없다고 한탄만 하고 있었다.


독창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작업량을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말이다”라고,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can Life)〉와 팟캐스트〈시리얼(Serial)〉의 프로듀서인 아이라 글라스(Ira Glass)는 말한다.

― 책 『오리지널스』 中


수없이 많은 개구리에게 입맞춤하는 것은 일단 글을 많이 쓰는 일이었다. 양(量)적인 것들이 쌓이면 어느 한순간 질(質)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양질 전환(量質轉換)의 법칙을 따르기로 했다. 그 결과 2018년 한 해동안 주야장천 브런치에 148편의 글을 썼다. 1주일에 2~3편씩 쓴 셈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나 피카소처럼 독창적인 사람이 되었느냐고? 아쉽게 그렇지는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게 얻었다.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있는 감을 터득했다. 책 <오리지널스>에서는 생소한 아이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을 더 편하게 느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횟수를 늘려 일단 대상을 익숙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이디어를 이해하거나 만드는 것에 있어서 사고하는 방식이 좀 더 자유로워진다.


호기심은 왜 애초에 현재 상태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의문을 품는 행위이다. 우리는 ‘기시감旣視感, déjà vu’의 정반대 현상인 ‘미시감未視感, vuja de’을 경험할 때 현재 상태에 의문을 품게 된다. 기시감은 우리가 새로운 것을 접했을 때 전에 본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현상을 말한다. 미시감은 그 반대다. 늘 봐온 익숙한 것이지만,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봄으로써 기존 문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해결함을 뜻한다.

― 책 『오리지널스』 中


내가 터득한 감은 책에서 설명한 '미시감'과 비슷했다. 늘 봐온 것은 익숙하다. 익숙하면 호기심이 사라지고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어떤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게 된다. 익숙한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낯설게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하다>의 배경이 되었던 이 날에는 책 『일취월장』을 읽고 있었다


2018년 새해가 밝고 브런치에 처음 발행한 글은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하다>였다. 2017년 한 해동안 꾸준히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했지만 그 과정을 글감으로 써보겠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다. 집에서는 생산적인 일이 되지 않아 그저 매일 스타벅스에 갔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판교에서 외근을 마치고 스타벅스에서 책과 바인더, 서피스 등을 꺼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왜 이렇게 짐이 많지?"


매일 같이 보던 대상이었는데도 이 날 갑자기 낯설어졌다. 회사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스타벅스에서 읽고 쓰고 기록하기 위해 가방에 보관하던 짐들이었다. "뭐라도 하기 위해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구나"라는 생각이 곧 글로 탄생했다.



어느 날 갑자기 기발한 생각이 번뜩 떠오르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천천히 꾸준하게 실험을 계속하는 것이 독창성을 오래도록 발휘할 수 있는 방법이다.

― 책 『오리지널스』 中


꾸준하게 쓴 글은 가끔 달콤한 열매로 결실을 맺었다. 작년에 쓴 148개의 글에서 무려 10개가 브런치 메인에 올랐다. 덕분에 처음 목표였던 구독자 1,000명을 쉽게 달성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큰 것을 얻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틀리지 않았고 꾸준히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었다. 자신감을 통해 안정감이 확보되니 처음에 나를 괴롭혔던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했다.


양과 질은 서로 상충 관계(Trade-Off)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다. 어떤 일을 더 잘하기를 원한다면, 즉 결과물의 질을 높이려면, 다른 일은 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아이디어 창출에서는 양이 질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이다.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변형되거나,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거나, 완전히 실패작인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낸다. 하지만 이는 결코 헛수고가 아니다. 그만큼 재료로 삼을 아이디어, 특히 참신한 아이디어를 많이 생각해내게 된다”라고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는 지적한다.

― 책 『오리지널스』 中


작년에 약 30명 정도의 주변 사람들에게 취향에 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귀찮을 법도 한데 내가 준비한 문항에 꼼꼼하게 답변해줬다. 나온 결과를 토대로 글을 썼다. 그렇게 탄생한 글이 <공간의 취향>과 <여행의 취향>이었다. 두 글 모두 브런치 메인에 올라갔고, 설문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다. 다들 자기 일인 마냥 기뻐해줬다. 주제를 정하고, 문항을 기획하고, 설문을 수집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글로 쓰기까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지 않았다. 그 방식은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독창적인 내 방식의 글쓰기가 되었다. 뭐라도 하면 뭐라도 된다.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대교 #오리지널스

매거진의 이전글 미래의 행복을 예측하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