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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09. 2019

미래의 행복을 예측하지 않는다.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요즘 행복에 부쩍 관심이 많다. 주변 사람들에게 행복하냐고 뜬금없이 물어보기도 하고, 우리 삶에 행복을 구성하는 요소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 길을 걷다 혼자 생각해보거나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최인철 교수가 쓴 책 『굿 라이프』와 서은국 교수가 쓴 책 『행복의 기원』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한 <행복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점검할 것>이라는 글도 발행했지만 행복에 대한 궁금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좋아하는 작가가 내게 말했다.
“즐거울 때 글이 나오나요?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이유가 없어요.”  
내가 글을 쓰는 순간을 떠올려 보았다.  
― 책 『태도의 말들』, 엄지혜


몇 달 전에 엄지혜 기자가 쓴 책을 읽다 이 문장을 보고 뜨끔했다. 최근 몇 년 간 수 백개의 글을 쓴 내 입장에서 즐거울 때 글을 썼다면 저 문장이 기분 나빴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즐거울 때는 글이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쓸 필요도 없다. 내가 쓴 글 대부분은 나만의 세계로 침잠하여 나온 결과였다. 그 세계는 우중충하고 무기력해서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행복과 거리가 멀수록 만족스러운 글이 나왔다. 그럼 불행했냐고? 그것도 아니었다. 글 쓸 때 행복하지 않았지만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책 『행복의 기원』을 다 읽고 맨 뒷장에 있는 참고문헌을 살펴보다 어떤 책 하나가 눈에 띄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 교수가 쓴 책『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였다. 이 책의 제목이나 저자보다 역자에 시선이 갔다. 그곳에는 몇 달 전에 읽었던 책의 저자 최인철 교수와 서은국 교수가 나란히 적혀있었다. 그들이 행복에 대해 쓴 책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역자로 참여한 이 책도 궁금했다.

  

실제로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불쾌한 사건을 단지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그 불쾌함은 줄어든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갑작스러운 질병 등과 같은 충격적 경험(외상)에 대해 글로 써보는 것만으로도 주관적 행복이나 신체적 건강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바이러스 항체 증가). 그리고 이런 글쓰기를 통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은 글 속에 자기 경험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글을 쓸 때 내 경험을 투영해서 쓰는 편이다. 물론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내 글을 읽는 불특정 다수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큰 모험이다. 나는 불특정 다수라고 생각하고 글을 썼지만 막상 나를 아는 사람이 글을 읽을 수 있다. 그 사실만으로 부끄럽고, 두려운 감정을 포함해 다양한 감정이 나를 휘감는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시선이 느껴지는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다행히 나는 글을 쓸 때 나만의 세계로 침잠한다. 가끔 타인의 시선도 느껴지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 글을 쓴다. 행복해서 글 쓴 건 아니지만, 쓰고 나면 행복을 맛본다.


사람들은 미래를 상상할 때, 자신이 덤벙거리며 실패하는 것보다 성취하고 성공하는 장면을 더 많이 상상한다고 한다. 실제로 미래에 관한 공상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그런 미래에 도달하기보다 그냥 생각하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중략) 즐거움을 지연시키는 것은 맛있는 열매로부터 갑절의 달콤함을 얻어내는 기발한 기술이다. 실제로 어떤 일은 그것을 경험하는 것보다 그것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 더 즐겁다

―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서은국 교수는 인터뷰(연합뉴스 ―삶 곳곳에 쾌감의 폭탄을 설치하라)에서 "행복감은 원하는 걸 향해 다가설 때 가장 고조가 되고 일단 갖게 되면 잠시 후부터 사라져요. 원하는 것을 내 가방에 모두 넣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설적으로 가방에 넣기까지가 가장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가방에 넣을 것을 계속 만들어야 해요."라고 얘기했다. 서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곧 다가올 행복을 상상할 때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 지금은 업무에 찌들어 있지만 다음 달 예정된 여행을 떠올릴 때 행복하다.


한국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미래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경향이 있다. 학창 시절에는 대학을 위해, 대학에서는 취업을 위해 현재를 즐기기보다 머지않아 찾아올 행복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감수한다. 그런데 그렇게 감수한 사람들 중에 행복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행복을 꾸준히 적금 들었으니, 만기 상환 시 더 큰 행복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로 행복의 원금마저 줄어든다.


우리는 미래의 행복과 불행을 상상하면서 그것을 토대로 오늘의 시간과 노력을 어디에 얼마만큼 투자할지 결정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모두 결정적인 실수를 범한다. 마음의 이러한 실수 때문에 일말의 오차도 없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 수확하는 경우보다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게(stumbling on)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난달에 '계획적인 여행은 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가?'라는 주제로 글 <미리 판단하고 경험하지 않는다>을 썼다. 이때 쓴 글과 지금 서평을 쓰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미리 행복을 계획한다고 해서 그 행복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설령 계획한 일이 일어난다고 해서 행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하면 더 행복할 것이라는 기대는 그대로 현실에서 충족되지 않을뿐더러, 그 착각은 깨질 확률이 높고, 깨질수록 우리가 느끼는 실망과 충격이 더 크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행복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실망과 충격으로 남는다. 행복해지려고 했던 일이 결국 불행해지는 셈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나 승진, 해변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경험하는 즐거움, 즉 행복인 것이다. 따라서 탁월한 선택이란 돈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 즉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과제는 부가 자신에게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정확히 예측해내는 것이다.

― 책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대니얼 길버트


'지금은 돈을 모아야 해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지만, 1억을 모으면 행복한 일만 생길 거야' (X)

'매일 야근 중이지만 곧 있을 진급심사에서 과장으로 승진하면 행복할 거야'  (X)

'이번 프로젝트 마치고 해변으로 놀러 가면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와 피로는 한 번에 가실 거야'  (X)


대니얼 길버트 교수는 '결과'를 통한 행복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중 행복을 자주 맛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돈이나 승진, 해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그것을 통해 머지않은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그것을 활용해 현재의 행복을 경험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미래의 행복은 그만 예측하고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 삶 곳곳에 쾌감의 폭탄을 설치한다. 내가 가진 것들로 즐거움을 정확히 예측한다면 그게 행복이 된다. 물론 우연치 마주치게(stumbling on) 되는 행복은 덤이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최상의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갖고 있는 것을 최대한 즐겁게 이용하는 사람이다.
― 책 『불렛 저널』, 라이더 캐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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