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서용마 Oct 23. 2018

공간의 취향

공간 큐레이션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같은 공간을 이용해도 각자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붐비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한가롭고 조용한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쉽게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공간에 대한 각자의 취향은 획일화되어 있지 않다. 사람들이 공간에 대해서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2018년 10월 21일 저녁부터 23일 아침까지 운영중인 모임과 친구들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 글에서 얘기하는 공간은 카페뿐만 아니라 공유 오피스, 코워킹스페이스도 중의적으로 의미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35명 중 여성(21명)이 남자(14명)보다 많았고, 나이대로 보면 30대(20명)가 가장 많았고 그 뒤로 20대(10명)가 뒤따랐다. 공간을 이용할 때 고민할만한 요소를 질문으로 골라 총 10가지 질문을 던졌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공간 기획자의 취향이 묻어나는 개인공간을 좋아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개인 카페보다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많이 찾는다. 하지만 설문조사에서는 공간 기획자의 취향이 묻어나는 개인 공간을 좋아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답했다.(71.4%) 개인 공간은 가고 싶어도 먼 곳에 위치해 쉽게 가지 못하고,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평소에 눈에 쉽게 띄는 프랜차이즈 공간을 자주 가는 것으로 예측된다.


 


 사람들은 당장 작은 불편함이 있더라도 매니저가 눈에 띠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51.4%)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던 내가 불편할 때 바로바로 얘기할 수 있게 근처에 있어야 한다는 내 예측이 틀렸다.(14.3%) 많은 사람들은 매니저와의 거리가 멀수록 좋아했고, 공간이 층마다 분리되어 있거나 매니저가 보이지 않는 별도의 방에서 작업하는 것을 선호했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감독 웨스 앤더슨)에서 호텔 지배인 M. 구스타브는 로비보이 제로에게 '로비보이는 투명인간처럼 안 보이지만 항상 시야에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라고 얘기한다. 사람들은 공간에서 오는 불편함보다 매니저와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더 크게 느낀다. 정말 큰 불편함을 초래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댄 윌로비(Dan Willoughby), 상수

 도시작가들과 함께한 누군가의 작업실 탐험 <작가 상수씨의 일일>에서  윌로비라는 지하 작업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제이를 만났다. 제이는 윌로비에 하루에 신경 쓰는 시간이 40분에서 많아야 1시간 30분 정도라고 했다. 상수 이전에 한남에서 윌로비를 운영했을 때도 게스트들에게 이 공간을 선택한 이유를 물었더니, 대부분이 공간을 관리하는 매니저가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매니저가 가까이 있으면 감시받는 느낌이 들어 싫다는 사람이 많았다. 공간을 선택할 때 눈치 보지 않고,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필요할 때만 공간 매니저와 대화한다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서른 다섯명 중 단 세 명만 매니저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편이라고 했다.(8.6%) 많은 사람들이 공간 매니저와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불편하게 느꼈다. 공간을 이용하다 불편한 점이 있다면 매니저를 통해 해결하는 것은 괜찮지만, 매니저가 먼저 와서 불편한 점이 없는지 묻는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니스프리의 언택트 마케팅 '혼자 볼게요(I CAN DO MYSELF)'

 이제 대부분의 패스트푸드점에서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다. 많은 기업들이 접촉에 불편함을 느끼는 소비자를 위해 언택트 마케팅(Untact Marketing)*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이니스프리에서는 두 종류의 바구니가 매장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쇼핑할 때 직원이 다가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들은 '혼자 볼게요', 직원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바구니를 들면 직원들이 손님의 바구니의 색을 보고 쇼핑의 편리성을 배려하고 있다. 언택트 마케팅은 앞으로 공간 매니저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기꺼이 배려하기보다, 배려하지 않는 것이 배려인 세상이 되고 있다.


*언택트 마케팅(Untact Marketing)

언택트란 접촉을 뜻하는 'Contact'에 부정 접두사 'Un'이 붙은 신조어로 사람 간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직원과의 접촉이 없는 서비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강남에서 3년째 모임을 운영하면서, 모임 공간을 선택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성비였다. 가격이 제일 저렴해도 단점이 많으면 배제하고, 기본은 하면서 그다음으로 저렴한 공간을 택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또한 조금 비싼 돈을 주더라도 쾌적한 프리미엄 공간을 이용하는 것보다 기본을 갖추고 저렴한 공간을 선호했다. (85.7%)


 이용해본 공간 중에 저렴한 공간들이 많았음에도 대부분 장기간 사용하지는 못했다. 공간이 청결하지 않거나, 알바생이 '응대' 자체로도 너무 바빠서 '공간 관리'에 제대로 신경을 못 쓰고, 필요한 물품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 소비자는 '최저가'만 고려하기보다, 가성비가 좋은 공간을 선호한다.

  

 카페를 가면 비어있는 곳 중에 원하는 공간을 몇 시간 동안 점유할 수 있다. 내가 점유한 공간 외에 나머지 공간은 연령도, 성별도, 직업도 다양한 사람들로 채워진다. 조용했다가도, 새롭게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시끄러워지거나, 시끄럽다가도 다시 조용해지는 장소가 카페다. 누구든 언제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분위기 예측이 대체로 불가능하다. 반면 공유 오피스나 코워킹스페이스는 아무나 이용할 수 없고, 공간을 이용하면서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어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멤버십 기반의 코워킹스페이스보다 누구든 음료만 시키면 몇 시간 동안 있는 카페를 선호했다. (77.1%) 전히 국내에서 코워킹 스페이스, 공유 오피스는 낯설다. 설문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 중에서 대다수도 아직 코워킹 스페이스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카페에 익숙한 사람들을 코워킹 스페이스를 경험할 수 있게 '무료 체험'으로 장벽을 낮추는 게 가장 시급해 보인다. 성수와 서울 곳곳에서 워크스페이스를 만들고 있는 얼리브라운지와 압구정 공유 오피스 로프는 처음 방문한 사람들에게 공간 무료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공자가 카페와 코워킹 스페이스의 차이를 설명하는 마케팅보다, 소비자가 공간을 무료 체험하면서 코워킹 스페이스가 카페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는지 스스로 체득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마케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얼리브라운지 성수(좌), 로프 공유 오피스(우)

 회사에서 사무실에서만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출장이나 외근을 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공간을 바꿔가며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가고 싶은 공간의 후보가 몇 개 있고, 날씨, 기분, 느낌에 따라 그 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31.4%) 하지만 이런 선택 자체가 귀찮거나 불편해 가까운 곳에 늘 가던 곳만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익숙함을 무시할 수 없다. (68.6%)



 되도록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30대 이상이 많았다. 반면 공간을 바꿔가며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사람들에서는 20대의 70%*가 선택했고, 30대는 20%**정도 있었다. 40~50대는 만장일치로 '되도록이면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 공간의 취향 설문조사에 참여한 20대는 총 10명, 그중 7명이 공간을 바꿔가며 일하는 것을 선호
** 30대는 총 20명이 설문조사에 참여했고, 4명만 공간을 바꿔가며 일하는 것을 선호


칸막이로 구분되어 있는 공간은 대체로 조용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프랜차이즈 매장을 보면 2~3층을 쓰면서 층마다 분리되어 있는 매장이 있는가 하면, 탁 트인 한 층만 쓰기도 한다.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넓은 매장을 선호하지만, 직원이 보이지 않는 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층마다 분리되어 있는 매장을 좋아한다.

'공간의 익숙함'에서 공간을 바꿔가며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답했던 사람 중 91%가 '공간의 분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이는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모든 사람이 보이는 탁 트인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공간의 창가 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풍경을 보고 싶어 했고 가구, 조명, 소품 등 공간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디테일을 중시했다.(62.9%) 반면 구분되어 있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풍경이나 공간의 분위기보다 본인의 일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가장 우선시했다.(37.1%)


서점의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트렌드를 지향하고 있다. 한때 웰빙 바람이 불더니, 이후에는 미니멀리스트 열풍이 불었고, 요즘의 화두는 바로 '나'에 대한 에세이다.



  웰빙과 미니멀 리스트와 같은 과거의 트렌드는 그 분야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서점 베스트셀러를 독차지했다면, 지금은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의 나에 대한 에세이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확행'이나 'YOLO' 같은 트렌드도 지금 여기서 내가 행복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열풍이 불었다.

 공간을 선택할 때도 네임밸류가 있는 핫플레이스보다 내가 가고 싶은 공간을 더 선호했다.(80%) 몇 년 전부터 압구정의 가로수길을 따라한 거리가 급격하게 늘었다.(샤로수길, 경리단길, 황리단길, etc) 하지만 우후죽순 생긴 많은 거리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고, 그로 인해 건물을 임대해서 매장을 운영하는 세입자와 그 매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만 불편함이 그대로 전가되었다. 제주에서는 교보문고, 영풍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이 생기지 않고, 개인이 운영하는 독립 서점이 힙하다.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자본이 많은 집단의 핫플레이스를 쫓기보다 개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공간을 선호한다. 앞으로 그런 추세는 더 가속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좌석의 편안함보다 콘센트의 존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편한 소파가 있는 곳에는 콘센트가 거의 없고, 다리가 높거나 딱딱한 의자 근처에는 콘센트가 대부분 있다. 대화가 목적인 사람들은 편한 좌석을 선택하는 반면, 노트북이나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충전이 목적인 사람들은 좌석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콘센트를 중요시한다. 콘센트 자리가 없다면 다른 매장을 이용하기도 한다.

 


좌석이 불편해도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54.3%에 달했다. 요즘은 핸드폰에 태블릿, 노트북 등 충전이 필요한 전자기기가 많다 보니 공간을 이용할 때 좌석의 편안함보다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의 존재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공간의 취향에 대한 10가지 질문 중에 '공간의 위치' 답변이 가장 많이 엇갈렸다. 만족하지 않아도 가까운 거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았지만, 거리가 조금 있더라도 만족스러운 공간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보통 거리가 있더라도 찾아가는 사람들은 꼭 그 공간을 이용하기 위해서 간다기보다, 그 지역에 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 1+1로 가는 것을 선호한다. 예를 들면 CGV용산에서 IMAX를 관람하면서 근처인 서울역, 숙대입구 등의 공간을 가거나, 강남에서 친구와 만나면서 집 근처에 없는 무인양품 강남점에서 쇼핑도 같이 하는 식으로 말이다.  





공간의 취향에 대한 10가지 객관식 질문 이외에 어떤 공간을 선호하는지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주관식 답변을 받았다. 특정 공간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편안함', '아늑함', '한적', '편리함' 등의 기분을 중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독특한 답변으로는 공간의 매력보다는 '주차하기 편한 곳'이 있어야 한다는 답변도 있었고, 어디에 있든지 가깝게 이용할 수 있게 얼리브 라운지처럼 여러 지점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 기반의 공간을 선호하는 분도 있었다.


'공간 매니저와의 거리'가 멀수록 좋다고 답변한 사람들은 대부분 감시받는 느낌을 싫어하고, 스타벅스를 좋아했다. 스타벅스는 눈치가 보이지 않고, 넓은 탁자가 있고, 매장마다 편차가 적고, 관리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가장 큰 매력으로 결국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됨'으로 설명된다.


'공간'은 우리에게 꼭 한 가지 목적으로만 사용되지 않는다. 업무를 하거나 취미를 즐기기 위해 이용하거나 친구와의 수다, 휴식을 위해 사용하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이라면 공간을 기획할 때 이 공간에 어떤 사람들이 오길 바라고, 그 사람들의 취향이나 선호도를 파악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것이다. 반대로 공간을 소비하는 사람들도 본인의 취향을 분석해 자신에게 잘 맞는 공간을 찾는다면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 것으로 생각된다.




작가의 이전글 화려함보다 본질에 집중한, 마이워크스페이스 3호점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