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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30. 2019

종이책은 앞으로도 살아남는다.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고

오후 7시에 친구와 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거의 도착했는데 늦는다는 연락이 왔다. 한 소리 할까 하다가 '늦을 수도 있지'라는 생각에 마음을 진정시킨다. 도착하면 연락 달라는 말과 함께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 지난번에 읽다만 책을 이어 읽는다. 읽고 있다 보면 어느새 도착한 친구가 어깨를 툭 친다.


전자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독서량이 부쩍 늘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지하철이나 친구를 기다리면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하는 등 자투리 시간마다 틈틈이 읽은 덕분이다. 밖에서 종이책만 읽었을 때는 싫증이 나거나 다른 책에 관심이 생기면 그 날은 독서를 멈췄다. 읽으려고 해도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읽고 싶은 책 2~3권을 외출 시마다 들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종이책과 전자책은 다 읽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상이했다. 종이책은 다 읽고 나면 300페이지에 가까운 한 권을 온전히 읽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종이의 질감을 손으로 느끼며 독서의 여운이 잠시 머문다. 그 여운은 나중에 다시 종이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힘이 있다. 반면 전자책은 읽고 싶은 다른 책에 쉽게 접할 수 있어서 여운을 느낄 새도 없이 바로 다음 책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방해받기를 원하는데, 이는 각각의 방해가 가치 있는 정보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이 알림 메시지들을 제거한다는 것은 연락이 끊긴 느낌 또는 심지어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마저 가져올 위험이 있다.

―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쓸 때 우리는 멀티태스킹에 의존하며 여러 앱을 끊임없이 오고 간다.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중에 다른 브라우저를 켜서 블로그에서 이미 읽어본 사람의 서평을 살펴보고, 메모 앱을 실행해 구입하고 싶은 책을 적어놓는다. 뉴스를 볼 때도 카톡을 확인하고, 새로운 메일이 왔는지 메일함을 열어본다. 오늘날 우리는 멀티태스킹 덕분에 많은 작업을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게 되어 과거보다 생산성이 크게 향상했다.


하지만 이 멀티태스킹 때문에 전자책을 읽을 때면 독서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내용이 생기면 검색을 하거나 새로운 메시지가 왔을 때 바로 확인하느라 독서 흐름을 놓치기 일쑤다. 멀티태스킹은 짧은 시간에 이뤄져서 흐름에 별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 막상 독서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서는 멀티태스킹 했던 시간의 몇 배를 쏟아야 한다.


인터넷 항해는 특히 정신적으로 집중하는 형태의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우리는 작업 기억을 정보로 넘쳐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 곡예는 뇌과학자들이 우리의 인지력에 '전환 비용(switching costs)'이라고 부르는 것을 부과한다. 우리가 관심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는다. 우리의 정신세계에 더 많은 고통을 가한다.

―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독서는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하지만 전자책을 읽다 보면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자극을 처리한다. 책을 읽으면서 본문 내용에 걸려있는 하이퍼링크를 누를지 말지 결정해야 하고, 궁금한 내용을 바로 검색할지 판단해야 하며, 지금 몇 시나 됐는지, 기기의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독서 외 활동에 집중력을 끊임없이 소모한다. 이런 활동이 자주 반복될수록 내용에 대한 이해력과 기억력은 저해한다.


 IT 미래학자인 니콜라스 카는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단 두 가지 일에서의 전환도 인지 과부하를 상당 부분 가중시키고 사고에 훼방을 놓으며, 중요한 정보를 간과하거나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할 때 유용한 '멀티 태스킹'은 독서처럼 한 가지 작업에만 몰두하는 일에는 오히려 집중을 저해하는 리스크로 다가온다. 


오랜 시간, 집중해서 읽는 독서가 열어준 조용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연관성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유추와 논리를 끌어내고 고유한 생각을 키운다.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한다.

―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요즘은 글이 조금만 길어도 '3줄 요약'을 해달라는 댓글부터 달린다. 읽을 시간이 충분한데도 애써 읽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지식을 함양하는 존재에서 전자 데이터라는 숲의 사냥꾼이나 수집가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멀티 태스킹을 통해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만큼이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다. 빨리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깊이 생각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효율을 점점 중요시하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으로 독서하는 일은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절의 많은 것들이 대체되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종이책이 우리 곁에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확실한 이유는 분명하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은 생각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이 유독 씁쓸하게 다가온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너무도 기계적이어서 가장 인간적인 등장인물은 도리어 기계인 것으로 밝혀졌다. 큐브릭의 암울한 예언은 바로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으로 변해버리는 것은 바로 우리의 지능이라는 것이다.  

―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필로그 마지막 문단 中



 #씽큐베이션 #더불어배우다 #대교 #생각하지않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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